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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강제징용' 또 얼버무린 日…외교부 "어두운 역사 언급 없어 유감"

중앙일보 2020.12.04 15:12
일본 강점기 강제 노역 현장이던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에 있는 철근콘크리트 건물의 침식이 진행되고 있다고 교도통신이 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일본 강점기 강제 노역 현장이던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에 있는 철근콘크리트 건물의 침식이 진행되고 있다고 교도통신이 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의 어두운 역사를 알리는 대신 자국에 유리한 내용으로 홍보 계획을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日, 유네스코에 '해석전략 보고서' 제출
지난 6월 개관 산업유산정보센터 관련
韓 강제징용 지우고 "일본인도 고통"

4일 외교부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최근 군함도 등 유산의 역사적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해석전략 이행 현황보고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과거 유네스코에서 일본 측 대표는 한국인에 대한 강제노동을 인정했지만, 보고서에는 강제 노역자에 대한 정의 자체가 과거 일본 대표의 발언과 전혀 다르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일측이 개관한 정보센터에는 일방적으로 일본인들이 증언하는 내용만 있고, 강제노역 사실을 반박하는 자료들도 포함됐다”며 “근대화 업적의 뒤에 숨겨진 이면과 어두운 역사가 있다는 걸 알리라는 취지인데 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2015년 유네스코 위원회는 군함도를 비롯한 근대산업시설 23곳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며 시설들에 대한 “전체 (역사적)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해석전략을 마련하라”고 결정했다.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권고 결정문 이행 차원에서 올해 6월 도쿄 신주쿠주에 ‘산업유산 정보센터’를 개관했고, 이번 보고서를 통해 관련 내용을 유네스코에도 보고했다.
 
하지만 외교부에 따르면 보고서에는 일측의 강제동원 사실에 관한 설명보다는 당시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일반적으로 소개하는데 그쳤다. 당시 한국인 뿐 아니라 일본인 노동자들도 고통받았다는 식이다. 또 '자발적 지원'을 암시하는 등 강제징용 피해를 부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고성 출신 지원병의 광부 희망’(1941년 8월 부산일보), ‘하시마 탄광에서 한국인 및 일본인 광부들 간의 난투’(1948년 7월 도쿄 히노데 신문) 등이 자료로 제시되면서다. 이를 통해 일제에 의한 강제징용보다 “일본인도 함께 고통받은 시대적 상황”이라는 암시가 담겼다는 지적이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시설인 하시마(일명 군함도)의 생존자들을 소개하는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실. [산업유산 정보센터 제공]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시설인 하시마(일명 군함도)의 생존자들을 소개하는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실. [산업유산 정보센터 제공]

 
2015년 등재 결정 시 유네스코위원회 측에 일본 대표가 “본인의 의사에 반해” 노동이 이뤄졌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런 사실을 알리겠다고 약속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반면 독일 북서부 졸페라인 탄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유대인과 전쟁포로를 강제노역에 동원했던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알리고 있다.
 
일본 측이 보고서를 작성하며 자문받은 국제 전문가 그룹도 영국·호주 전문가들로, 한국 전문가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전체 사실’을 알리라는 유네스코 측 주문을 일본 측이 오히려 강제동원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는 퇴임 후인 지난 10월 정보센터를 방문해 “이유 없는 중상(中傷·근거 없이 남을 헐뜯는 것)을 꼭 물리쳐 일본의 산업화 행보를 전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이런 행보에 외교부는 지난 6월 유네스코 측에 유산 등재 취소를 포함한 “가능한 조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항의 서한을 발송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대항 수단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역사적 평가와 해석을 문제 삼아 유산 등재가 취소된 전례는 없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국제기구인 유네스코가 페널티를 줄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내년도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항의의 뜻을 공개적으로 밝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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