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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입니다" 2호선 방역 방송에…"웬 잔소리""뜬금없다"

중앙일보 2020.11.26 18:32

“안녕하세요. 정세균입니다” 시민 반응 보니

서울 지하철 2호선 전동차가 홍대입구역에서 신촌역을 향해 가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합정역, 아현역 등 2호선 10개역을 지날 때 전동차에서 정세균 국무총리가 육성으로 녹음한 방역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다. 최은경 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전동차가 홍대입구역에서 신촌역을 향해 가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합정역, 아현역 등 2호선 10개역을 지날 때 전동차에서 정세균 국무총리가 육성으로 녹음한 방역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다. 최은경 기자

26일 정오쯤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 안. 합정역이 가까워져 오자 지하철에서 평소 들리지 않던 한 남성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이 목소리는 8분 뒤 아현역에 도착하기 직전 또 나왔다. 
 

지난 16일부터 2호선 10개역서 방송
“총리가 얘기하니 더 와 닿는다” vs
“국민에 대한 ‘공공 잔소리’ 과해”
농림부 식사문화 개선 캠페인 일환

 목소리의 주인공은 정세균 국무총리다. 13초 분량으로 녹음된 방송 내용은 이렇다. “안녕하세요. 국무총리 정세균입니다. 음식 덜어 먹기, 위생적인 수저 관리, 종사자 마스크 쓰기. 모두가 건강해지는 세 가지 습관입니다. 함께 지켜주세요.” 
 
 이 안내방송은 지난 16일부터 지하철 2호선 서초·삼성·잠실나루·구의·뚝섬·신당·아현·합정·신대방·낙성대 등 10개 역에서 나오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이 추진하는 범부처 식사문화 개선 캠페인의 하나다. 
 
 지난 6월 9일 총리 주재로 열린 식품안전정책위원회 회의에서 감염병에 취약한 식사문화 개선 홍보 방안이 논의됐다. 이후 농림부가 서울교통공사에 2호선 음성광고를 의뢰했으며, 10개 역은 서울교통공사가 기존 하차역 안내, 에티켓 방송, 기타 광고 등과 역 간격을 고려해 배치했다. 
 
 이에 대한 시민 의견은 엇갈렸다. 국무총리가 방역 홍보에 직접 나서줘 좋다는 반응이 나오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국민을 상대로 한 ‘공공 잔소리’가 과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뜬금없다”고 말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대본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대본회의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날 2호선에 타고 있던 김모(55)씨는 “총리님이 이례적으로 재능기부 해주신 것 아니냐”며 “일반인보다 총리가 얘기하니 내용이 더 와 닿는다”고 말했다. 2호선 역사에서 만난 윤모(63)씨 또한 “(정 총리의) 차분한 음성에 안정감이 들고 서민들에게 관심을 주는구나 싶어 좋다”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한 시간 정도 2호선에 머무르는 동안 상당수 승객들은 방송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지하철에서 막 내린 권현빈(17)군은 “좋다, 안 좋다기보다 뜬금없다는 생각은 했다”며 “국무총리라고 할 때는 집중했는데 사실 그 뒤 내용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방송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는 승객들도 있었다. 합정역에서 만난 신모(44)씨는 “정부가 중국인을 받아들여 코로나19가 퍼진 것인데 이제와 국민에게 방역수칙을 지키라고 지하철 방송을 하니 다 쇼로 보인다”며 “정치 성향이 진보도, 보수도 아니지만 현 정부가 집회 탓을 하며 핑계 대기에 급급한 것 같다”고 말했다. 
 

“40분 타니 목소리 4번 듣게 돼”

지하철 2호선 신촌역을 지나는 전동차. 이어폰을 착용한 이용객이 여럿 있었다. 최은경 기자

지하철 2호선 신촌역을 지나는 전동차. 이어폰을 착용한 이용객이 여럿 있었다. 최은경 기자

 
 한 50대 남성 직장인은 “2호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 40분 동안 같은 목소리가 4번이나 나와 짜증이 났다”며 “코로나 시국임을 고려해도 마스크 착용 안내, 일일 브리핑, 각 기관에서 보내는 안전문자 등 국민에 대한 정부의 일상 훈육이 도를 넘었다”고 했다. 
 
 그는 “음식 덜어 먹기 같은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불특정 다수에게 계속 주입하는 것은 국민을 애송이로 보는 행동”이라며 “대권후보로 꼽히는 정치인이 지하철에서 저런 방송을 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논란에 대해 농림부 관계자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으로서 총리가 직접 하게 된 것”이라며 “식사문화 개선에 대한 인식은 있지만, 실천이 잘되지 않아 접근성이 좋은 지하철을 활용해 실천율을 높이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 총리의 방송과 관련한 기사에는 “사회주의도 아니고 왜 총리가 지하철에서 방송하나”, “지하철공사에 민원 넣자” 등의 부정적 댓글과 “아이디어 좋다”, “응원합니다. 화이팅” 같은 긍정적 댓글이 함께 달렸다. 
코로나19에 따른 거리두기 2단계 첫날인 지난 24일 서울 명동거리에서 회사원들이 주문한 포장 음식을 들고 사무실로 이동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코로나19에 따른 거리두기 2단계 첫날인 지난 24일 서울 명동거리에서 회사원들이 주문한 포장 음식을 들고 사무실로 이동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방송이 나간 뒤로 하루 평균 10건 정도씩 이와 관련한 불만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 ‘취지가 좋은 건 알겠는데 정치인이라 듣기 싫다’라거나 ‘출퇴근 시간에 시끄럽다’ 등의 내용이다. 정 총리의 지하철 방송은 오는 29~30일 종료된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연예인은 간혹 있었지만, 국무총리나 고위공직자가 광고방송을 한 사례는 없는 것 같다”며 “좋은 취지의 공익광고인데 논란이 일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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