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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불안의 리허설…불감증 걸린 사람에게 경각심 ‘찰칵’

중앙선데이 2020.11.28 00:02 713호 18면 지면보기

[아티스트 라운지] 사진작가 임안나 

‘불안의 리허설 3’(2018). 100x150㎝.

‘불안의 리허설 3’(2018). 100x150㎝.

전시장에 들어서면 왼쪽 벽면에 내전이나 테러로 갈가리 찢긴 듯한 풍경 사진이 보인다(기자는 지금 이미지를 텍스트로 재현하는 무모한 짓을 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중동 같은 분쟁 지역이 아니다. 한국이다. 무너져 내린 아파트 잔해 사이로 한국의 근대화, 아파트 주거문화를 상징하는 주택공사 로고가 보인다. 그런데 이 재난 풍경 사진의 아래쪽 가운데쯤 삼각대가 서 있다. 건축용 측량 도구처럼 보인다. 파괴와 건설은 같은 뿌리라는 뜻일까. 그렇다면 이 사진 속 현실이 맞닥뜨린 재앙은, 대대적인 재건축을 앞둔 태풍전야 같은 시공간을 활용해 연출된 것인가.
 

일우사진상 수상작품전
재난 재연 순간 묘하게 비틀어
자연스럽지 않아 위화감 가득

촬영 장면까지 프레임 안에 넣어
“객관적 보도 사진도 과장 가능”

중견 사진작가 임안나(50)씨의 제11회 일우사진상 출판부문 수상작가전 ‘불안 ON/OFF’는 이처럼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은 이미지, 그래서 위화감을 자아내는 작품으로 가득하다. 앞서 소개한 작품의 제목은 ‘비극의 시뮬레이션 6(사진 1)’. 역시 심상치 않다. 비극을 흉내 낸 가짜 비극이라는 뜻 아닌가. 그러고 보니 임씨의 전시에서 뭔가 고정되고 안정적인 대상은 찾기 어렵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불안은 깜빡거린다. 켜졌다 꺼진다.
 
임안나 작가.

임안나 작가.

1전시장 끄트머리에 임안나식 연출 사진의 끝판왕 같은 작품이 걸려 있다. (기자는 여전히 무모하다) 제목부터 노골적인 ‘불안의 리허설 3(사진 2)’이다. 평화로운 공원에 닥친 재난의 풍경이다. 사람들은 피를 흘리고 휴대용 가스통, 옷가지 같은 것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그런데 잘 보면 이 재난은 연출된 가짜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조명 등 촬영 도구들이 재난 현장 주변에 설치돼 있다. 재난 혹은 불안이 리허설(재연)되는 동안 사진 위편 원경은 텐트 치고 휴식을 취하는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다.
 
이 작품은 해외에서 주목받았다. 임씨의 2016~2018년 작업 ‘불안의 리허설’ 시리즈는 지난해 프랑스 아를 사진페스티벌에서 포트폴리오 어워드를 받았다. 그러자 검증 깐깐하기로 악명 높은 미국의 대표적인 주간 문예지 뉴요커가 임씨의 작품 세계를 지난해 말 비중 있게 소개했다. 북한의 핵 공격 등으로 공황 상태에 빠진 듯한 거대 도시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실감 나게 전하지 않고 묘하게 비틀어, 주로 재연(리허설)되는 순간에만 깜빡 켜졌다 금세 꺼지고 마는 한국인들의 핵 경각심, 그러니까 불감증을 건드렸다는 게 기사의 요지였다.
 
임씨가 처음부터 이런 ‘시대적인’ 작업을 했던 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그는 미국에 있었다. 5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캘리포니아주립대(CSUF)에서 사진 공부를 했다. 뉴욕으로 근거를 옮겨 2년간 광고 사진 스튜디오에서 상업 사진을 찍으면서도 예술사진에 매달렸다. 한국에 돌아온 그를 이번에는 달큰한 이미지에 목마른 정치판이 픽업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정치인들의 선거용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비극의 시뮬레이션 6’(2018). 150x225㎝. 사진 아래편 가운데 삼각대가 보인다.

‘비극의 시뮬레이션 6’(2018). 150x225㎝. 사진 아래편 가운데 삼각대가 보인다.

지난 24일 전시공간인 서울 서소문동 일우스페이스에서 임씨를 만나 물었다. 과거 상업 사진, 정치인 사진에서 지금 작업은 180도 반대편에 와 있는 거냐고.
 
임씨는 그렇다고 했다. “광고나 정치인 사진이 현실을 속이고 관객을 자극해 결과적으로 이미지가 감정적으로 소비되는 데 기여하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면, 내 작업은 사진이라는 미디어가 그렇게 실제를 과장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리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임씨는 “대체로 객관성을 인정받는 보도 사진도 그런 과장에서 예외는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관객을 끌어 모으려다 보니 자극적인 것, 스펙타클한 것을 추구하는 속성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다. ‘비극의 시뮬레이션’ 등에서 재난 현장을 포착하는 보도 사진 촬영 장면까지 임씨가 최종적인 사진 작품 프레임 안에 넣은 것은 그런 문제의식의 산물이다. 임씨는 “내 사진 작업을 예술로 볼 수 있다면 감정적으로 소비되지 않겠다는 그 하나를 꼽을 수 있다”고 했다.
 
사진아카이브연구소 이경민 대표에 따르면 국내 사진 예술의 위상은 초라하다. 1990년대 중반에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첫 사진 기획전이 열렸다. 국공립 사진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아직 한 곳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유럽, 이웃 일본에 비하면 크게 뒤처져 있다. 뒤늦게 사진 예술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지만 정작 왜 사진이 예술작품일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부족한 실정이라고 이 대표는 진단했다.
 
그렇다면 뭔가 예술성을 고민하는 임씨의 작업을 ‘예외적인’ 진지한 작업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전시는 2011년 ‘클라이맥스의 재구성’ 등 지난 10년 임씨의 작업을 결산하는 성격이다. 40여 점을 내년 1월 말까지 감상할 수 있다. 내년 3월 말 국내 이안북스와 독일 케러(Keher) 출판사에서 임시의 사진 작품집을 공동 출간한다. 일우사진상 특전의 하나다. 일우사진상을 운영하는 일우재단은 사진 예술에서 공공의 빈자리를 메우는 민간역을 해왔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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