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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정부가 왜 이래

중앙일보 2020.11.26 00:45 종합 34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관 이름을 줄줄이 꿰는 사람이 많았다. 총리 황희, 국방장관 이순신 등의 조선시대 드림팀이나 한국 현대사 최강 내각을 채우는 퍼즐도 술자리 안주에 곧잘 올랐다. 지금은 장관을 서너 명 이상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다. 민간 기업이 크게 성장해 정부 역할이 축소됐기 때문이란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니다. 정부는 매년 500조원 이상을 쓴다. 더 크고 강해졌는데도 존재감은 민망할 정도다. 만기친람의 청와대 정부라서다. 청와대 행정관 이름이 더 많이 알려진 정부다.
 

정책 결정에 과학 데이터 무시하고
인사청문회 도덕성 검증도 비공개
정부 권위는 어떻게 높일 수 있나

또 위원회 공화국이다. 내각 위의 내각으로 불리는 각종 위원회가 정책 결정에 깊숙이 간여해 부처를 흔든다. 탈원전을 포함해 모든 포퓰리즘 정책이 그런 위원회를 통해 나왔다. 이번엔 가덕도신공항이다. 이 정부 출범 후 국정 패턴이 대체로 비슷하다. 500개 넘는 위원회에 책임을 떠미는 정부와 코드에 맞는 인사로 위원회를 만들어 자기들 입맛대로 밀어붙이는 정권 의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러니 못 찾겠는 건 조용필의 꾀꼬리만이 아니다. 정부 장관들도 실종된 지 오래다.
 
정부란 심판관이다. 이해집단 간 분쟁의 중재자로서 화해와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권위와 존경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다. 도덕성과 효율성이 두 개의 기둥이다. 효율성은 과학적 데이터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름만 검증이고 과학이지 그냥 내 맘대로다. 10조원 들어갈 초대형 국책사업을 뒤집으며 경제성은 검증하지 않았다고 한다. 광우병 사태 때는 국민 건강을 앞세워 온갖 괴담을 퍼부었다. 과학은 뒷전이었다. 12년이 흘렀지만 국내에서 광우병 사망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다를 게 없다.
 
말로만 도덕 정부다. 앞으론 인사청문회 때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할 모양이다. 큰 권력을 행사하는 고위 공직자는 권력에 상응하는 무거운 책무를 진다. 도덕성이란 이런 막강한 권력을 국가와 공익을 위해 조심스럽게 행사할 내적 기준이 확고한지 따져보는 잣대다. 그런 문제를 의원들끼리 밀실에서 비공개로 우물쭈물 하겠다는 거다. 인사청문회가 대통령의 인사권 전횡을 견제하는 수단이란 제도 자체의 취지는 숫제 생각도 않는 모양이다.
 
예쁜 사과가 맛이 더 좋은 것도 아니고 반짝인다고 모두 금은 아니다란 말이 있다. 겉과 속은 다르다. 미국이 고위 공직에 대한 인사권을 대통령은 지명권, 상원은 인준권을 갖도록 나눈 것도 따져 보자는 거다. 대상 직위만 1000개가 훨씬 넘고 까다롭게 추궁하는 청문회가 절반에 달한다. 우린 인사청문 대상이 60개 남짓이다. 그나마 국무위원은 표결 없는 무늬만의 청문회여서 기승전-임명 강행이다. 결과만 보면 크게 달라질 건 없다. 하지만 그마저 생략하고 마구잡이 코드 인사로 달려가겠다는 뜻이다.
 
도덕성 검증 비공개 방안은 ‘청문회 기피로 좋은 인재를 모시기 어렵다’는 대통령 발언에 이어 나왔다. 궤변이다. 지금 정부의 인사 검증 실패가 청문회 탓은 아니다. 진영 논리에 갇혀 좁은 인재 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가 대표적이다. 인사청문회가 아니었다면 비리 자체가 아마도 그냥 덮였을 것이다. 사실상 마지막 개각을 앞뒀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활극, 부동산 대란 같은 국정 난맥을 보면 바꿔야 할 대상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장관일수록 유임될 거라고 한다.
 
어차피 청와대 코드, 혹은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외부 인사들로 포진된 위원회가 핵심이다. 장관직을 누구에게 맡겨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장관이 누가 되든 관심을 가질 일도 없다. 문제는 그런 정부의 영이 설 까닭도 없다는 점이다. 그러면 정부가 위기의 몸통이 된다. 위원회 뒤에 숨고, 검증위에 떠넘기고, 기회만 있으면 ‘전 정권 탓’이라고 둘러대는 비겁한 정부다. 그런 무능 내각을 들어내는 것조차 힘들다. 정부가 왜 이래. 정치가 뭐길래. 테스형.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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