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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간 고3, 2등급→4등급 ‘뚝’…“1년만 일찍 태어날걸”

중앙일보 2020.12.02 05:00 종합 1면 지면보기
고3 진혁이는 코로나19 이후 성적이 급격히 떨어졌다. 사진 특별취재팀

고3 진혁이는 코로나19 이후 성적이 급격히 떨어졌다. 사진 특별취재팀

 
서울 관악구의 한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진혁(18)군은 지난 5월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고 충격에 빠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전만 해도 영어 2등급, 수학 5등급이던 성적이 순식간에 영어는 4등급으로, 수학은 7등급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9월 모의고사에선 5등급을 유지하던 국어마저 6등급으로 내려앉았다. 진혁군이 2학기에 받은 ‘지원 가능 대학’ 표엔 평소 생각하던 곳과 거리가 먼 대학 이름과 전공만 적혀 있었다. 진혁군은 최근 ‘인(in)-서울’ 대학 군사학과에 들어가 직업군인이 되겠다던 꿈을 접었다고 했다.

<코로나가 감염시킨 교실①>

 
코로나19가 발발한 이후 진혁군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코로나19는 가정 형편과 돌봄의 차이에 따라 학생들을 둘로 갈라놓았다. 진혁군과 또 국제학교 학생들의 지난 10개월을 뒤쫓아보고 내린 결론이다.
 
 

10시에 일어나선 ‘망했다, 망할 거야’

진혁이는 온라인 수업 이후 생활습관이 망가져 성적도 함께 떨어졌다. 사진 특별취재팀

진혁이는 온라인 수업 이후 생활습관이 망가져 성적도 함께 떨어졌다. 사진 특별취재팀

 
진혁군은 코로나19 이후 공부 습관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부터 함께 사는 고모가 출근하고 나면 온종일 혼자 시간을 보냈다. 하루 최소 10시간이던 공부시간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게임방송 등 유튜브만 5시간씩 보는 날도 생겼다. 아침에는 10~11시까지 늦잠을 잤다. 진혁군은 “‘8시에 일어나 공부해야지’하고 잠드는데, 일어나 보면 10시다. ‘망했다. 난 망할 거야’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고 말했다.
 
진혁군과 달리 부모의 돌봄을 받는 아이들은 “코로나19로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제주 제주시에서 10살 아들 준이(가명)를 키우는 신청조(43)씨는 비대면 수업이 시작된 뒤 매일 상시 대기 상태다. 식사와 간식은 물론, 온라인 수업을 위한 인터넷‧기기 점검과 수업 준비도 신씨가 직접 한다. 사립 국제학교에 다니는 준이는 “(코로나19 이전보다) 공부 시간이 늘었다”며 “공부하지 않을 때도 엄마가 보드게임을 해주고, 영화도 거의 매일 같이 봐 준다”고 말했다.
 
고3 김진혁 학생이 지난달 4일 서울 금천구의 자택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김정민 기자

고3 김진혁 학생이 지난달 4일 서울 금천구의 자택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김정민 기자

 
아이들의 성적은 생활 환경에 따라 격차가 벌어졌다.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EBS에서 받은 ‘6월 모의평가 3개년 치 성적 분석자료’에 따르면, 학력 격차 심화가 두드러진다. 특히 진혁군처럼 중위권을 유지하던 학생들의 성적은 대거 하위권으로 떨어졌다. 국‧영‧수 등 주요 과목별 60~90점대 비율은 평균 40%대에서 20~30%대로 줄었다. 
 

선생님 사라진 수업…EBS 틀어놓고 게임

진혁이는 코로나19로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면 유튜브 시청시간이 늘었다. 사진 특별취재팀

진혁이는 코로나19로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면 유튜브 시청시간이 늘었다. 사진 특별취재팀

 
수업의 질은 학교별로 큰 차이가 났다. 온라인 수업을 대비하지 못한 학교에선 EBS 강의로 수업을 대체했다. 수학이 약한 진혁군은 EBS 강의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태반이었다. 진혁군은 “모르는 문제가 나와도 자세한 풀이 방법을 물어볼 사람이 없다”고 했다. 격주로 돌아오는 등교 수업이 온라인 수업과 진도가 맞지 않을 때면 더 혼란스러웠다. 같은 과목인데 학교와 EBS 강의의 교재가 다른 경우도 있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수학 강사 A씨는 “특목고가 아닌 일반 학교에선 온라인 수업이 대충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학생들이 학원에 와서 ‘학교 수업은 어차피 EBS라 안 들어도 된다’고 한다”고 했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지난 6월 초‧중‧고교 등 교사 4만 8187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온라인 수업이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5.5%뿐이었다.
 
수업에 집중하는 것도 온전히 학생 몫이다. “온라인 수업 영상을 틀어놓고 어떤 애는 게임을 하고, 어떤 애는 청소한다. 등교 수업에선 선생님이 자는 애들도 깨우고, 환기도 시켜주는데 그게 없으니 다들 따로 노는 느낌”이란 게 진혁군의 설명이다. 지난 7월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초‧중‧고교생 2만1064명 대상 설문에서 ‘선생님이 온라인 수업 내용 이해 정도를 확인한다’는 문항에 ‘모르겠다’(26.1%), ‘그렇지 않다’(21.1%)고 답한 학생은 절반에 달했다.
 
코로나19 여파로 학교가 문을 닫는사이 학원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사진 특별취재팀

코로나19 여파로 학교가 문을 닫는사이 학원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사진 특별취재팀

“코딩하고 드럼치고…학원만 7~8개” 

고가의 등록금을 내는 일부 사립학교에선 최신 기기를 활용한 집중 관리가 이뤄졌다. 중3 아들 주현(가명)군을 제주도에 있는 국제학교에 보낸 학부모 B씨는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최신 노트북을 가지고 있어 온라인 수업 전환이 빨랐다”고 설명했다.
 
교사들은 매일 대면 수업 시작 시각인 오전 8시 20분에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책상 앞에 앉아있는지 ‘줌(ZOOM)’ 화면으로 출석을 확인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숙제하는 시간도 정해줬다. B씨는 “줌으로 아이들의 실시간 반응을 확인하고, 배운 것들을 영상으로 찍어서 올리게 하기도 한다. 오히려 학원보다 관리가 더 잘 됐다”고 설명했다.
 
중1 해인(가명)이는 코로나19 확산 후 온라인 수업을 위해 태블릿 PC를 새로 구입했다. 사진 특별취재팀

중1 해인(가명)이는 코로나19 확산 후 온라인 수업을 위해 태블릿 PC를 새로 구입했다. 사진 특별취재팀

 
형편이 좋은 가정의 학생들은 코로나 19를 기회로 활용했다. B씨는 온라인 수업 기간을 두고 “평소 못했던 걸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평소 코딩을 좋아하던 아이는 밤새 홈페이지를 만들어 보고, 춤 좋아하던 애들은 춤을 배운다”며 “이 동네 아이들은 코로나19 때문에 학업 스케줄이 널널해진 지금 그간 못했던 것들을 골라 하고 있다"고 B씨는 설명했다.
 
한 기숙형 사립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해인(가명)양은 최근 사교육 횟수를 늘렸다. 학원 수업이 비대면 전환되면서 이동시간이 줄었기 때문이다. 주요 과목은 물론 논술·토론, 클라리넷과 테니스 수업도 듣고 있다. 해인양은 “같은 학교 친구들도 코로나19 이후 학원 6~7개는 기본”이라고 전했다.
 

“지금 교실에 있었으면…”

진혁군은 민간 장학재단에서 받던 학원 지원금마저 끊겼다. 통상 학기가 시작될 때 지원 절차도 시작되는데 개학이 3개월 이상 미뤄지면서 신청 기간이 늦춰졌기 때문이다. 신청이 재개됐을 땐 이미 학원 진도를 따라잡기 힘든 상태였다. 진혁군은 “이젠 수능만 남아서 학원은 따로 다니지 않는다. 수시 준비를 위해 학원에 다니려고 했는데 수시 모집 기간이 끝났다”고 했다.
 
진혁군은 “3학년 1학기 성적을 보고 (직업군인이 되려던) 꿈을 깔끔하게 접었다”고 했다. 코로나19가 한국에 퍼진지 10개월, 진혁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2년 늦게 태어나거나, 1년만 일찍 태어났으면 정말 좋았을 것 같아요. 지금 집이 아니라 교실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특별취재팀=김지아·성지원·정진호·김정민·정희윤 기자 kim.jia@joongang.co.kr
① 학교 안간 고3, 2등급→4등급으로 ‘뚝’…“1년만 일찍 태어날 걸”
② 급식실 문 닫자 10살은 62kg 됐다…편의점으로 몰린 아이들
③ 문 닫은 학교 그 후…535만개 각자의 교실이 생겼다
④ “AI 선생님 1년에 166만원”…인공지능이 교육격차 좁혀줄까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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