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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의 미학 알리는 사극 적극 제작해야 중국도 억지 못부려"

중앙일보 2020.12.01 11:25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성균관 스캔들' 등의 한복 의상을 맡았던 디자이너 이진희씨가 최근 진주 실크와 협업해 패션쇼를 개최하고 영화, 드라마 속 의상을 전시한 '한복극장전'도 열었다. 장진영 기자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성균관 스캔들' 등의 한복 의상을 맡았던 디자이너 이진희씨가 최근 진주 실크와 협업해 패션쇼를 개최하고 영화, 드라마 속 의상을 전시한 '한복극장전'도 열었다. 장진영 기자

“K팝을 비롯한 K컬처가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금이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릴 적기라고 생각해요.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한복의 고유한 미감을 알릴 수 있는 사극이 많이 제작되고 널리 소개된다면 한복을 자기네 옷이라고 우기는 중국의 억지 주장도 안 먹히겠죠.” 
브랜드 ‘하무’를 운영하는 디자이너 이진희씨의 말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한 그는 23년째 무대의상과 영화·드라마 의상을 만들어왔다.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으로는 영화 ‘간신’,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등을 꼽을 수 있다. 지난 6월 있었던 제56회 대종상 영화제에선 ‘안시성’으로 의상상을 수상했다. 

이진희 영화·무대의상 감독 겸 디자이너 인터뷰
영화 '안시성', 56회 대종상 영화제 의상상 수상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의상 감독

이진희 디자이너가 예술감독과 의상을 맡은 패션쇼 '2020 진주 실크 패션쇼-물의 춤, 생명과 환희의 색’ 무대 모습. 사진 하무

이진희 디자이너가 예술감독과 의상을 맡은 패션쇼 '2020 진주 실크 패션쇼-물의 춤, 생명과 환희의 색’ 무대 모습. 사진 하무

최근 그는 두 개의 큰 행사를 치렀다. 지난 14일 서울 웨이브아트센터에서 열린 ‘2020 진주 실크 패션쇼-물의 춤, 생명과 환희의 색’은 진주 실크 홍보대사이기도 한 그가 예술 총감독으로서 기획한 행사다. 그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진주 실크를 이용해 제작한 40여 점의 의상과 함께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 장현수, 여창가곡 전수자(중요무형 문화재 제30호) 정마리, 국립창극단 대표 소리꾼 김준수, 현대무용팀 ‘시나브로 가슴에’의 공연을 무대에 올려 융복합 콘텐트의 패션쇼를 열었다. 2개의 대형 스크린에선 색의 물결이 미디어 아트로 상영되고, 정가·판소리·무용이 어우러져 물의 춤을 표현하는 가운데 흑색·적색·청색을 테마로 영화 ‘안시성’ ‘간신’ 그리고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의상들이 등장해 장관을 연출했다. 마지막에는 ‘하무’ 의상을 올려 우리 옷의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스토리텔링을 완성시켰다. 
이진희 디자이너가 예술감독과 의상을 맡은 패션쇼 '2020 진주 실크 패션쇼-물의 춤, 생명과 환희의 색’ 무대 모습. 사진 하무

이진희 디자이너가 예술감독과 의상을 맡은 패션쇼 '2020 진주 실크 패션쇼-물의 춤, 생명과 환희의 색’ 무대 모습. 사진 하무

그가 이처럼 ‘물’을 강조한 것은 진주 실크의 탄생과 연관이 있다. 고려 왕실에 진상했다는 『고려사』 문헌기록으로 짐작해 7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진주 실크는 남강의 맑은 수질 덕분에 선명하고 고운 결의 염색으로 유명하다. 1924년 근대식 실크 제지를 위한 동양염직소가 설립되면서 이후 진주 지역에는 현대식 설비를 갖춘 실크 공장들이 많이 세워졌다. 한때 100여 개가 넘는 실크 관련 업체가 번성했지만 현재는 그 절반 이하로 규모가 축소됐다. 한복이 주축이 됐던 생활모습이 달라지면서다. 하지만 여전히 전국 실크 생산의 70%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진주 실크는 세계 5대 실크 명산지(이탈리아 꼬모, 프랑스 리옹, 일본 교토, 중국 항조우와 쑤저우, 한국 진주)로서의 자부심을 이어가고 있다. 
이진희 디자이너가 예술감독과 의상을 맡은 패션쇼 '2020 진주 실크 패션쇼-물의 춤, 생명과 환희의 색’ 무대 가운데 선보인 '하무' 의상. 사진 하무

이진희 디자이너가 예술감독과 의상을 맡은 패션쇼 '2020 진주 실크 패션쇼-물의 춤, 생명과 환희의 색’ 무대 가운데 선보인 '하무' 의상. 사진 하무

‘성균관 스캔들’ 의상을 만들 때부터 진주 실크를 사용해온 이 디자이너는 직접 진주로 내려가 공장 대표님들과 논의하며 새로운 원단을 짜고 염색 기법을 개발하는 등 남다른 인연이 있다. 
“중국 실크도 많이 써봤지만 몇 번 빨면 힘이 없어지는 반면, 진주 실크는 늘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죠. 옷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진주 실크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소명의식이 생기더라고요.”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성균관 스캔들' 등의 한복 의상을 맡았던 디자이너 이진희씨가 최근 진주 실크와 협업해 패션쇼를 개최하고 영화, 드라마 속 의상을 전시한 '한복극장전'도 열었다. 장진영 기자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성균관 스캔들' 등의 한복 의상을 맡았던 디자이너 이진희씨가 최근 진주 실크와 협업해 패션쇼를 개최하고 영화, 드라마 속 의상을 전시한 '한복극장전'도 열었다. 장진영 기자

이진희 디자이너는 30일까지 서울 웨이브아트센터에서 ‘한복극장전’도 열었다. ‘안시성’ ‘간신’ ‘구르미 그린 달빛’ 속 주요 의상들을 전시하는 자리였다. 4년여의 기획 끝에 열린 이번 전시는 이 디자이너가 만든 한복들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고운 자태의 한복 사이에는 AR 시스템을 비치해 실제 의상을 입고 열연했던 조인성·주지훈·박보검 등의 영상도 볼 수 있게 했다.     
“영화나 드라마 속 한복들이 예전에는 역사적 고증에만 매어 있었다면, 이제 관객들도 영화 속 캐릭터를 살리기 위한 리얼리티를 더 높이 평가해주는 것 같아요.” 
영화적 리얼리티란 이런 것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주인공인 이영 세자는 조선의 왕세자다. 예전 같으면 왕세자에게 핑크 등의 파스텔 톤 의상을 입히는 일은 불가능했다. 
“스태프들은 발칵 뒤집혔죠. 핑크 옷을 입은 왕세자는 고증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격 떨어져 보인다는 거예요. 남자한테 파스텔 톤이 왠 말이냐는 거죠. 그런데 이영 세자는 예술적 감성과 섬세함, 청년의 풋풋함까지 가진 아름답고 총명한 캐릭터였고 그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색은 파스텔 톤이었죠. 1020세대의 심리적 정서를 못 건드리면 이 작품은 성공할 수 없다고 끝까지 싸웠어요.” 
이진희 디자이너가 제작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속 이영(박보검) 세자의 의상. 총명하고 아름다운 왕세자의 캐릭터를 위해 파스텔 톤의 실크를 사용했다. 사진 서정민

이진희 디자이너가 제작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속 이영(박보검) 세자의 의상. 총명하고 아름다운 왕세자의 캐릭터를 위해 파스텔 톤의 실크를 사용했다. 사진 서정민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구르미 그린 달빛’ 속 파스텔 톤 한복은 젊은 세대에게 입고 싶은 옷으로 크게 화제가 됐다. 
“박보검이라는 배우가 이영 세자 그 자체라 해도 좋을 만큼 완벽하게 캐릭터와 옷을 표현해준 덕분이기도 해요. 저한테는 참 기억에 남는 배우인데, 군 입대하기 한 시간 전에 전화를 걸어 ‘구르미 때 참 행복했다’며 ‘제대 후 다음 작품에서도 감독님과 꼭 다시 작업하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마음 씀씀이가 참 예쁜 친구예요.”
이 디자이너는 23년 간 무대와 스크린에서 선보였던 의상 3만 벌을 창고에 차곡차곡 보관하고 있다. “한국의 무대·영화 의상 역사가 짧기 때문에 기록해둬야 한다는 책임의식이 있다”고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극적 리얼리티를 만들 때도 우리 복식에 대한 미학과 양식을 알고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는가 아닌가는 큰 차이가 있죠. 동시대적인 감각과 고증이 결합된 패션이라는 점에서 옷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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