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女임원 없으면 상장폐지?…나스닥 실험 이끄는 태권도 유단자

중앙일보 2020.12.03 17:48
뉴욕 월스트리트의 나스닥 거래소 입구. [중앙포토]

뉴욕 월스트리트의 나스닥 거래소 입구. [중앙포토]

내년부터 여성 임원이 없는 기업은 세계 2위 규모의 증권거래소인 나스닥(NASDAQ)에 발붙이기 어려울 전망이다. 상장도 불가능하고, 상장된 기업도 퇴출당할 수 있다.
 
나스닥은 지난 1일(현지시간) 상장기업에 최소 여성 1명과 아프리카ㆍ라틴ㆍ아시아계 등 소수 인종 및 성 소수자(LGBTQ) 최소 1명을 이사진에 포함해야 한다는 지침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외국 기업이거나 일정 규모 이하의 기업의 경우 '여성+소수계층'의 조합 대신 여성만으로 최소 쿼터인 2명을 채워도 된다. 나스닥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승인을 받아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나스닥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거래소다. 기술주를 중심으로 상장된 기업만 약 3300개에 이른다. 애플과 페이스북 등 주요 기술주가 나스닥 소속이다.  
아데나 프리드먼 나스닥 CEO. [트위터]

아데나 프리드먼 나스닥 CEO. [트위터]

여성과 소수자에 방점을 찍는 혁신의 기치를 든 인물은 아데나 프리드먼(51) 나스닥 최고경영자(CEO)다. 2017년 나스닥 사상 첫 여성 CEO 자리에 올랐다. 1993년 나스닥에 입사한 프리드먼은 2011년 세계적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뒤 2014년 나스닥에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복귀했다. 아들 2명을 둔 워킹맘에 태권도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태권도 검은 띠 유단자다.

 
프리드먼은 1일 CNBC와 인터뷰에서 “다양성의 중요성은 모두 인정하면서도 이를 실천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는 점을 보고 우리가 먼저 변화를 주도하기로 했다”며 “더 포용적인 자본주의를 만들기 위한 진전이며 나스닥의 목표는 경제를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양성을 강조하는 프리드먼의 실험은 데이터가 뒷받침한다. 그가 일했던 칼라일그룹의 보고서에 따르면 “(소수자를 배려하며) 다양성을 추구하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연평균 수익률이 12%가 더 높다”는 것이다. 데이터 기반 투자에 잔뼈가 굵은 프리드먼이 이를 놓치지 않고 반영했다는 것이 미국 언론의 분석이다.
 
프리드먼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상장기업이라면 ESG 중 어느 하나를 택하는 게 아니라 셋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ESG는 기업을 재무적 성과만으로 판단하던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환경(Environment) 문제와 사회(Social) 이슈, 지배구조(Governance) 등을 따져 판단하는 것이다. 이번 조치 역시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금융권의 압도적 다수는 아직도 백인 남성이다. 사진 인물은 내용과 관계 없음. [로이터]

미국뿐 아니라 세계 금융권의 압도적 다수는 아직도 백인 남성이다. 사진 인물은 내용과 관계 없음. [로이터]

나스닥의 실험에 상장사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지게 됐다. 나스닥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상장사의 75%가 새로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임원 비율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인종 및 성 소수자 비율이 기준에 미달한 곳이 많아서다. 나스닥은 SEC 승인이 나는 대로 상장사들에 1년 안으로 이사회 다양성 통계를 내고 외부에 공개할 것을 요구할 방침이다.  
 
이에 대한 반발도 감지된다. 능력 아닌 태생적 또는 개인의 사회적 특성이 기업 경영 능력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보수 성향의 법률 시민단체인 주디셜 워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요구”라고 반발했다.  
 
그럼에도 시장 전반의 평가는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다양성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 등 해외에선 이미 주요 이슈로 자리 잡았다. 독일 정부는 지난달 2000명 이상을 고용한 상장기업의 경우 여성 임원 1명을 의무적으로 임명하도록 하는 할당제를 도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9월 주 내 본사를 둔 상장기업의 이사회의 경우 최소한 1명 이상의 소수계층 구성원을 둘 것을 제도화했다. 
 
나스닥에 앞서 NYSE는 이미 지난해 자문위원회를 만들고 상장사들이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이사진을 물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프리드먼은 WSJ에 “이번 조치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이라 놀라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상장기업의 다양성 진전을 위해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