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라앉는다" SOS에···우승 포기하고 라이벌 구한 요트 선수

중앙일보 2020.12.03 05:00
세계 일주 요트 대회인 방데 글로브(Vendée Globe) 참가 선수들이 경쟁 선수의 요트가 파손돼 조난되자 경기를 포기하고 밤샘 구조에 나서 찬사를 받고 있다. 
케빈 에스코피어(왼쪽)와 장 르 캠. [에스코피어 트위터=연합뉴스]

케빈 에스코피어(왼쪽)와 장 르 캠. [에스코피어 트위터=연합뉴스]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사고는 지난달 30일 남대서양 바다 한가운데서 일어났다. 3위를 달리던 프랑스 선수 케빈 에스코피어(40)의 요트가 거센 바람과 파도에 두 동강이 났다. 에스코피어는 대회 운영팀에 “가라앉고 있다. 농담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연락이 끊겼다. 그는 구명정으로 옮겨탄 뒤 바다를 표류했다.  
 
조난 신고를 받은 운영팀은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프랑스 선수 장 르 캠(61)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장 르 캠은 방데 글로브에 5번째 출전한 베테랑 요트 선수다. 그는 자신의 항해를 중단하고 사고 지점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소식을 접한 다른 선수들도 요트를 돌려 에스코피어 찾기에 동참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수색은 난항을 겪었다. 주위가 어두운 데다가 기상 악화로 파도가 높아지고,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9월 프랑스 서부의 한 해안에서 열린 요트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 [AFP=연합뉴스]

지난 9월 프랑스 서부의 한 해안에서 열린 요트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 [AFP=연합뉴스]

 
그때 장 르 캠이 밤하늘에서 작은 불빛 하나를 발견했다. 에스코피어가 쏘아 올린 조명탄이었다. 장 르 캠은 “빛에 가까워질수록 선명하게 빛났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에스코피어는 장 르 캠이 던진 구명 튜브를 붙잡고 서로를 잡아끄는 방식으로 구조됐다. 에스코피어가 구조 신호를 보낸 지 11시간 만이었다. 
 
장 르 캠을 만난 에스코피어의 첫 마디는 “경기를 망치게 해 미안하다”였다. 이에 장 르 캠은 “괜찮다. 지난 대회에서는 내가 경기를 망쳤다”며 서로를 다독였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영국 선수 핍 헤어는 가디언에 “대회에 출전한 모든 선수가 에스코피어가 무사히 구조되길 기다렸다”면서 “항해는 늘 조난의 위험에 놓여 있지만 방데 글로브는 주변에 동료들이 함께 항해하기 때문에 구조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전인 지난 8일 케빈 에스코피어가 요트 위에서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고 발생 전인 지난 8일 케빈 에스코피어가 요트 위에서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방데 글로브는 프랑스에서 출발해 남극을 거쳐 돌아오는 논스톱 세계 일주 1인승 요트경기다. 4만 8000㎞나 되는 바닷길을 중간 기착지 없이 석 달 동안 홀로 항해한다. 

 
세계에서 가장 힘든 요트 경기로 알려질 만큼 선수들은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겪는다. 
 
가디언에 따르면 장 르 캠도 지난 2008~2009년에 열린 방데 글로브에서 요트가 전복돼 16시간 동안 배 안에 갇혀 있다 구조됐다. 당시에는 동료 빈센트 리우가 장 르 캠을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고 한다.
 
또 1996~1997년 대회에서는 영국 선수 토니 불리모어가 뒤집힌 배를 타고 나흘 동안 항해하다가 호주 해군에 의해 구조돼 화제가 됐다. 
 
한편 에스코피어와 장 르 캠은 인근 지역에서 요트를 재정비한 후 다시 바다로 나가 경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