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 사진:AP=연합뉴스
미국發 경기 부양에 한국 경제도 볕드나
특히 트럼프 경제의 패배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 사태가 핵심으로 작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초기부터 코로나19를 ‘독감’에 비유하며 위험성을 과소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은 코로나19 사태로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환,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에 빠졌다. ‘경제만 좋으면 대통령 재선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법칙처럼 받아들여지는 미국에서 올해 초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자랑해 온 사상 최고 주가지수, 최저 실업률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47년간 상원의원과 부통령으로 활동하며 내세웠던 바이든 후보의 ‘큰 정부’ 선호도 반트럼프 진영의 호감을 이끌었다. 부모의 부동산 사업을 물려받아 승승장구한 트럼프 대통령은 법인세를 깎고 시장경제 활성화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바이든은 정치활동을 하는 내내 정부 개입을 통한 중산층 재건을 주창했다. 그는 과거 선거 유세에서 자신을 ‘중산층 조’라고 부르기도 했다. 결국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중산층은 트럼프의 기업 우선 시장주의 정책에 등을 돌렸다.

트럼프 정책 리셋, 코로나19 대응 강화

바이든 당선인은 당장 바이드노믹스에서의 코로나19 극복 대책을 내놨다. 트럼프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실패에 따른 경제 침체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대선 승리를 거머쥔 만큼 코로나19 극복이 경제 회복 목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2.22%(전년 대비 0.65%포인트 성장), 2018년 3.18%(0.97%포인트 성장), 2019년 2.33%(-0.85%포인트 하락) 등으로 나쁘지 않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올해 코로나19에 막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미국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11월 4일 10만 명을 웃돌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이후 5일 연속 10만 명 이상 발생했다. 누적 확진자는 1000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도 24만 명 이상 나왔다. 바이든 당선인은 인수위원회 웹사이트에서 ▶과학에 귀를 기울이고 ▶공중보건 관련 결정은 전문가와 상의하며 ▶신뢰·투명성·책임을 높이는 등 7개의 핵심 계획으로 코로나를 물리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당선인은 12명 규모의 코로나19 대응 테스크포스(TF)도 9일 출범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코로나19 종식 이후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을 회복시킬 계획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질환 등으로 건강보험 가입이 거절당하는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고 건강보험료를 낮추고 합리적이고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확장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당장의 변화는 행정 명령을 통해 이뤄질 전망이다.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해 상·하원 동의가 필요 없는 행정명령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증세 예고한 바이드노믹스, ‘큰 정부’ 전환
경기 부양은 민주당이 1930년대 대공황 당시부터 성공해본 경제 전략이다. 단, 경기 부양의 반대 면엔 증세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은 이미 증세를 공약에 내걸었다. [이코노미스트]가 바이든 당선인의 선거 공약을 분석한 결과 바이든 당선인은 이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단행한 감세 정책 철회를 예고했다. 바이든 당선인의 경제 참모인 헤더 부셰이 공정성장을위한워싱턴센터 대표는 “증세를 통한 재정 확대는 공공투자로, 소비확대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우선 대기업의 법인세를 상향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5%였던 법인세율을 21%로 낮췄는데 바이든 당선인은 28%로 올리기로 정했다. 15%의 최저한세율도 도입하기로 했다. 최저한세율은 기업이 아무리 세금 감면을 받더라도 반드시 내야 하는 세금 비율이다. 고소득층 증세도 이뤄질 전망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앞서 트럼프 정부서 37%로 낮아진 40만 달러 초과분의 최고세율을 39.6%로 복구하고 급여세도 추가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증세 외에 낮은 금리를 통한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펼 가능성도 대두된다. 증세를 통해 정부 세입을 늘리고 정부 지출을 늘려 경제에 활력을 주기 위해선 낮은 금리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당선인의 경제 정책 TF에 참여하고 있는 스테파니 켈튼 스토니브룩대 교수는 정부 중심 경기 부양을 위해선 증세에 더해 화폐 발행을 해야 한다는 현대 화폐이론 주창자다. 켈톤 교수는 앞서 “(미국은) 재정이 아니라 경제 균형이 핵심”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프라 투자로 일자리 만들고, 최저임금 인상

미국은 현재 1930~1960년대 건설한 철도와 교량, 전력 설비 등 인프라 시설이 낙후해 유지 보수에 상당한 비용을 쓰고 있다. 미국 토목학회는 공공 인프라 투자에서 유지 보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7년 60.5%에 달했고, 2025년까지 1조5000억 달러가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이든은 지난해 2월 나온 민주당의 그린뉴딜 결의안에 따라 4년간 2조 달러를 친환경 인프라로 구축에 투자, 일자리 창출 및 기후변화 대응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미국 내 경제 활성화를 위한 세제정책도 추진된다. 바이든은 미국 제조업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 밖으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기업엔 세금을 올리고, 폐쇄된 미국 내 생산시설을 재개하는 기업에는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공약했다. 또 미국 내 생산시설 제품 우선 구매 등에 4년간 4000억 달러를 투자해 5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함과 동시에 노동자 생활 향상 등을 위해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현재 미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시급은 7.5달러다.
하지만 바이드노믹스가 미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미지수다. 정부 재정지출 확대를 계획하고 있지만, 일자리 확대와 제조업 부흥이란 방향성이 트럼프 행정부와 같기 때문이다. 자국 우선주의와 중국에 대한 압박과 견제 기조도 달라지지 않았다. 무디스는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 효과가 클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지만, 반대 시각도 있다. 후버연구소는 정부 지출 중심 바이드노믹스로 2030년까지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2조6000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美 정부 지출, 세계 교역량 증대 이끌 것” 전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바이든-해리스 인수위원회’ 공식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 사진:바이든-해리스 인수위
먼저 국내 주요 경제기관들은 바이든 당선인의 대선 승리가 한국의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산하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바이든 집권 시 미국 GDP 전망치가 트럼프 집권 시 대비 평균 1.2%포인트 높게 나타났다”면서 “세계 최대 소비국인 미국의 성장률이 1.2%포인트 높아지면 세계 교역물량은 0.4%포인트 늘어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이어 “한국은행 계량모형에서 우리나라 GDP는 0.1%포인트 상승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은행 계량모형은 세계 교역량과 국내 GDP 간 상관관계를 나타낸 지표로, 세계 교역량이 1% 상승하면 국내 GDP는 0.26%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경제 연구원은 한국의 수출 증가율이 연평균 0.6~2.2%포인트, GDP 성장률은 0.1~0.4%포인트 높아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씨티그룹과 골드만삭스, 무디스, 옥스포드이코노믹스 등 연구기관들이 트럼프 대비 바이든 집권 시 내년 미국 GDP 전망치를 0.2%~1.2%포인트까지 높여 잡고 있는 데 따른 결과다.
미국의 경기 부양은 미국 내수 증가를 의미한다. 미 내수 증가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등의 대미 수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그룹 BNP는 “바이든과 민주당이 승리하면 한국이나 중국 등 아시아 기업의 주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다만, 미·중 무역 갈등이 변수다. 금융그룹 크레디트스위스(CS) 쪽은 “아시아 증시가 바이든 승리가 낳은 수혜를 즐기기 위해서는 미·중 무역 갈등이 더 이상은 악화하지 않아야만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바이든 당선인과 민주당이 그간 내놓은 공약 중에는 한국 경제에 위험 요소가 될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게 환경 규제다. 민주당은 기후협정을 준수하지 않는 국가에 ‘탄소조정세’ 부과와 같은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미국이 환경 관련 각종 정책을 밀어붙이는 경우 환경 규제에 대한 대응이 상대적으로 덜 준비된 한국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면서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 등에서 소극적인 편”이라고 평가했다.
바이든 정부가 증세에 더해 채권 발행을 늘릴 경우도 한국 경제엔 문제다. 미 국채는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현금 흡입력이 가장 강한 자산이다. BNP에 따르면 과거 미국이 국채를 더 많이 찍어내면, 한국 국채 수요가 줄어들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채 수요가 줄면 한국은 시장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해 내년 적자국채 발행 규모를 사상 최대인 89조7000억원으로 높여 잡은 것과 대조된다. 물량은 느는데 수요가 주는 셈이다.
미·중 갈등이 여전할 수 있다는 점도 부정적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8일 보고서에서 “바이든 당선인도 대중국 강경책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이며, 지금의 보호무역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국제통상학)는 “미국 민주당도 트럼프 행정부 못지않게 중국을 압박할 것”이라며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는 새로운 통상 질서를 구축하면서 한국에 선택을 요구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면밀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 영향 파악” 바이드노믹스 대응 박차

정부는 바이든 정부 대응에 나섰다. 그간 미국 대선 대응 TF를 꾸려 시장 영향을 파악했던 정부는 신(新)정부 대응 TF로 조직을 개편했다. 기획재정부는 “경제정책국·국제금융국·대외경제국을 축으로 미국 신정부 출범에 따른 경제·무역 정책 등을 전면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세계 경제에 많은 영향이 있을 것이며, 대선 결과 시나리오별 대응책을 검토했다”고 밝힌 바 있다.
내부 TF와 함께 장·차관급 회의에서도 바이든 정부 출범에 따른 경제·무역 정책 등을 전면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장관급 회의로는 홍 부총리가 주재하는 대외경제장관회의가 있고, 차관급 회의로는 김용범 1차관이 주재하는 거시경제금융회의가 예정돼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획재정부 뿐만 아니라 부처 각각 바이든의 공약 중 한국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을 파악해 거시경제, 무역, 통상 등 분야별 조율이 필요한 정책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