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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에 홀린 묻지마 팬덤, 트럼피즘 같은 집단 광기 불러

중앙선데이 2020.11.21 00:21 712호 28면 지면보기

러브에이징

만추(晩秋)의 계절에 치러진 미국 대선이 현직 대통령의 선거 불복으로 인간의 욕망과 이성을 생중계하는 리얼리티 쇼를 연출하고 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지구촌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심어온 슈퍼 파워(Super Power)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민주주의에 관한 불멸의 정의도 1863년 11월 미국의 링컨 대통령에 의해 선포됐다. 그런데 그로부터 157년이 지난 2020년 11월, 링컨의 후예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있다.
  

반사회적 거짓·비리에도 스타 지지
억압된 욕망·분노 대리 해소 기대

트럼프 지지자들까지 ‘노마스크’
미 코로나 확진자 세계 1위 오명

팬 요구에 사회적 악역도 마다 안 해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보여준 그간의 행적을 보면 지금 상황이 크게 놀랍지는 않다. 그는 재임 기간 중 근거 없는 거짓말만 2만 번 이상 했으며,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는 무조건 ‘가짜 뉴스’ 타령을 했다. 여성 비하와 성추행, 인종 차별 발언 등 인격 문제도 수시로 불거졌고 이란핵협정·파리기후변화협약·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 돌연 이탈해 선진국 정상들을 경악시키기도 했다. 급기야 미국 정신과 전문의와 심리학자 27명은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라는 책을 통해 “트럼프처럼 충동성·자아도취증·착각·피해망상·폭력적 성향 등을 보이는 불안정한 사람은 수많은 사람의 생사가 달린 대통령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까지 했다. 대중의 환호를 받다 보면 누구나 지나친 확신과 우월감을 가지면서 과대망상에 빠지기 쉬운데, 기존에 정신적·인격적 문제가 있는 권력자는 증상이 더더욱 악화하기 때문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금 대선 불복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역사상 바이든 당선인 다음으로 많은 7350만 표 이상을 얻은 사실이다. 그는 신종 감염병인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도 전문가 조언을 무시한 채 ‘노(No) 마스크’를 고수했고, 백악관에서 슈퍼 전파 파티를 연 장본인이다. 그 결과 첨단 의료의 산실인 미국은 코로나19 확진자(1100만명 이상)와 사망자(25만명 이상) 모두 세계 1위라는 오명을 얻었다. 각종 언론에서 “마스크 착용은 정치적 논쟁 대상이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수칙”임을 끊임없이 강조하지만 수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벗고 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심지어 외신은 코로나19로 병원에 실려 와 사망하는 순간에도 “바이든 당선인이 미국을 망칠 것”이라고 주장하는 트럼프 지지자가 있다고 전한다. 왜 그럴까. 이유는 정치의 팬덤(fandom)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팬덤은 특정 인물이나 분야를 열렬히 좋아하는 문화적 현상인데 대중문화 확산과 맥을 같이 한다. 초기에는 사춘기 소녀들이 가수·배우·스포츠 선수 등 대중적인 스타를 통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안전하게 승화시키는 방법으로 간주됐다. 흔히 말하는 오빠부대(fangirl)다. 그러다 매스컴이 발달하면서 보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팬덤의 대상이 되는 스타가 배출됐고, 최근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까지 보편화해 팬의 범위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크게 확장됐다.
  
대중의 환호, 권력자 과대망상 부추겨
 
팬덤은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하면서 홀로서기를 강요받는 현대사회에서 외로운 개인에게 소속감을 부여해 정신적·사회적 건강을 향상시키고 감정도 순화되는 순기능이 있다. 실제 팬덤의 일원이 되면 어려운 상황을 견디는 힘도 강해지고 우울감도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사실 팬과 스타는 서로에게 심리적 이익을 주고받는 공생 관계다. 팬은 스타를 통해 자신의 마음속에 숨겨진 욕망과 감정을 해소하고, 스타는 팬으로부터 성취욕·인정 욕구·자아 실현 등의 목표를 달성한다. 문제는 인간의 무의식에는 일상의 모습과 다른 원초적 본능과 콤플렉스가 함축돼 있다는 점이다. 실제 팬은 스타에게 도덕적·논리적·경제적 가치 실현을 기대하기보다는 내심 자신의 내면에 억압된 욕망과 불만, 분노를 해소해주기를 바란다. 스타 또한 팬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사회적인 악역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스타가 팬들에게 대리 만족을 주면 팬은 스타에게 무한한 지지와 사랑을 보낸다. 큰 잘못이나 비리를 저지른 스타 정치인, 유명인을 변함없이 환호하고 지지하는 두터운 팬심(fan心)이 존재하는 이유다. 간혹 스타의 행동이 심한 사회적 비난 대상이 될 땐 숨어서 지지하는 샤이(shy) 지지자로 남기도 한다.
 
팬심도 지나치면 병적인 상황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스타의 모든 일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면서 몰입하고 집착하는 팬은 정신 건강도, 삶의 질도 떨어진다. 더 큰 문제는 팬심이 집단의 힘을 빌려 왜곡되고 폭력성을 띄는 상황이다. 특히 스타 선동가를 중심으로 팬덤이 정치 세력화할 경우, 사회는 혼란과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도 민주적인 선거 과정을 거쳐 스타 정치인이 됐고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무슨 사안이건, 또 어떤 사람에 대해서건 맹목적인 지지나 반대를 하는 심리는 병적인 상태다.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는 데다 누구나 인간적인 한계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현재 진행 중인 미국 대선 상황을 관찰하고 반면교사로 삼아, 지금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는 정치적 팬덤 현상이 보다 건강한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희망해 본다.
 
황세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장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칼럼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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