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위사업청의 다목적 무인차량 신속획득 시범사업에서 '가위바위보'로 낙찰 업체가 된 현대로템의 HR-셰르파. 사진 현대로템
“군사무기 입찰을 가위바위보로 결정했다?”
지난 24일 방위사업청이 최종 낙찰 사업자를 선정한 ‘군용 다목적 무인차량’ 신속시범 획득사업을 두고 방위산업계가 시끄럽다. 38억3600만원 규모의 미래 전력 시범사업이었는데 최종 낙찰자를 ‘가위바위보’로 정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목적 무인차량은 말 그대로 운전자 없이 원격으로 조종하는 일종의 로봇 차량이다. 위험한 전투 상황에서 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채 수색·정찰을 하거나 화력지원, 물자보급, 환자 후송 등의 임무를 할 수 있다. 드론 공격기처럼 아군의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미래 전력인 셈이다.
두 회사 모두 ‘0원 입찰’

방사청이 채택하고 있는 추첨 방식은 시스템을 통한 ‘가위바위보’ 방식이었다. 미래 전력 사업 낙찰자를 가위바위보로 정했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방사청은 각 업체가 시스템이 ‘가위바위보’ 중 하나를 5회에 걸쳐 선택하게 했고, 최종 승자로 현대로템이 결정됐다.
낙찰을 받지 못한 한화디펜스는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지만, 불만이 적지 않다고 한다. 2016년부터 민·군 합동과제로 다목적 무인차량 국책사업에 참여해 왔는데, 갑자기 신속시범 획득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입찰이 진행됐고 ‘가위바위보’로 주도권을 뺏겼다는 것이다.

한화디펜스가 방위사업청의 신속시범 획득사업에 내놓은 4X4 다목적 무인차량. 요구성능은 만족했지만 '가위바위보'에서 져 탈락했다. 사진 한화디펜스
방사청, “가위바위보, 법적 문제 없다”
방사청은 “양산 사업은 필요성이 인정되면 절차를 거쳐 진행되며, 신속획득 시범사업과는 별개로 경쟁입찰을 통해 업체를 선정할 것”이라고도 했다. ‘가위바위보’ 방식으로 낙찰 사업자를 정하기는 했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성능 평가를 세분화하지 않은 사업자 선정 방식 역시 사업 특성상 더 효율적이라는 의미다. 신속시범 획득사업 낙찰 사업자라고 해서 이후 양산사업에서 유리한 게 아니라고도 설명했다.

신경전 벌이는 ‘지상무기’ 맞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방사청의 주장은 법적으로 틀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이스라엘 등 국가에서도 무기체계 계약과정에서 성능 요건을 충족하고 가격이 동일할 경우 추첨을 통해 낙찰자를 정한다. 하지만 단순 조달 물품이 아닌 첨단 무기체계에서 ‘추첨 방식’으로 낙찰 업체를 정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현대로템의 대표 지상무기 K2 전차(왼쪽)와 한화시스템이 자랑하는 K9 자주포. 두 무기 모두 전력화가 끝났거나 막바지 단계다. 사진 현대로템, 한화디펜스
전문가 “선정 과정 더 치밀했어야”
두 회사가 ‘출혈 경쟁’을 감수하는 건, 우리 방산 시장 파이가 작기 때문이다. 한화디펜스의 대표 무기인 K9 자주포는 이미 전력화(도입)가 끝났고, 현대로템의 K2 전차도 막바지에 이른 상황이다. 결국 다목적 무인차량 같은 미래 무기 체계를 선점하는 게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길인 셈이다.

한화디펜스의 한국형 M3 자주도하장비. 세계 10여개국에서 전력화됐고 실전경험도 갖췄다는 게 한화디펜스가 내세우는 장점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연합훈련에서 세계 최장(350m) 부교 구축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사진 한화디펜스
5000억원 자주도하장비 놓고 또 격돌
당분간 대규모 지상무기 사업 계획이 없는 터라 두 회사 모두 사활을 걸고 경쟁 중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이번 ‘가위바위보’ 입찰이 단순 해프닝처럼 보이겠지만, 두 회사 모두 미래 생존이 달려있다는 점에서 더욱 신경전을 벌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로템이 개발하는 한국형 자주도하장비 AAAB. 한국과 지형이 비슷한 터키에서 전력화 경험이 있어 한국 군 작전에 유리하다는 게 현대로템 측의 설명이다. 런플랫 타이어, 수상 주행시 360도 회전 기동 기능 등 첨단 장비를 장착했다. 사진 현대로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