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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명문대 입학, 정문·뒷문·옆문까지 있다”

중앙선데이 2020.11.28 00:21 713호 20면 지면보기
공정하다는 착각

공정하다는 착각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정의란 무엇인가』 샌델 교수
미국 지탱해온 능력주의 비판

엘리트 오만, 트럼프 현상 불러
정치가 일의 존엄 되찾아줘야

함규진 옮김
와이즈베리
 
『정의란 무엇인가』로 전 세계적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이번엔 『공정하다는 착각』으로 다시 한번 ‘사회적 정의’에 대해 근원적 질문을 던졌다. 이 책의 가장 큰 화두는 능력주의(Meritocracy)와 공동선(Common Good)이다.
 
능력주의는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로 치환할 수 있다. 공평한 기회 하에서 노력과 재능만 있으면 누구나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데올로기를 떠나 ‘만능키’로 통했던 능력주의는 그동안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원리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샌델은 바로 이런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이 현재의 미국을 경제적·정치적·문화적·사회적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승자들은 내 힘으로, 내가 잘나서 성공했다는 도덕적 정당성을 믿고 싶어한다. 자신이 자수성가했다고 생각할수록 감사하는 마음과 겸손을 배우기가 어렵다. 반대로 패자들은 ‘자신의 곤경은 사회적 시스템이 아닌 바로 자신의 탓’이라는 굴욕감을 갖게 한다.
 
과거와는 달리 능력주의의 대전제가 되는 기회의 평등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도 지금은 드라마 ‘스카이 캐슬’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금수저론이 통한다. 승자와 패자의 기준이 되는 대학 입학 과정의 공정성은 크게 훼손됐다. 능력주의에 기반한 SAT 점수와 스펙 등으로 들어가는 ‘정문’, 동문자녀우대나 기여 입학 같은 ‘뒷문’, 시험성적 조작이나 뇌물 건네기 등 부정·불법·편법적인 ‘옆문’까지 모두 상류층에게 유리한 구조로 바뀌었다. 아이비리그 대학 입학생 3분의 2가 상위 20% 가정 출신이라는 통계가 이를 잘 말해 준다. 능력주의 오만의 가장 고약한 측면이 학력주의다. 이런 면에서 미국은 더는 기회의 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맨해튼 컬럼비아대학 스타디움에 걸린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깃발. 미국 명문대도 상류층 진학률이 높다. [사진 Kenneth C. Zirkel]

미국 맨해튼 컬럼비아대학 스타디움에 걸린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깃발. 미국 명문대도 상류층 진학률이 높다. [사진 Kenneth C. Zirkel]

지난 40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시장중심적 세계화에 따른 과실은 최상류층에 과다하게 돌아갔고 보통사람들은 별 볼 일 없거나 더 빈궁한 삶을 살게 됐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의 기저에 잘못된 능력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고착화하면서 능력주의는 세습귀족화하게 된다.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간격이 너무 벌어져 오히려 오르기 힘든 장애물이 돼 버렸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적 이동성은 이제 기대 난망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좌절이다.
 
게다가 성공을 뻐기는 엘리트층은 자신들보다 뒤떨어진 계층을 이해하기보다 깔보는 일이 많았다. 엘리트들의 거들먹거리는 문화는 노동 계급과 중산층의 분노와 절망을 불렀다. 이는 엘리트에 대한 좌우를 망라한 포퓰리즘의 반격에 봉화를 올리게 된 계기가 됐다. 그 결과가 2016년 미 대선에서의 극좌 샌더스 돌풍, 불만과 증오를 앞세운 트럼프의 당선 그리고 같은 해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통과로 나타났다. 단순히 패자 의식을 가진 층의 경제적 곤란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세계화를 비판하면서 국민주권원칙을 재확인하고 국가 정체성과 국가적 자존심의 강조에 동조했다.
 
샌델은 이 지점에서 능력주의 신화를 깨고 사회정의를 다시 세울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그동안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공동선 개념에도 치명적이었으며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일의 존엄성을 정치어젠다 중심에 놓을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능력의 시대가 풀어헤쳐 놓은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은 경제인 동시에 문화이며 생계를 꾸리는 방법이자 동시에 사회적 인정과 명망을 얻는 원천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패자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할 수 있고, 자신을 공동체 구성원으로 여길 수 있도록 만드는 정치적 프로젝트를 찾아내는 것이 과제가 된다. 사회적 상승에 실패한 사람들이 “내가 고물이 되어 버린다는 두려움의 현실화에 직면해 공동선에 기여할 길이 막혔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그들을 위로하고 탈출구를 제공해야 한다. 이들이 정의에 더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공공선을 위한 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샌델이 무슨 신통방통한 명확한 해결책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대안적 모색은 독자와 정치가들에게 맡겼다. 무엇이 공동선에 대한 가치 있는 기여인가를 따지는 공적 토론이 본격적으로 필요한 시점이 됐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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