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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온라인 수업·원격 진료 예측한 1965년작 국내 만화

중앙일보 2020.11.24 09:00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41)

최근 건축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다이얼 전화기를 처음 본다는 학생이 많았다. 그들 대부분 처음 손에 든 전화기가 스마트폰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사진 pxfuel]

최근 건축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다이얼 전화기를 처음 본다는 학생이 많았다. 그들 대부분 처음 손에 든 전화기가 스마트폰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사진 pxfuel]

 
최근 ‘내가 상상하는 건축의 미래’라는 주제로 건축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을 하였다. 건축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몇 가지 가전제품과 전자기기의 변천사를 보여주었다. 지금은 일반화했지만 다이얼을 돌리는 전화기를 쓰던 시절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다이얼 전화기를 처음 본다는 학생이 많았다. 그들 대부분 처음 손에 든 전화기가 스마트폰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전보에 대한 설명에서 그들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를 듣는 표정을 지었다.
 
40~50년 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아파트문화의 변천을 보여주자 건축과 학생답게 반응이 뜨거웠다. 부모한테 들어 1970년대 와우 아파트 붕괴 참사를 알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맨땅에 백시멘트로 줄을 그어 방, 거실, 부엌, 변소 등의 팻말을 세워놓은 분양 모델하우스 사진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벽이나 천장은 없지만, 실제 방 크기대로 땅에 그려놓았으니 대충 아파트 한 가구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1970년대 맨션아파트는 과거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주거형태였다. 맨션아파트는 맨손으로 입주하면 된다는 광고문구가 돋보인다. 침대와 온돌 생활이 가능한 침실, 욕조와 양변기, 수전 걸이가 있는 화장실, TV 종합안테나가 설치된 거실 등을 갖췄다는 광고문구가 큰 활자로 찍혀 있다.
 
그 당시 아파트 분양광고를 보다가 정말 특별한 광고를 보게 되었다. 아파트 일부 구역에 희망하는 주부를 대상으로 가내수공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돼 있다. 그러고 보니 그 시절엔 인형에 눈알을 붙인다거나 서류봉투를 접는 일 등으로 조금씩 소득을 올리는 가정이 많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 같이 모여 뭔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것이 소득과 연결되어 있고 이웃 간에 만날 수 있으니 자연히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가 가능했다. 지금은 전혀 특별할 것도 없는 것이 과거에는 아주 특별한 것이었고, 과거에 자연스러운 일이 지금은 특별하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주거는 특별하게 변했다. 그러나 더 특별하게 변한 것은 우리의 주거에 대한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했다는 의미가 사람이 계속 살면 안 되는 아파트라는 것, 즉 이제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할 만큼 낡고 위험한 아파트라는 증명서를 받은 것이라 했더니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진 libreshot]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했다는 의미가 사람이 계속 살면 안 되는 아파트라는 것, 즉 이제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할 만큼 낡고 위험한 아파트라는 증명서를 받은 것이라 했더니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진 libreshot]

 
지방의 작은 도시 주민을 위한 인문학 강의 중에 서울 어느 아파트 벽에 붙어있는 ‘축! 정밀안전진단 통과’라는 현수막 사진을 보여주며 무슨 의미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이 문구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아파트를 진단했더니 안전하다는 의미로 이해된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밀 건강진단 통과’라고 하면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파트가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했다고 축하하는 것은 정밀하게 진단을 해보니 아주 안전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했다는 의미가 그 아파트는 사람이 계속 살면 안 되는 아파트라는 것, 즉 이제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할 만큼 낡고 위험한 아파트라는 증명서를 받은 것이라고 했더니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방 주민들에겐 사람이 사는 아파트가 위험하다는 증명서를 받고 자축하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우리는 동시대에 살면서도 집에 대해 이렇게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정문 화백의 1965년 만화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를 보면 놀랍다. 만화에는 소형 TV가 있는 휴대용 전화기, 오늘의 메뉴를 알려주는 주방에 달린 모니터, 전기자동차, 움직이는 도로, 청소하는 로봇, 전파신문, 태양열을 이용한 집이 등장한다. 더 놀라운 것은 집에서 아이가 공부하고 의사 치료를 받는다는 상상을 했으니 지금의 코로나 상황까지 예측한 꼴이다.
만화가 이정문 선생이 1965년 그린 작품. 서기 2000년대의 생활을 상상했다. 대부분의 상상들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 있다. 태양열 전기, 전기자동차, 움직이는 도로, 소형 TV 전화기, 전파 신문 등 상상 속 미래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정문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웹진]

만화가 이정문 선생이 1965년 그린 작품. 서기 2000년대의 생활을 상상했다. 대부분의 상상들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 있다. 태양열 전기, 전기자동차, 움직이는 도로, 소형 TV 전화기, 전파 신문 등 상상 속 미래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정문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웹진]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에 상상한 것이 지금 대부분 현실이 되었다. 그처럼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미래도 머잖아 현실이 될 것이다. 우리의 주거문화의 변화는 지금까지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변해 갈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더 넓고 더 화려한 주거를 상상한다. 그러나 아직 채광, 환기도 안 되고 냉난방도 안 되는 몸 하나 누이기도 힘든 작은 공간에 사는 사람도 많다. 그 공간조차도 가질 수 없어 오늘도 거리를 떠돌고 있다. 행복한 삶의 공간으로서의 미래 주거에 대해 상상해본다.
 
프리랜서 건축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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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웅익 손웅익 프리랜서 건축가. 수필가 필진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더위와 추위를 피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집, 투자와 과시의 대상으로의 집에서 벗어나 집은 살아가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건축가이자 수필가인 필자를 통해 집의 본질에 대해, 행복한 삶의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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