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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의 문화 예술 톡] 자치단체가 끌고 연방정부가 밀고…스위스의 문화 정책

중앙일보 2020.11.25 00:15 종합 28면 지면보기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스위스에서 인구 대비 코로나 감염률이 매우 높은 이유는 깡통(Canton)이라 불리는 26개의 지방 자치주의 코로나 방침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스위스인들은 대부분 이에 동의한다. 깡통을 통합하는 중앙 정부가 있기는 하지만 연방 자치 주들은 정치적으로 매우 막강한 자율성을 보장받기에 우리나라처럼 중앙 정부의 권한으로 일괄적인 바이러스 통제 정책을 펼치기 어렵다.
 
각 깡통들의 코로나 정책은 그 주를 구성하는 더 작은 단위인 코뮌(Commune)에서 수렴한 각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다. 이렇게 지역 공동체의 직접 민주주의 방식에 의거한 정치 시스템은 비록 코로나 방역에는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 등 3개의 주요 언어를 쓰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스위스인들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원동력이 되어 왔다.
 
로잔시에 재개관한 보주립 미술관. 사진 속 작품은 이탈리아 작가 쥐세페 페노네(Guiseppe Penone)의 브론즈 조각.

로잔시에 재개관한 보주립 미술관. 사진 속 작품은 이탈리아 작가 쥐세페 페노네(Guiseppe Penone)의 브론즈 조각.

알프스 산맥의 명산들과 아름다운 강과 호수 등이 곳곳에 산재한 스위스에 살다보면 스위스인들은 그저 매일 매일 공짜로 받게 되는 자연이 주는 수려한 경관이라는 선물을 누리며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인간은 문화적 동물이라는 말을 증명이나 하듯 스위스에는 크고 작은 박물관·미술관과 유적지들이 곳곳에 산재해있다.  
 
인구 860만에 전체 국토 면적이 남한의 반밖에 되지 않는 작은 국가지만 스위스의 박물관·미술관 수는 이미 1000여개에 이른다. 인구수 당 미술관·박물관 숫자가 세계 최다인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는 순수 예술 미술관 외에도 지역의 특색을 부각하거나 성공적인 산업을 반영한 특색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들도 많다. 그리고 각 지역에 존재하는 역사적인 유적지나 유물들 역시 주에서 알아서 관리하고 보존해야 한다. 다시 말해 스위스에서는 지방 자치 주 구성원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반영한 최종 결정에 의해 각 지역의 문화 기관의 창조와 존속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예산 역시 지방자치 단체의 자체 예산에 그 지역에서 성공한 기업인들의 메세나, 개인들의 기부 등으로 조달된다. 거기에 1939년 중앙 정부에서 발족한 스위스 예술 위원회의 지원에 힘을 받기도 한다.
 
아무튼 코로나 방역에 어려움을 주는 스위스의 정치 제도는 그러나 스위스의 자치단체들이 자신들의 지리적·사회적·문화적 특성에 맞는 정책을 펼치도록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풍부한 문화적인 인프라를 창출하도록 밀어주고 끌어주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방 자치 주를 이끄는 정치인들이 가장 귀를 기울이는 것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아닌 전문가와 지역민들의 목소리라는 점이다.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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