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환·전립선 암 숨기는 남성…‘모벰버’엔 커밍아웃하자

중앙선데이 2020.11.21 00:20 712호 25면 지면보기

[런던 아이] 면도 안 하는 11월

영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남성들이 11월 한 달 동안 면도를 하지 않는 ‘모벰버’문화가 정착돼 가고 있다. 모벰버는 전립선암·고환암 등 남성들만의 건강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고 해결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사진은 수염을 자르지 않고 멋들어지게 기른 남성들의 모습. [사진 모벰버재단]

영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남성들이 11월 한 달 동안 면도를 하지 않는 ‘모벰버’문화가 정착돼 가고 있다. 모벰버는 전립선암·고환암 등 남성들만의 건강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고 해결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사진은 수염을 자르지 않고 멋들어지게 기른 남성들의 모습. [사진 모벰버재단]

매년 11월 전 세계 많은 남성은 한 달 동안 면도를 하지 않는다. 모벰버(Mo-vember)라고 불리는 이 전통은 남성들에게 영향을 주는 수많은 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기금을 모으고자 하는 자선단체의 노력에서 유래했다.
 

90년대 말 시작, 수염 안 깎는 11월
남성성 고정관념 장벽 깨기 운동

남성들 약하게 보이는 것 싫어해
고환암 등 질병·우울증 언급 터부시

체면 차리지 말고 털어놔야 치료
한국서도 의미 살펴볼 기회 되길

영국에서 모벰버는 매우 중요하다. 이 전통은 나의 10대 시절에 시작됐는데 콧수염이나 턱수염을 기르려고 나름대로 꽤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실패했던 기억이 있다. 일반적으로 학교에선 학생들이  깨끗이 면도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영국에서 모벰버는 중요한 전통이기 때문에 예외를 두는 경우도 있다.  
 
노벰비어드(Novembeard)나 노 쉐이브 노벰버(no-shave-November)라고도 하는데 현재는 모벰버 (Mo-vember)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다. 이 전통은 1990년대 말 호주에서 시작됐다.  
 
모벰버라는 이름은 콧수염을 뜻하는 호주 속어 mo와 11월을 뜻하는 영어 단어 November의 합성어다. 호주 애들레이드 남자들이 한 달 동안 콧수염을 깎지 않고 모은 돈을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했던 것에서 유래했다. 이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현재 모벰버재단(Movember Foundation)은 세계 100대 비정부기구(NGO) 중 하나가 됐다. 그리고 모벰버는 영국·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그리고 유럽 대부분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 남성 매년 1만 3000명 전립선암 진단
 
많은 사람에게 모벰버는 한 달 동안 면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핑곗거리가 될 수 있다. 매일 해야 하는 면도는 남성들에게 가끔은 귀찮은 일이다. 소중한 아침 시간을 빼앗고, 불편하기도 하고, 피부에 자극이 가서 피부가 건조하고 붉어질 수 있다. 그래서 남성들에게 모멤버는 한 달 동안 이런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반가운 달이 아닐 수 없다. 수염을 멋지게 기르지 못해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11월만큼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모벰버엔 면도를 하지 않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남성 질환인 전립선암, 고환암과 정신건강, 자살과 같은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기금을 모으는 것에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매우 중요한 건강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은 이 주제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리고, 이 때문에 쉽게 치료될 수 있는 병도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일부 남성들 사이에는 남성 관련 질병이나 정신 건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입 밖으로 내는 것만으로도 덜 강하고 덜 남자답게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병들에 대한 언급 자체가 터부시된다.
 
매년 전 세계에서 130만 명 이상의 남성들이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있지만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전립선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 따로 검색해야 할 정도로 제대로 알지 못했다. 대한암협회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매년 1만3000명의 남성이 전립선암 진단을 받으며, 영국에서는 이 수가 거의 5만 명에 달한다.
 
고환암은 15~39세 남성들 사이에서 가장 흔하지만 그 누구도 이것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약 5만 명이 고환암 진단을 받고 있다. 고환암에 관해서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우리에게 고환암은 이미 쉽지 않은 대화주제다. 고환암에 대해 글을 쓰는 것조차 약간 불편해한다. 대중의 인식을 높이기 위한 대규모 캠페인은 찾아볼 수 없다. 간단히 말해서, 그 누구도 고환에 대해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둘째, 대부분의 남성은 자신들의 고환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생산성’에 있어서 아마 가장 치명적인 신체 부위일 것이고, 무언가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많은 남성에게 정말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전립선암과 고환암 모두 조기에 발견된다면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다. 만약 사람들이 위험성에 대해 인지하고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관리한다면 충분히 치료받을 수 있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이 두 암 모두 불임을 포함한 꽤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데, 최악의 상황에서는 죽음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한 달 동안 콧수염을 기르는 것 자체는 암에 맞서 싸우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운동을 통해 남성들이 조금 더 쉽게 이 문제에 관해 얘기하고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정신건강과 자살은 이야기하기 더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암은 적어도 의학적으로 진단이 분명한 병이다. 하지만 정신건강과 자살은 심각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의학적 정의가 어려운 문제다.
 
2018년 기준 한국은 10만 명당 23명꼴로 자살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높다. 남성 10만 명당 35.1명이 자살을 하는 반면 여성의 비율은 10만 명당 12.8명이다. 영국에서도 남성 자살률이 여성보다 높다. 남성의 경우 11.4명인 반면 여성은 3.3명이다. 사실 모든 OECD 국가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높은 자살률을 보인다.
 
여성이 남성보다 감정에 대해 더 잘 이야기한다거나 남성이 감정에 압도당할 때까지 그들의 감정을 숨기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자살률이 높다고 단정 짓는 것은 너무 단순한 일반화다. 하지만 우리가 수백 년 동안 남성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나약함의 표시로 규정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여성이 우울증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보고하고 있는데, 이는 남성들이 의학적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작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문화가 발전하는 데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때때로 체면 세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는 것을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 특히 감정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것은 어려운 선택이다.
  
한국·영국 모두 남성 자살률 높아
 
영국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영국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지나치게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이 어떨 땐 무례하다고 생각되기도 하며, 그런 본인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까 봐 걱정한다. 친구들에게 우울한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것은 어색한 대화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 사람들은 남자다움을 과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 때문에 일부 남성들은 약점으로 간주될 수 있는 문제를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물론, 정신건강과 자살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심각한 문제이다. WH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자살시도가 남성보다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다만 자살시도 성공률은 남성이 더 높다. 사회적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이해도와 공감대가 높아지는 와중에도 남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고립시킨다.
 
모벰버 운동은 남성에게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 건강에 대한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이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높인다. 그런 의미에서 모벰버는 공동체를 형성해 전 세계 남성들이 그들 주위에 쌓아온 장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남성이라 해도 수염을 기르고 싶지 않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수염을 기르는 것이 비교적 흔하지 않고 어쩌면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모벰버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한 번 더 마음에 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남성들은 자신의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 건강을 잘 보살필 필요가 있다. 자신을 잘 돌보기 위해 꼭 수염을 기를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번역:유진실
 
짐 불리 코리아중앙데일리 에디터 jim.bulley@joongang.co.kr
짐 불리(Jim Bulley)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때 영국 지역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한국에 왔고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스포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KBS월드, TBS(교통방송), 아리랑TV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및 패널로 출연 중이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