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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갭투자'가 115명 울렸다, 대구 뒤흔든 깡통전세 사건

중앙일보 2020.11.21 05:00

115명 “전세보증금 뜯겼다”…50억원 피해

대구 수성구 범어동 아파트 단지. 이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뉴스

대구 수성구 범어동 아파트 단지. 이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뉴스

대구 전역에서 이른바 ‘깡통전세’ 사기 행각을 벌여 지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40대에 대한 형사 처벌이 1년 6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결론나지 않고 있다.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도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는 상태다.
 
 지난해 100여 건의 고소가 밀려들면서 경찰이 합동 전담팀까지 꾸렸던 ‘대구 깡통전세’ 사건. 대구에 사는 임대인 A씨(45)가 전세 보증금을 반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세입자 수십 명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사건이다.
 
 A씨는 대구 지역 13개동 다가구주택 118세대의 전세 보증금을 가로채 달아난 혐의로 기소됐다. 그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세입자는 모두 115명, 피해 금액만 50억원에 달했다. A씨는 지난해 7월 경찰에 붙잡힌 뒤 같은 해 12월 12일 대구지법에서 사기죄 등으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A씨는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1심에서 법정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다.
 
 애초 검찰은 일부 임대차 계약에서는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보고 피해자 28명(피해 금액 7억3000여만원)에 대해서만 사기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현재 피해자들을 추가해 다시 제기한 공소장에는 총 48명(피해 금액 26억5700여만원)이 이름을 올렸다.
 

피해자들, “애초에 돈 뜯어내려고 접근”

법원 로고. 뉴스1

법원 로고. 뉴스1

 
 피해자들은 여전히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한 피해자는 “집 주인은 돈을 돌려주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전 재산이나 다름 없는 돈을 몽땅 날린 타격을 지금도 회복하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검찰은 A씨의 ‘갭투자’ 실패가 사기 행각으로 이어졌다고 봤다. ‘갭투자’는 시세 차익을 노리고 금융기관 대출금, 임대차 보증금 등으로 다수의 아파트와 다가구 주택을 취득하는 부동산 투자 방식이다.
 
 A씨는 2013년부터 임대사업을 시작했지만 갭투자 후 집값이 예상만큼 오르지 않으면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그가 당시 건물 매입 비용으로 들인 돈은 모두 121억원. 이 가운데 71억원이 은행 채무였다. 나머지는 대부분 전세 보증금 등으로 채웠다.
 
 추가 대출이 어려워지고 부동산 가격이 정체되자 A씨는 월 평균 2000만원에 달하는 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이자와 생활비 등을 새로운 임차인에게서 받은 보증금으로 충당하던 A씨의 보증금 채무는 결국 68억원(2018년 8월 기준)에 달했다. 새로운 임차인에게서 보증금을 받고도 기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A씨는 결국 잠적했다.
 
 피해자들은 “A씨가 갭투자 실패 때문에 사기 행각을 벌인 것이 아니라 애초에 돈을 뜯어낼 생각으로 접근했다”고 주장했다. 한 피해자는 “모든 세입자들에게 선순위보증금 액수를 다르게 알려주거나 사문서 위조까지 하면서 세입자를 속이려고 한 점을 보면 다분히 고의적”이라며 “전세 계약을 2~3중으로 한 점도 고의성을 엿볼 수 있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은 “A씨가 1심에서 징역형을 받은 후로도 별다른 피해 회복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피해자는 “경매로 주택이 낙찰돼 피해자가 전세 보증금을 일부 돌려받으면 A씨는 그것이 자신의 노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고 했다.  
 

“선순위 보증금 확인 않은 중개사들도 공범”

대구시 수성구의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아이와 엄마가 유리창에 붙어 있는 아파트 매매물건 안내문을 살펴보고 있다.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대구시 수성구의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아이와 엄마가 유리창에 붙어 있는 아파트 매매물건 안내문을 살펴보고 있다.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이에 A씨 측 변호인은 “돈을 가로채려던 게 아니라 시세차익을 노려 투자하다가 국가 차원의 대출 규제가 이뤄지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며 “구속 직전까지 3억원을 변제하는 등 피해를 변상하고자 노력했다”고 해명했다.
 
 A씨가 소유했던 집들은 절반 이상이 경매 절차가 완료됐지만 전세 보증금 중 상당 금액이 피해자에게 온전히 돌아가지 않았다. 은행 근저당이나 선순위 전세보증금 등 우선 변제금을 빼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피해자들은 “선순위 보증금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공인중개사들도 공범”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A씨뿐 아니라 장씨와 거래한 공인중개사 3명과 중개보조원 1명을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1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각각 70만~3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피해자들은 A씨의 전세사기 행각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피해자는 “긴 재판 끝에 이제 곧 선고가 날 것으로 보인다”며 “억울하게 뜯긴 돈을 돌려받고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려면 하루빨리 법의 심판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에 대한 다음 재판은 오는 26일 대구지법에서 진행된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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