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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제도와 문화, 그리고 사람의 경계선에서

중앙일보 2020.12.04 00:30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키보드의 영문 “쿼티(Qwerty)” 자판은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이다. 자음과 모음의 구분도 없고, 가장 많이 치게 되는 글자들은 꼭 힘없는 중지나 무명지에 걸리게 되어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지기 보다는 1800년대 후반 기계식 타자기의 키가 엉키지 않도록 고안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타속을 당시의 기계식 타자기가 따라갈 수 없으니 일부러 인간의 타자 속도를 줄이도록 고안된 시스템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제도개혁은 지난한 과정
시민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문화를 서서히 바꾸려는
정치의 일 포기할 수 없어

그 이름조차 자판 왼쪽 상단의 여섯자를 그냥 딴 이 근본 없는 시스템은 20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기계식 타자기의 한계가 무의미해진 컴퓨터 시대에 살아남았고 아마 앞으로도 존속할 것이다. 해당 시기 나름의 합리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사용자들 간의 단순한 합의였지만 그것이 ‘제도화’가 되었고, 이제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도를 바꾸고 ‘개혁’하는데 헤아릴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이 들 것이며 예상하지 못하는 난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도 개혁’이라는 슬로건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법령을 개정하고 규칙을 혁파하는 의제들이 어쩌면 정치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지만, 혹시나 그 지난하고 지루한 장애물들을 우리가 과소평가하게 되지 않았는가 하는 우려가 있다. 수많은 사회과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이 우리가 반복적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불행의 기원으로 법령들을 지목하고 이전 세상과의 손쉬운 단절이 마치 손바닥 뒤집듯이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 또한 있다.
 
그래서 우리의 정당과 정치인들은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를 개헌을 통해서 극복하려고 하고, 검찰 전횡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수사권에서 기소독점권에 이르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을 개정해서 해결하려고 하며,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국회의 문제를 선거법 개정을 통해 넘어서려고 한다. 그것이 출발점은 맞겠지만 훨씬 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왜냐하면 제도라는 것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제도는 단순한 법령의 자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람들의 삶에 뿌리를 내려 내면화된 다양한 관행들과 행위의 패턴들 속에 살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은 단순히 우리 헌법의 산물이 아니라 그 권한을 ‘대권(大權)’이라 부르고 후보들을 ‘잠룡’이라 부르는 문화 속에 녹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의 문제 또한 단순히 관련 법령들의 자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검찰권 독립”이라는 담론이 역사적으로 형성되었고, 검사를 검사(劍士)나 영감님으로 부르는 문화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키보드 자판 하나 바꾸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대통령제와 검사제를 그 근본에서 바꾸는 일이 쉬울 리 없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맞승부가 모든 정치적 의제들을 소용돌이로 빨아들이고 있는 현시국에서 가장 안타까왔던 점은 그 논쟁에서 제도도 문화도 사라지고 개인 추미애와 개인 윤석열만 남아 있다는 점이다. 검찰권 독립과 민주주의적 통제라는 충돌하는 가치들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진행되기도 전에, 관련 제도와 관행들과 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들을 할 값진 기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논쟁은 실종되고 ‘사람에 대한 충성’만 운위되었다. 공동체로서 우리가 제대로 된 논쟁을 진행할 기회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이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문화는 쉽사리 바뀔리 없으며, 당장 손에 잡히는 것은 법령을 건드리고 현존하는 제도들을 “개혁”하는 것이 눈에 띄고 방송에 나올 가시적인 성과가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국회에서는 수많은 법안들이 발의되고 의정보고서에는 발의 건수가 입법 “성과”로 오를 것이며 정치적 논쟁들은 최고의 볼륨으로 시끄럽게 중계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과연 사람들의 마음과 시민들의 고통이 들어설 자리가 있는가. 조금씩이나마 우리의 정치문화를 이해하고 움직여보려는 노력은 정말 있는가. 그래서 우리는 과연 우리 정치를 사랑하고 만족해 하는가.
 
그래서 다시금 정치의 어려움을 되새긴다. 제도를 바꾸고 문화를 움직이는 것, 어렵다고 포기할 수도, 느리다고 재촉할 수도 없는 것이 정치의 일인지라 문제제기와 토론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평론의 어려움 또한 되새긴다. 이 과분한 지면에서 과분한 독자들을 어쭙잖은 글로 만난지도 5년이 되었고 이제는 떠날 시간이 되었다. 적어도 내가 일관되게 주장했던 바는 사람의 정치가 아닌 제도의 정치, 사람의 정치가 아닌 사람을 위한 정치가 들어섰으면 하는 조그만 바램이었다. 그러나 당파적이지도 뚜렷한 당장의 대안도 없는 흐릿하기만 한 문제제기들이 얼마나 독자들의 마음에 남아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그런 문제제기들이 쌓이다보면 언젠가는 올바른 해답에 닿거나 가까워지지 않을까 희망할 따름이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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