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닛, 또 한번 역사를 쓰다…미국 재정·통화정책 수장 석권

중앙일보 2020.11.24 18:09
바이든 행정부의 첫 재무장관이 될 재닛 옐런 전 Fed 의장. 2017년 Fed 의장으로서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환히 웃는 장면이다. AFP=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의 첫 재무장관이 될 재닛 옐런 전 Fed 의장. 2017년 Fed 의장으로서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환히 웃는 장면이다. AFP=연합뉴스

“경제학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 경제학자가 됐습니다.”(2013년 뉴욕대 강연)  

 
이렇게 말한 재닛 옐런(74)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곧 미국 역사상 최초 여성 재무장관이 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블룸버그통신 등은 23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재무장관 지명자로 옐런을 낙점했다고 보도했다. WSJ는 옐런 측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으나 옐런이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경우 ‘노 코멘트’는 사실상의 ‘예스’다.   
 
재무장관 자리에 오르며 옐런은 경제의 양대 축인 재정과 통화 정책의 수장(2014~18년)을 모두 역임하는 신기록을 세우게 됐다. 재무장관으로서 달러 지폐에 자신의 이름도 새기게 됐다. 뿐만 아니다. 미국 경제를 이끄는 3개의 주요 직책을 모두 섭렵한 3관왕의 영예도 달성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의 경제 핵심 참모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1997~99년)을 역임하고, 중앙은행인 Fed와 재무부 장관까지 꿰찬 것이다. 남녀불문 극히 드문 케이스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 지명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재닛 옐런 재무장관 지명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옐런의 재무장관 지명은 그 자체만으로 시장에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신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에 빠진 미국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코로나19 확산 전이던 지난해 11월 3.5%이던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달 6.9%를 기록했다.
 
정부의 강력한 부양책이 경제 살리기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옐런은 지난해 블룸버그 등 언론 인터뷰에서 의회의 추가 경기부양책 협상 교착을 두고 “경제는 지금 (추가부양책을 통한) 지출이 절실하다”며 “막대한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지휘봉을 자신이 잡게 됐다. 공화당이 우세할 것으로 예상하는 상원을 설득해 추가 경기부양책 협상이라는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한 최적임자가 옐런인 셈이다. 
 
실제로 옐런은 2013년 Fed 의장으로 지명된 후 당시 여야 각축이 치열했던 상원에서 54 대 39로 어렵지 않게 인준 표결을 통과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야당인)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한 상황에서 재무장관으로서의 옐런은 정치적 역할을 더 크게 해야 할 것”이라며 “협상력을 발휘해 추가 경기부양책을 도출해내는 역할이 주목된다”고 전했다.
 
시장도 바이든이 이런 계산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옐런의 낙점 소식이 전해진 뒤 뉴욕증시 시간 외 거래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0.5%대,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1%대, 나스닥(NASDAQ)은 0.2% 안팎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안정세를 보였다.
바통터치를 하게 된 옐런 Fed 전 의장과 스티븐 므누신 현 재무장관. 2017년 G20 재무장관 회의 당시 사진. AP=연합뉴스

바통터치를 하게 된 옐런 Fed 전 의장과 스티븐 므누신 현 재무장관. 2017년 G20 재무장관 회의 당시 사진. AP=연합뉴스

 
옐런에 대한 정치권과 시장의 믿음에는 근거가 있다. 통화정책의 수장으로서 Fed의 양대책무(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를 충실하게 수행하며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재임 중 최고 물가상승률은 1.9%일 정도로 목표치(2%)를 넘지 않았다. 옐런이 Fed의 키를 잡았던 2014년 2월 미국의 실업률은 6.7%였지만 퇴임을 앞둔 2017년 10월엔 4.1%였다. 완전 고용 수준이다. 
 
세계금융위기로 수렁에 빠진 세계 경제를 건져내기 위해 실시한 양적완화(QE)로 풀린 유동성을 거둬들이기 위해 재임 중 기준금리를 다섯 번 올렸지만 시장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옐런 특유의 소통 리더십을 발휘해 금리 인상 전 관련 신호를 적극적으로 보내며 시장의 패닉을 막았다. A학점으로 졸업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옐런은 통화정책에서 인플레이션 상승 억제보다는 고용 안정에 역점을 두는 비둘기파라는 점도 시장의 기대를 키우는 요인이다. 학위 논문(‘공개 경제에서의 고용과 생산, 자금 축적’)도 고용 정책을 다뤘다. 2007년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 시절 연설에서도 “인플레이션을 잡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고용 안정을 위한) 현재 정책 기조 유지가 우선이다”라고 못 박았을 정도다. 
 
때문에 '인플레이션 파이터'에서 '고용파이터'로 변신한 제롬 파월 Fed 의장과도 정책의 노선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옐런이 Fed 의장이던 시절 파월은 이사로 손발을 맞춰본 사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옐런 의장의 재무장관 지명은 한국 경제에도 긍정적일 전망이다. NYT는 “옐런은 자유무역협정(FTA)도 중시하는 입장”이라며 미국 우선주의였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는 다를 것으로 전망했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한국 증시에도 호재로 작용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서상영 키움증권 리서치센터 투자전략팀장은 24일 보고서에서 “적극적 부양책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는 점은 단기적으로 한국 증시에도 긍정적이지만 예견된 내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하락 요인을 제거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전망했다.  
2019년 브루킹스 연구소 세미나에 모인 전현직 Fed 의장들. 왼쪽 두번째부터 제롬 파월 현 의장, 옐런과 벤 버냉키 전 의장. 옐런과 버냉키는 브루킹스 연구소에 적을 두고 있다. AFP=연합뉴스

2019년 브루킹스 연구소 세미나에 모인 전현직 Fed 의장들. 왼쪽 두번째부터 제롬 파월 현 의장, 옐런과 벤 버냉키 전 의장. 옐런과 버냉키는 브루킹스 연구소에 적을 두고 있다. AFP=연합뉴스

 
오늘의 옐런을 키운 건 어머니 애너 루스다. 옐런은 2012년 Fed와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경제학 공부를 하진 않으셨지만 항상 경제 뉴스와 신문을 열독하셨다”며 “어떤 주식에 투자할지 종목 고민도 함께하면서 경제에 눈을 떴다”고 말했다. 그는 당초 수학을 전공하려 했지만 제임스 토빈과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가 경제학을 권했다.  
 
남편은 중고차 시장 등에서 벌어지는 정보 비대칭성이 시장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토빈과 스티글리츠와 함께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조지 애컬로프 현 조지타운대 교수다. 두 사람은 1977년 Fed에서 만났다. 애컬로프 교수는 2001년 노벨상 수상 후 남긴 기고문에서 “재닛과 나는 성격뿐 아니라 거시경제에 대한 시각도 완벽히 일치한다”고 적었다고 NYT는 전했다. 아들 로버트는 영국 워릭대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