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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반' 없애고, 아빠다리→나비다리…성평등 어린이사전 보니

중앙일보 2020.11.22 13:01

‘서울시 성평등 어린이사전’ 보니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세 살 성평등, 세상을 바꾼다!' 교육에서 어린이 대상 성차별 사례를 담은 자료. [자료 서울시]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세 살 성평등, 세상을 바꾼다!' 교육에서 어린이 대상 성차별 사례를 담은 자료. [자료 서울시]

 
“여자는 얌전해야 해” “남자니까 씩씩해야지” “여자애가 머리가 왜 이렇게 짧아” “남자는 키가 커야지” 

아빠다리→나비다리, 형님반→7세반
유치원·초등학교 성차별 사례 조사
시민 1053명 개선안 제안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듣는 말이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지난 20일 세계 어린이날을 맞아 보육·교육기관에서 어린이가 겪는 성차별적 말과 행동을 양성평등 관점에서 바꾼 ‘서울시 성평등 어린이사전’을 발표했다. 1053명의 시민이 참여해 1406건의 개선안을 제안했다. 
 
시민 대상 설문조사에서 어린이가 겪는 성차별이 가장 심한 부분은 교사의 말과 행동(31.4%)인 것으로 나타났다. 뒤를 이어 교육프로그램(26.1%), 친구들의 말과 행동(21.8%), 교재·교구·교육내용(19.1%) 순이었다. 
 
성평등 어린이사전은 아빠다리를 나비다리로 바꿔 부르자고 제안했다. [자료 서울시]

성평등 어린이사전은 아빠다리를 나비다리로 바꿔 부르자고 제안했다. [자료 서울시]

 
‘아빠다리’는 앉았을 때 다리 모양을 본떠 ‘나비다리’로 바꿔 부르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자주 쓰이는 ‘형님반’은 성별 구분 없이 ‘7세반’이나 ‘나무반’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사전 제작에 의견을 낸 시민들은 또 학예회에서 여자는 발레, 남자는 태권도를 하는 것이나 역할극에서 여자는 토끼, 남자는 사자 역할을 맡는 것도 성차별적이라고 봤다. 
 
이름표 등을 여야용은 분홍색, 남아용은 파란색으로 고정한 것이나 졸업식에서 여자는 드레스, 남자는 턱시도를 입게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성평등 사전은 남녀 구분 말고 자유롭게 좋아하는 역할·색깔·옷을 선택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 
 
여아는 긴 머리, 남아는 짧은 머리 등 차림·외모를 성별로 구분하는 말 역시 여전히 많이 쓰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자는 얌전해야지” “남자는 울면 안 돼” 등 편견을 담은 말이나 ‘멋진 민이’ ‘예쁜 수빈이’처럼 성별로 구분하는 수식어 역시 개선해야 할 요소로 꼽혔다. 시민들은 성별로 스타일을 구분하지 말고 ‘튼튼한, 씩씩한, 밝은’ 등 개인의 특성에 맞는 수식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번 조사에서 여자는 치마, 남자는 바지로 정해진 원복·교복과 남자가 앞에 오는 출석번호, 짝의 성별을 고정한 남녀 짝꿍 같은 규칙에 대한 성차별 개선 요구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알림장에서 보호자의 역할을 주로 엄마에게 부여하는 것 역시 성차별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조사에 참여한 1053명 가운데 여성은 73.6%, 남성은 26.4%였다. 연령대는 30대(45.2%)가 가장 많았으며 40대(23.4%), 20대(23.3%) 순이었다. 응답자 가운데 자녀가 있는 사람은 전체의 63.2%였다. 
 
여성화장실은 주로 붉은색 계열로 표시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TV 제공]

여성화장실은 주로 붉은색 계열로 표시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TV 제공]

 
일부 학교에서는 이런 성차별적 말·행동에 대한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부모들은 사회적으로 좀 더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이전에는 출석번호에서 예를 들어 남학생 황씨가 끝나야 여학생 김씨가 시작됐는데 요즘은 성별과 관계없이 가나다순으로 하고 있다”며 “화장실 표지판도 파란색(남)·빨간색(여) 계열에서 모두 한 가지 색깔로 통일했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문구점에 선물을 주문하면 남학생용은 파란색, 여학생용은 분홍색으로 포장해줘 노란색으로 통일해달라고 한 적 있다”며 “과거보다 아이와 부모가 성차별 문제에 예민하고 교과서에서도 성평등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6세 아들을 둔 30대 여성 김모씨는 “’형님반’은 나도 쓰는 말이었는데 성차별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지 못했다. 바꿔 불러보겠다”며 “아들이 이미 남녀를 갈라 생각하는 면이 강해 놀랄 때가 있는데 사회적으로 이런 문제를 신경 쓰는 것은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8세 딸을 둔 어머니는 “서울시나 정부 차원에서 노력해주면 고맙지만 정작 사회에서 큰 변화는 느끼지 못해 씁쓸하다”고 말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어린이집 보육 교직원과 양육자를 위한 ‘세 살 성평등, 세상을 바꾼다!’라는 이름의 교육을 하고 있다. 신청은 재단 보육서비스지원센터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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