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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배기 참변 당한 광주시 스쿨존 횡단보도 없앤다

중앙일보 2020.11.25 00:02 종합 20면 지면보기
“어린이보호구역에서 2살 아이가 희생됐는데도 보행자들에게 양보하는 운전자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는 아예 피하게 돼요.”
 

일주일 뒤 ‘일단멈춤’ 없이 주행 여전
“아예 건널목 없애라” 주민 의견 수렴

24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의 한 아파트 단지 정문 앞 횡단보도에서 만난 주민 이모(54)씨가 ‘어린이보호구역 일가족 참변’ 뒤 일주일 만인 이날 사고현장을 찾은 취재진에게 한 말이다.
 
지난 17일 오전 8시 45분 이곳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로 2살 아이가 숨지고 30대 어머니와 4살 아이가 중상을 입었다. 사고 당시를 기록한 폐쇄회로(CC)TV에서는 한 손에 아이의 손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 유모차를 붙잡은 어머니가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중간에 위태롭게 갇힌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끔찍한 참변이 있은 뒤로 사고지점 횡단보도 대신 30m 떨어진 사거리의 ‘신호등 있는 횡단보도’만 이용한다고 한다. 중앙일보 취재진이 이 횡단보도를 이용해 반대편으로 건너가 봤다. 횡단보도 중간까지 걸어나와 있었는데도 ‘일단 멈춤’ 없이 속도를 높여 지나치는 운전자들이 다수였다. 횡단보도 시작점에서 건너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도 차를 세우는 운전자는 없었다.
 
한 주민은 “언론사 기자들이 카메라 들고 북적거릴 때만 조심하다가 이제 다시 쌩쌩 달리던 예전으로 돌아갔다”며 “이곳 횡단보도를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2살 아이가 떠난 사고현장 주변에는 흰 국화꽃 한 송이와 함께 손편지가 남겨져 있다. 어린 고사리손으로 쓴 듯 삐뚤빼뚤한 글씨의 편지에는 “아가야,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니? 이제는 아프지 마”란 글이 적혀 있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아이의 모습을 담은 듯한 그림도 있었다. 또 다른 편지에는 중상을 당한 아이의 쾌유를 바라는 글이 적혔다.
 
사고가 발생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는 주민 의견 수렴 끝에 결국 폐지하기로 했다. 광주광역시 시민권익위원회는 24일 광주시 북구 운암동의 한 아파트 단지 인근에서 현장 간담회를 진행하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2곳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횡단보도에 신호등을 설치하는 대책이 제시됐었지만, 끔찍한 참변 뒤에도 보행자 배려 없는 운전자들이 많아 횡단보도를 아예 없애야 한다는 인근 주민들의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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