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홍석철의 이코노믹스] AI 따라오기 힘든 ‘암묵지’ 많은 직업 살아남는다

중앙일보 2020.11.22 00:04 종합 23면 지면보기

기계와 경쟁해 일자리 지키기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영국 옥스퍼드대의 칼 베네딕트 프레이 교수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는 2013년 ‘고용의 미래: 일자리는 컴퓨터화에 얼마나 취약한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702개 직업에 대해 컴퓨터화에 취약한 정도를 분석한 후 앞으로 20년 내 미국 일자리의 47%가 사라질 위험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했다. 직업별로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할 확률을 보면, 텔레마케터가 99%로 가장 높았고 반면에 레크리에이션을 활용한 치료사의 대체 확률은 0%에 가까웠다. 필자와 같은 경제학자도 43%의 대체 확률로 중위권에 속했다.
 

기술 진보해도 새 일자리 생겼지만
지금은 AI가 인간의 인지 능력 침범
모두 컴퓨터공학자 될 수 없는 만큼
노동의 가치 유지하는 기술 익혀야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산업화 역사의 단골 메뉴였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 말 역직기(동력으로 천을 짜는 방직기)의 발명으로 방직공의 단위생산 당 노동시간이 98% 감소하면서 대량 실업이 발생했고, 이에 반발해 발생한 러다이트 조직의 기계파괴운동은 잘 알려진 사건이다. 20세기 사례를 몇 가지 들자면, 1928년 2월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산업 생산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높아지자 노동력을 절감하는 기계의 보급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헤드라인 기사를 냈다. 그리고 당대 저명한 경제학자였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기술적 실업’이라는 신조어로 이 같은 현상을 설명했다. 20세기 말 ATM(자동입출금기)이 반복적인 입출금 업무를 대체하면서 은행 지점당 은행원 수가 감소한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기계는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
 
여기서 언급한 사례들을 시기별로 구분하면 소위 1~3차 ‘산업혁명’ 시기에 있었던 일들이다. 산업혁명은 기술혁신으로 발생한 사회경제의 큰 변화로 정의된다. 경제학 관점으로 좁히면 기술진보에 따른 생산성의 혁명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기술진보는 생산요소, 특히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본질적인 성격을 갖는다. 1차 산업혁명(1760~1860년) 시기의 역직기, 2차 산업혁명(20세기 초) 때 자동차 생산공정에 도입된 컨베이어 벨트, 3차 산업혁명(20세기 후반)의 핵심 기술인 컴퓨터와 인터넷은 모두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다. 노동생산성 증대는 같은 양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 단축을 뜻하므로, 이 같은 기술은 경제성이 확보되어 확산하면 같은 업무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게 된다.
 
고용비율

고용비율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기술진보는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보다 많은 고용을 창출해왔다. 역직기 도입으로 면직물 가격이 하락하고 연이어 수요가 급증하자 전 단계 공정인 방적(실을 뽑아내는 공정) 부문의 고용이 크게 늘었는데, 학자들은 이를 ‘러다이트의 오류’라고 부르며 기계의 일자리 대체 주장을 비판했다. ATM 보급으로 은행 지점당 운영비가 줄어 도시 지역에 더 많은 지점이 개설되면서 오히려 은행원 고용이 증가한 것도 이런 비판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를 근거로 경제학자들은 기술 진보가 노동의 성격을 변화시키거나 생산 비용을 줄여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하며, 자동화로 공정이 빠르게 진행되면 전후 공정에 정체를 초래하면서 노동수요가 늘어난다는 이론을 내세워왔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기술 진보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일자리의 특성에 따라 달리 나타났다. 3차 산업혁명 시기인 1980년대 이후 미국의 직업 특성별 고용 비중의 추이를 보면, 반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직업의 고용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반복적이지 않은 업무의 고용 비중은 꾸준히 늘어났다. 앞으로 컴퓨터화와 자동화 기계가 더 정교해지고 경제성이 확보된다면 반복 업무의 기계 대체는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비반복적 업무의 직업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제 갓 출발선을 떠난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을 중심으로 산업 간 융합을 통해 생산성 증대를 목적으로 한다. 인공지능·빅데이터·사물인터넷 등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다.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실시간으로 수집된 정보는 빅데이터가 되고 이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여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이 방식에 딱 들어맞는 사례다. 노동생산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기존 산업혁명의 기술진보와 결을 같이 한다.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기계가 인간의 고유영역이었던 인지능력까지 침범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했던 주행 판단을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조만간 인공지능이 생물 지능을 월등히 능가하는 기술의 특이점 도래를 주장하기도 한다. 반복 업무는 물론이고 인지능력이 필요한 직업까지 사라질 시간이 머지않았다는 것이다. 당장 10년 후는 아니지만 50년 아니면 100년 후에는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암묵지 기반 일자리만 살아남아
 
기계화의 일자리 대체 논란은 일자리 종말 가능성과 시점보다는 인류에게 던지는 경고의 의미가 크다. 좀 더 예측이 가능한 10~20년 후의 가까운 미래를 상상해 보자.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일자리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겠지만, 일자리의 성격을 현저히 바꿀 것은 분명하다. 일정한 패턴의 분석 능력을 요구하는 직업은 인공지능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반면 높은 수준의 인지력 또는 인공지능이 따라오기 어려운 암묵지(경험과 학습을 통해 체화된 지식) 기반의 직업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이다. 그런 미래에 맞춰 노동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노동으로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예상보다 더 빨리 도래될 수 있다는 경고다.
 
미래 일자리 수요에 맞춘 노동 공급은 단기간에 이룰 수 없다. 생산요소인 노동은 노동자 수나 노동시간이 아니라 장기간 교육을 통해 축적된 인적자본의 의미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지금부터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교육이 시작되어도 그 효과는 10~20년 후에나 나타날 것이다.
 
10년 전부터 초등학교 코딩 교육이 인기를 끌었다. 그 영향 때문일까, 몇 년 전부터 대학 입시에서 컴퓨터공학의 인기가 급증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내다본 부모의 합리적인 투자라고 생각되지만, 모두가 컴퓨터공학자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은 퇴색한 이론이지만 초기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노동의 가치는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에 반영된다고 주장했는데, 근본적으로 재화와 서비스 가치는 소비자의 효용과 만족에서 비롯된다. 노동의 가치를 유지하는 미래 지속 가능한 일자리는 기계가 창출하기 어려운 효용을 만들어내는 영역이 될 것이다.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공감’을 생산하는 일자리가 그런 영역이다. 이런 능력의 인적자본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인간의 가치와 근원적인 문제, 그리고 인간의 사회적 활동에 대한 교육이 중요할 것이다. 처음 언급한 옥스퍼드대 논문에서 레크리에이션 치료사가 우연히 1등이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케인스 때 없었던 기술 진보와 불평등의 문제, 피케티가 콕 짚어내
기술적 실업을 주장했던 케인스는 실업 문제에도 불구하고 기술진보는 결국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일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지난 산업혁명은 경제성장과 소득증대를 도모하여 생활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여왔다. 하지만 항상 긍정적인 효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며, 불평등 확대 문제는 기술진보의 부작용으로 지목되어 왔다.
 
그런데 기술 진보가 불평등을 초래하는 경로에 대한 상반된 의견이 존재한다. 하버드대의 로런스 카츠 교수는 기술진보의 숙련 편향적 특징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숙련 편향은 기술진보에 따라 반복 업무를 다루는 저숙련 노동자의 노동수요는 줄고 고숙련 노동자의 노동수요는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숙련 편향적 기술진보는 숙련도 또는 교육수준에 따른 임금 격차를 초래하여 불평등이 초래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반면 파리경제대학의 토마스 피케티 교수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21세기 자본론』에서 기술진보는 노동의 대가인 임금보다 자본의 수익률을 빠르게 증가시켜 노동자와 자본가의 부의 격차를 초래하는데, 이것이 20세기 후반 불평등 확산의 주요 요인이라 주장한다.
 
기술진보에 따른 불평등의 원인을 달리 본 것처럼 두 진영의 학자들은 불평등의 해결책에 대해서도 상반된 견해를 보여왔다. 카츠는 교육 및 인적자본 투자를 통한 양질의 노동공급은 숙련도에 따른 노동수요와 임금 격차에 따른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피케티는 불평등 해소 방안으로 부유세를 통한 진보적인 소득재분배 정책을 강조한다.
 
요즘 정치권의 화두가 된 ‘기본소득제’ 역시 산업화 심화에 따른 불평등 해소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심화되어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면 노동을 통해 생계와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가정 하에 기본소득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논리에서 비롯되었다.
 
4차 산업혁명의 성공은 불평등 문제 해결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