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무실도 못 가보고 재택"...코로나 신입사원 벌써 퇴사 고민

중앙일보 2020.11.26 05:00 종합 6면 지면보기

"입사동기가 100명이라는데 얼굴은 커녕 이름도 몰라요."

한 공기업에 지난 8월 입사한 장모(28)씨는 "입사한 지 넉달이 됐는데 동기들 이름도 다 모른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 공기업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신입사원을 연수원에 모아놓고 집체교육을 했다. 하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체의 집체교육을 없애고 2주간의 온라인 연수로 대체했다. 장씨는 "온라인 연수 때 화상회의를 하며 동기들을 처음 봤다"며 "단체 대화방을 만들긴 했는데 어색해서 아무도 글을 안 올린다"고 말했다. 
 

기획/코로나 세대, 잃어버린 1학년⑨

선배는 동기와 시작, 코로나 초년병은 나홀로 출발  

코로나 19가 확산을 즈음해 올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신입사원들은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집체교육을 통해 사내 문화나 동기, 업무를 익힐 기회를 갖지 못했다. 취업문을 뚫고 입사했지만 회식은커녕 칸막이 쳐진 구내식당서 혼자 점심을 먹고 사무실이 아닌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기도 한다. 사회 초년병들은 "선배들은 동기들과 함께 회사생활을 시작했지만 우린 나홀로 출발한 셈"이라며 "애사심이나 소속감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관련기사

외국계 금융회사에 8월 입사한 서모(28)씨는 “조를 짜서 재택근무를 할 정도라 회사 사람을 따로 편하게 만나는 건 생각 못 해봤다”며 “팀원이 15명인데 같이 점심 먹는 사람은 많아야 2~3명”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직장 동료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게 좋긴 한데 모르는 것을 편히 물어볼 사람이 없어 불편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 초년병들은 ‘동료애’나 ‘애사심’은 떨어졌다고 호소한다. 한 홈쇼핑 회사에 올해 2월 입사한 정모(28)씨는 “회사의 역사나 비전 같은 교육을 받으면서 애사심이 생긴다고 하던데 나는 코로나19로 연수가 생략됐다”며 “회사라기보다 각각 개인이 따로 일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중소 교육업체의 박모(26)씨도 “2월에 입사 직후 한 차례 회식한 이후로는 팀이 한 군데 모일 기회가 아예 없었다"며 "건물 내 층간 이동도 제한 돼 다른 팀 직원은 얼굴도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된 24일 장모(28)씨는 다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이날 장씨가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 [장씨 제공]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된 24일 장모(28)씨는 다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이날 장씨가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 [장씨 제공]

교육 없이 곧장 현장 투입 

한 대기업의 생산직에 취업한 한모(25)씨는 입사 1달 만에 현장에 투입됐다. 현장 교육을 받아야 했지만 2월 말 일정이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됐기 때문이다. 황씨는 “현장에서 뭘 어떻게 하는지 하나도 배운 게 없는데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그런데도 윗사람들은 ‘적응을 못한다’고 한다고 한다"며 "물어보려고 해도 해당 업무 담당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구내식당엔 칸막이가 쳐있어 대화도 못한다"고 답답해했다. 
 
이 회사에 한씨와 함께 취업했던 박모(25)씨는 입사 7개월 만에 퇴사했다. 업무 교육이 줄어 적응을 못 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생산관리는 내가 맡은 것뿐 아니라 공정 과정을 다 이해해야 하는데 다른 부서와 업체를 통한 교육이 전부 취소됐다”며 “현장에 혼자 들어가면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일이 생겼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아 퇴사했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한모(25)씨의 회사 구내식당. 코로나19 확산 이후 구내식당엔 칸막이가 설치됐고, 점심시간에도 직원간 대화가 금지됐다. [한씨 제공]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한모(25)씨의 회사 구내식당. 코로나19 확산 이후 구내식당엔 칸막이가 설치됐고, 점심시간에도 직원간 대화가 금지됐다. [한씨 제공]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도입한 기업이 늘면서 선임자가 지도해주는 사수 문화도 옅어졌다. 본지가 올해 신입사원 22명을 만나 물었더니 8명이 “사수가 없거나 대화를 할 기회가 없었다”고 답했다. 나머지 14명은 “선배 한두 명한테 주로 묻고, 그 외에는 물어볼 사람이 없다”고 했다. 중소 게임업체에 4월 입사한 김모(25)씨는 “입사하고 절반은 재택근무를 한 것 같다”며 “체계적으로 가르쳐 줄 사수도 없었고 각자 집에 있다 보니 누구한테 배울 여건이 아니었다”고 했다.
 
200명 규모의 홍보대행사 1년 차인 조모(26)씨는 대면 회의가 없어진 것을 아쉬워했다. 조씨는 “올해 초 회사에 처음 들어와서 회의 때 나오는 얘기를 듣고 업무 방식을 많이 배웠다"며 "그런데 3월부턴 회의를 안 하면서 이런 기회가 없어졌다”고 했다. 그는 또 “업무 지시가 사내 메신저로 이뤄지다 보니 직접 말로 하는 것에 비해 뭘 해야 하는지 모호할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나홀로 재택…늘 이직 준비중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산했지만 신입사원들은 이직 기회로 삼고 있는 경우도 많다. 중 제조업체에서 영업직으로 일하는 여모(27)씨는 최근 신입ㆍ경력을 채용하는 여러 회사에 서류를 접수했다. 여씨는 “코로나19로 채용 규모가 줄었지만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개인 시간이 늘어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재택근무 도중에 다른 회사 면접을 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KT 채용 담당자들이 2020년 채용에 도입하는 화상면접 시스템을 시험 사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KT 채용 담당자들이 2020년 채용에 도입하는 화상면접 시스템을 시험 사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보대행사에 입사했던 유모(27)씨는 최근 이직했다. 유씨는 “올해 초부터 재택근무를 하며 틈틈이 이직을 준비해 직장을 옮겼다”며 “특히 코로나19로 회사가 어려워지니까 위기에 대처하지 못 하는 회사의 민낯이 신입사원이었던 나한테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애사심 고리도 끊어지고 회사의 위기를 보니 이직을 선택하면서 큰 고민은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코로나로 기업 문화가 서구처럼 바뀔 수도 

이에 따라 코로나 초년병 세대를 시작으로 직장 문화가 바뀔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권기욱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로 직장 내에서 자연스럽게 쌓이던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회사와 근로자는 계약 관계만 남는다"며 "비전이나 회사 내 관계가 없다 보니 이직이 쉬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로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감소한다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며 “한국도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사회처럼 이직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바뀔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제도와 문화를 구축하느냐 여부"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특별취재팀=위문희ㆍ권혜림ㆍ정진호ㆍ이우림ㆍ편광현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