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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내로남불’ 코로나 방역의 폐해

중앙일보 2020.12.01 00:41 종합 28면 지면보기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살아남아 내년 추수감사절을 기념합시다. 백신이 곧 나옵니다. 이번에 딱 한 번만 참으면 됩니다.” 추수감사절(지난달 26일)을 앞두고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명절 대이동을 자제해달라고 호소했다. 보건 전문가들은 “추수감사절에 여행하면 크리스마스는 중환자실(ICU)에서 보내게 될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도 내놨다. 겨울로 접어들며 코로나19 감염과 사망이 증가하는 가운데 추수감사절이 기폭제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안간힘이다.
 
그런데도 많은 미국인은 ‘대이동’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도 며칠째 텅 비었다. 추수감사절 전날까지 닷새간 600만 명 넘게 공항을 이용했다고 한다. 비행기보다 자동차 이동 수요가 더 많은 점을 고려하면 수천만 명이 가족을 만나러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 이상 정부 경고나 권고가 안 먹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9개월째로 접어드는 사실상의 격리 생활에 지치기도 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유명인들이 수없이 감염됐지만, 치명적인 결과는 없었다는 ‘학습 효과’도 한몫했다.
 
글로벌 아이 12/1

글로벌 아이 12/1

무엇보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들 탓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놓고 방역 규칙을 무시해 백악관을 집단 발병지로 만들었고, 감염되지 않으면 핵심 측근이 아니라는 말까지 회자했다. 야당의 ‘내로남불’도 못지않다.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주민에게는 모임 자제를 요구하면서 자신은 로비스트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단체로 식사했다. 같은 당 마이클 행콕 덴버시장은 “얼굴을 마주하는 저녁 식사 대신 온라인 가족 모임을 하라”고 트윗을 올린 지 30분 후 가족 상봉을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규칙 자체의 논리적 타당성이 부족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도 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올해 추수감사절에는 따로 사는 가족이 한 집에 모이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식당 영업은 허용하고 있다. 가족이 집에 모여 식사하면 안 되지만, 식당에서 모이면 따로 사는 가족도 만날 수 있다는 얘기다.  
 
뉴욕시가 술집과 체육관은 열면서 학교를 폐쇄하는 것도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업시설을 닫아야 마땅하나 지역 경제와 소상공인 생계를 위해 허용하는 것인지, 학교를 열어야 마땅하나 교사 노조의 힘으로 닫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정책이 혼란스럽거나 투명하지 않으면 국민은 따르지 않는다. 12월 미국 코로나19 상황은 올봄을 능가해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데, 신뢰를 잃은 정부가 쓸 수 있는 도구는 많지 않아 보인다.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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