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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출산 소수 사회

중앙일보 2020.12.03 00:14 종합 29면 지면보기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젊은층에선 이제 출산하지 않는 게 대세에요. 20대 여성이 ‘나는 애를 꼭 낳을 거야’라고 말하면 친구들이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너 왜? 진짜로 애를 낳는다고?’라며 놀라요.”
 
‘출산은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김영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가 전해준 요즘 젊은층의 인식이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올해 초 실시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저출산 연구 관련 설문에서 20대 후반(25~29세) 여성의 55%가 ‘출산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김 교수를 포함한 연구팀은 주거·교육·보육·직장 같은 답변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결혼할 생각이 아예 없어서(48%)’ 또는 ‘미래가 불안정해서(30%)’였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막막할 정도로 충격적인 결과였다. 김 교수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지금 이 집단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기성세대의 인식 틀을 넘어섰다”고 털어놨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싶은 건 본능이다. 하지만 가족이란 틀은 구속이어서 싫다. 그래서 동거를 선택한다면? 출산은 상상할 수 없다. 비혼 출산이라니. 용기도 없고 인생 망칠까 두렵다. 그러니 결혼도 출산도 안 한다.’ 출산 소수 사회의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호수에 돌 하나가 던져졌다. 방송인 사유리 씨가 정자 기증을 통한 비혼 출산 사실을 공개했다. ‘결혼 없이 혼자서도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새롭고 ‘쿨’하다.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깰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 ‘나도 아이를 가질까’라는 인식의 전환까지 이어지기엔 파장이 약하다. 여러가지 면에서 일반의 젊은 여성은 사유리가 아니니까.
 
어차피 비혼은 막을 수 없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이제 정책적으로 ‘혼자서도 아이를 낳아 잘 기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방법을 고민해보는 게 어떨까. 이미 9년 전 KDI의 ‘미혼율 상승과 초저출산에 대한 대응방향’ 보고서에 담겼던 내용이다. “동거와 혼외출산이 저출산 대책이냐”며 엄청난 질타를 받았던 바로 그 연구다. 당시 보고서 작성자였던 김영철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서 정부도 결혼을 장려하기엔 면목이 없어졌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가정 형태를 제도화할 때가 이제는 됐습니다.”
 
한애란 금융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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