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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 논설위원이 간다] 팬 전용 놀이터 ‘팬 플랫폼’을 잡아라

중앙일보 2020.12.03 00:24 종합 20면 지면보기

K팝 팬덤 플랫폼 빅3 탄생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한국어 가사 노래 최초로 빌보드 1위에 올라 새 역사를 쓴 BTS. 앞서 지난달 K팝 가수 최초로 그래미 후보에 지명되자 “이 모든 기적은 아미들 덕분”이라는 소감을 밝혔었다. 미국 내 잇단 선전은 열혈 팬덤을 넘어 대중성을 확보했다는 증거지만 아미 없는 BTS는 상상조차 힘들다.
 

빅히트·네이버에 엔씨도 도전장
빅3 탄생…팬덤경제 7조원 추정
팬 소통, 콘서트, 굿즈 판매까지
비대면 시대 더 각광 사업 모델

사실 K팝은 출발부터 팬덤에 기반한 ‘팬덤 경제’ 모델이다. 최근 K팝계에서는 ‘팬(덤) 플랫폼’ 모델로의 진화가 눈에 띈다. 단순한 팬카페·팬클럽 수준을 넘어 라이브 방송이나 스타 IP(지적 재산권)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트 제공, 콘서트 중계와 굿즈 판매 등 ‘덕질’의 모든 것을 한데 모은 팬 전용 플랫폼의 등장이다. 유튜브·트위터 등 기존 SNS의 강점을 모으고, AI(인공지능) 등 디지털 신기술을 더하며, 돈이 되는 팬덤을 한 곳에 결집해 수익을 극대화한 모델이다. BTS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위버스’를 필두로, 원조 격인 네이버 ‘브이라이브 팬십(Vlive Fanship)’에 굴지의 게임회사 엔씨소프트까지 도전장을 냈다. 비대면 시대가 이어지면서 더 주목받는 팬 플랫폼. “팬덤 경제의 총 시장 규모가 7조9000억원”(박용희 IBK투자증권 연구원)이란 추정까지 나오는 상황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전 세계 아미들의 놀이마당
 
지난 9월 BTS의 비대면 콘서트 ‘방방콘 더 라이브’. 전 세계 107개국 75만명이 관람해 250억원 넘게 벌어들인 이 공연은 빅히트 팬 플랫폼 위버스를 통해 독점 공개됐다. BTS는 이달 16일부터 위버스를 통해 지난해 전 세계 10개 도시 스타디움에서 연 공연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브레이크 더 사일런스: 더 무비 코멘터리 패키지’를 독점 공개한다. 여전히 유튜브나 네이버 브이라이브를 통해서도 팬들을 만나지만 점점 유료 독점 콘텐트를 위버스 안으로 몰아주는 모양새다.
 
지난해 6월 200여 개국 아미를 대상으로 출범한 위버스에는 이미 빅히트의 동생 그룹 투바투·엔하이픈, 빅히트 계열사 소속인 세븐틴·뉴이스트·여자친구, 그리고 다른 소속사의 씨엘·선미·헨리·드림캐쳐 등 13팀이 합류해있다. 빅히트가 최근 소속사를 인수한 지코의 합류도 예상된다. 제1호 해외 아티스트도 탄생했다. 미국의 차세대 싱어송라이터 그레이스 에이브럼스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알렉산더23, 영국 출신 팝가수 영블러드의 합류도 예고했다.
 
위버스 앱은 지난 7월 말 구글 애플 합쳐 1000만 다운로드를 넘었다. 8월 말 기준 가입자 수는 860만명. 올 상반기 매출은 1127억원으로, 빅히트 전체 매출의 38.3%를 차지한다. 비대면 시대가 이어지면서 내년 매출은 5409억원까지 성장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 관계자는 “최근 빅히트 상장의 키워드도 위버스였다”며 “타 플랫폼 수수료도 줄일 수 있다. ‘빅히트의 시작은  BTS지만 미래는 위버스’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라고 전했다.
 
팬 플랫폼 원조 브이 라이브
 
K팝 팬 플랫폼의 원조는 2015년 1020 타깃의 스타 채널로 출발한 네이버 브이라이브다. K팝을 동력 삼아 급성장한 유튜브 국내 대항마 성격이 강했다. 스타들이 개인 채널을 통해 무대 뒤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채팅창을 통해 실시간 쌍방향 소통하는 모델. 지금은 일반화된 스타의 먹방이나 침대에 누워 팬들과 소통하는 ‘눕방’ 등의 양식을 개발한 원조다. 브이라이브 앱은 지난해 기준 매달 3000만명이 방문하고, 해외 사용자 비율이 80~85%에 달한다. 누적 다운로드 수는 상반기 9318만건, 올해 1억건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특수’도 누렸다. 코로나19 이전인 1월에 비해 상반기 유료 거래액이 11.7배나 늘었다.
 
홍석경 서울대 교수는 “해외 팬들은 막대한 상시적인 콘텐트 제공을 서구 대중문화와 차별되는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다”면서 특히 “브이라이브는 이해력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먹방이나 공연 후 감사 인사같이 정서적인 모습을 담아 접촉 커뮤니케이션의 극치를 이룬다”고 평했다. “비틀스 시대에는 전혀 가질 수 없었던 스타와 팬 사이의 즉각적이고 친밀한 관계성”이 여기서 나온다는 설명이다.
 
네이버 브이라이브는 지난해 유료 팬 플랫폼 팬십을 선보였다. 가수·배우 등 66개 팀이 합류했지만, 아직은 팬십만의 차별성 확보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많다. 빅히트의 위버스에 맞서 SM과 JYP가 네이버와 손잡아 양강 구도를 구축한 것도 특징이다. SM은 내년부터 자사의 팬 커뮤니티 리슨을 팬십으로 일원화한다. 브이라이브를 통한 비대면 콘서트 ‘비욘드 라이브’에는 슈퍼엠·NCT·트와이스 등이 출연했다. SM과 JYP는 비욘드 라이브 운영·개발을 위한 합작 회사도 설립했다.
  
게임회사가 팬 플랫폼을?
 
가장 따끈따끈한 뉴스는 내년 초 출시될 엔씨소프트의 팬 플랫폼 ‘유니버스’ 다. 기본 컨셉은 같되 게임회사의 노하우인 IT 기술을 적극 활용한 ‘유니버스 오리지널스’가 핵심이 될 전망이다. 유니버스를 운영하는 엔씨의 자회사 클렙의 이주현 홍보제작팀장은 “엔씨만의 인공지능 기술을 토대로 AI 음성을 활용해 팬과 스타가 일대일 통화를 하는 듯한 프라이빗 콜 기능도 있다”고 전했다. 팬들이 스타의 아바타를 가지고 직접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유니버스는 한국어·영어·일본어 3개 언어로 서비스되며 아이즈원·몬스타엑스·강다니엘·에이티즈·(여자)아이들·우주소녀·더보이즈·박지훈·CIX 등 대어급 아이돌 11팀의 합류를 발표했다. 사전 예약에만 165개국 K팝 팬들이 참여해 열기가 뜨겁다.
 
한편 이런 팬 플랫폼의 부상이, 기존의 자발적인 팬 문화를 수익성 위주의 기획사나 플랫폼 중심으로 변질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웹진 ‘아이돌로지’ 편집장 미묘는 “90년대 기획사의 중앙통제식 팬 문화가 2000년대 인터넷 카페 등으로 지방 분권이 이뤄졌다가 다시 중앙(기획사)의 통제가 커지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BTS가 바꾼 것은 K팝이 아니라 세계다
BTS 길 위에서

BTS 길 위에서

도대체 이들의 끝은 어디일까. BTS가 한국어 가사 노래로 빌보드 정상에 올랐다. 앨범 5장 연속 빌보드 1위라는, 비틀스에 준하는 대기록도 세웠다.
 
대표적인 한류 연구가인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때마침 BTS 현상을 심층 분석한 책 『BTS 길 위에서』(사진)를 펴냈다. BTS 연구서는 그간 꾸준히 나왔지만 문화와 산업, 사회와 미디어를 관통하는 전방위 분석이 눈길을 끈다. 2000년부터 프랑스 보르도3대학 교수로 재직했던 홍 교수는 2000년대 후반부터 유럽에서 발생한 한국 드라마와 K팝 중심의 한류 현장에 있었고, 이 경험 등을 녹여 책 『세계화와 디지털 문화시대의 한류』를 펴낸 바 있다. 2013년 서울대에 부임한 후 BTS 신드롬이 터졌고 전 세계 공연장을 찾아 국내외 아미들을 만난 연구 결과가 이번 책이다.
 
MZ(밀레니얼·Z세대)세대의 아이콘이 돼 신자유주의 시대 절망하는 서구 젊은이들에게 힐링과 자존의 메시지를 설파하고, ‘이성애적 정상성 아래 억압됐던 성 정체성의 해방과 트럼프 시대 지배적 남성성에 대한 반항’을 전하며, 다문화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영어권에 받아들여진 것 등이 그가 본 BTS 현상의 핵심이다. 홍 교수는 “한국에서, 해외 활동을 하는 아이돌들의 영어 소통 능력의 유무에 과잉 반응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BTS 멤버들의 짧은 영어를 해외 팬들은 조롱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트레스받지 말고 당당하게 통역을 대동해서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하라고 주문한다. BTS의 이런 역행보는 무척 해방적으로 느껴진다”고 썼다.
 
책의 부제는 ‘BTS는 어떻게 케이팝을 넘어 세계인을 움직였을까’다. 책을 읽다 보면 부제대로 BTS가 바꾼 것은 K팝만이 아니라 세계라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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