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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린이·클린이·바린이·런린이…2030 '린이'의 전성시대

중앙선데이 2020.11.21 00:02 712호 2면 지면보기
개인 트레이닝을 6개월 받은 김혜민씨가 19일 서울 서교동 플린스튜디오에서 보디프로필을 찍고 있다. 김씨는 ’사진을 남기는 게 아니라 의지와 노력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개인 트레이닝을 6개월 받은 김혜민씨가 19일 서울 서교동 플린스튜디오에서 보디프로필을 찍고 있다. 김씨는 ’사진을 남기는 게 아니라 의지와 노력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그녀가 검은 머리를 풍성하게 올렸다. 아이라인이 검푸르게 도드라졌고 입술은 붉게 빛났다. 무엇보다, 기꺼이 드러낸 몸매를 이루는 근육은 구석구석까지 곤두서 있었다. 펌핑(운동으로 근육 부풀리기)을 마친 그녀의 몸은 성나고 있었다.
 

활동마다 '린이' 붙여 트렌드 용어로
헬스로 몸 담금질 뒤 보디프로필 찍고
볼더링 위주 클라이밍 인스타에 올려
코로나·취업난 속 달리며 성취감 가져

그녀, 김혜민(27)씨는 “헬린이 1년에, 보디프로필 찍고 프사로 남기려 한다”고 말했다. 헬린이는 헬스하는 어린이, 보디프로필(body profile·'바디프로필'로 통용되기도 한다)은 신체 촬영 사진, 프사는 소셜미디어(SNS)의 프로필 사진을 뜻한다. 찰칵, 찰칵 …. 플래시 속 그녀는 포즈를 바꿨다. 춤추는 듯 했다.
  

김씨 같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태생)가 ‘○린이’로 뛰고, 걷고, 오르고, 타고, 헤엄치고 있다. 이런 2030 ‘린이’의 놀이터는 대한민국 곳곳이지만 한곳으로 모인다.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다. 그들은 이곳에 자신의 활동을 남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인스타에서 해시태그로 검색해 본 게시물 수는 헬린이가 지난 17일 기준 134만 개로 압도적이다. 캠린이(캠핑), 런린이(달리기), 자린이(자전거), 등린이(등산)의 게시물도 많다. ‘린이’는 ‘어린이’에서 따온 말로 ‘초보’를 뜻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초보의 개념을 벗어나고 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2030이 쓰는 ‘린이’는 초보의 의미보다 일종의 트렌드 용어”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심리적·신체적 위축감과 취업난 속에서 성취감을 높이기 위한 그들만의 의식, 재미 추구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한다. ‘린이’의 전성시대다.
 
# 헬린이, 보디프로필 위해 ‘헬 트레이닝’
"엉덩이에 힘 꽉!"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플린스튜디오. 여성 전용 보디프로필 스튜디오인 이곳에서 김혜민씨가 사진기 앞에 섰다. 그는 1년 전 몸무게가 78㎏(167㎝)이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보고 헬린이가 되기로 했다. 그러다가 보디프로필을 찍기로 했다. 개인 트레이닝(PT)을 6개월간 받았다. 그녀는 현재 52㎏.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1년에 걸쳐 26㎏을 뺐다. 김씨는 “내 빛나는 순간인 현재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서 찍는다”며 “사진을 남기는 게 아니라 의지와 노력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헬린이 중 보디프로필을 찍는 사람들은 이른바 헬(지옥)을 만나야 한다. 백두현(26) 일산 A+ gym 트레이너는 “촬영을 위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5~6개월 철저한 트레이닝과 식단 조절을 해야 한다"며 “근육 키우기보다 근육의 선명도를 높이는 게 중요한데, 지방을 빼야 하기 때문에 운동보다 식욕 억제가 힘들다"고 보디프로필 PT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김씨는 "나날이 변화하는 내 모습을 보는 재미로 버텼다"며 "끝났으니 떡볶이·치킨·맥주를 먹으러 갈 것"이라고 털어놨다. 
백두현 일산 A+ gym 트레이너가 헬린이인 회원의 개인 트레이닝(PT)을 지도하고 있다(위). 아래 사진 왼쪽은 친구들과 보디프로필을 찍은 임현진씨. 오른쪽은 런린이자 헬린이로, 역시 보디프로필을 촬영한 최진슬씨. [사진=백두현·임현진·최진슬]

백두현 일산 A+ gym 트레이너가 헬린이인 회원의 개인 트레이닝(PT)을 지도하고 있다(위). 아래 사진 왼쪽은 친구들과 보디프로필을 찍은 임현진씨. 오른쪽은 런린이자 헬린이로, 역시 보디프로필을 촬영한 최진슬씨. [사진=백두현·임현진·최진슬]

백 트레이너는 운동을 상담하러 온 2030 10명 중 5~6명이 보디프로필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2~3명 정도였다. 플린스튜디오의 김윤미 실장은 “보디프로필 전문 스튜디오가 서울에만 1년 새 5~6개에서 20여 개로 늘었다”고 말했다. 플린스튜디오는 예약 후 실제 촬영까지 최소 5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올해 초만 해도 촬영 스케줄 80개가 2주 걸려 예약됐는데, 최근에는 180개 스케줄이 10분 만에 매진된다. 전문 강사 위주의 보디프로필 촬영이 최근 2030 헬린이의 버킷리스트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헬린이로 지내던 임현진(33)씨도 어느날 친구 두 명과 보디프로필을 찍기로 했다. 그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평소 스스로를 관리해온 나를 남기고 싶었다”고 밝혔다. 모든 헬린이가 보디프로필을 찍지는 않는다. 김나연(28)씨도 마찬가지다. “3년차로, 초보를 벗어났지만 즐겁게 친구들과 운동하기 위해 서로를 헬린이로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헬린이가 공공의 적이 된 적이 있다. 코로나19로 헬스장이 문을 닫자 이들 중 일부가 이른바 산스장(산+헬스장)과 공스장(공원+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면서다. 야외라도 사람이 몰리다 보면 코로나19 확산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 헬린이는 “항의와 눈총을 받고 홈트(홈트레이닝)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최근 코로나19 상황이 심상치 않아 다시 홈트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 산린이, 10원까지 n분의 1은 기본
클린이(클라이밍)는 인스타 게시물이 1만개에 가깝다. 최근 1년 새 2030 클린이들이 2배 가까이 늘었다는 게 클라이밍업계의 설명이다. 지난 17일 일산 마두역 근처 실내암장인 ‘더클라임’에는 2030 클라이머들이 90%가 넘었다. 이용자 120여 명 중 40대 이상은 10명도 안 됐다. 10대도 꽤 있었다. 
지난 11월 17일 실내 암장인 일산 더클라임을 이용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2030 '클린이'였다. 더클라임은 짧고 강한 클라이밍 루트를 세팅하는 '볼더링' 암장에 속한다. 김홍준 기자

지난 11월 17일 실내 암장인 일산 더클라임을 이용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2030 '클린이'였다. 더클라임은 짧고 강한 클라이밍 루트를 세팅하는 '볼더링' 암장에 속한다. 김홍준 기자

클린이들은 실내암장에서 볼더링(bouldering)을 주로 한다. 볼더링은 코스가 짧지만 강한 힘이 있어야 하는 문제 풀이 개념의 루트다. 기존의 실내암장이 볼더링보다 동작이 작은 대신 코스가 긴 지구력 위주라면 최근 새로 생기는 암장은 대부분 볼더링 루트를 내세운다. 더클라임도 그중 한 곳이다. 클라이밍을 시작하는 클린이는 볼더링부터 배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4060은 지구력, 2030은 볼더링 클라이밍으로 갈라지는 모양새가 됐다. 
 
실내암장뿐만 아니라 자연암장도 마찬가지다. 2030은 접근이 쉬운 작은 바위에서 주로 볼더링을 하는 반면, 4060은 인수봉 같은 큰 바위에서 긴 코스로 등반하는 경향이 있다. 김지환(17·안곡고2)군은 “볼더링은 성취감이 크고, 해 본 운동 중에 가장 재밌다”고 했다. 홍승희(31)씨는 “1주 3클을 한다”고 했다. 그녀는 월, 수, 금요일에 실내암장에서 꼭 자신의 등반 모습을 스마트폰에 담은 뒤 인스타에 올린다. 실내암장에는 클린이의 수만큼 촬영용 삼각대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 7일 북한산에서 볼더링을 하던 강민준(29)씨도 “프로젝트 등반 중”이라며 삼각대에 스마트폰을 고정하고 자신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기고 있었다.

강민준(29)씨가 지난 11월 7일 북한산의 한 바위에서 웃통을 벗은 채 볼더링(영어로 작은 바위를 뜻하는 볼더를 오르는 행위)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모든 등반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한다. 김홍준 기자

강민준(29)씨가 지난 11월 7일 북한산의 한 바위에서 웃통을 벗은 채 볼더링(영어로 작은 바위를 뜻하는 볼더를 오르는 행위)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모든 등반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한다. 김홍준 기자

등산하는 등린이(혹은 산린이)는 이미 2년 전부터 유명해졌다. 등린이 중 그들만의 산행 문화를 가진 곳도 있다. ‘젊산모’의 진주영(32)씨는 “나이 제한을 35세로 하는데, 20대 초반 크루(회원)와 나이 차이가 나면서 생기는 불편함을 사전에 막자는 의도”라며 “누군가 ‘라떼(나 때는 말이야)’라 하면 벌써 불편해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스트레인져서울’의 최인규(33)씨는 “뒤풀이 비용은 10원 단위까지 n분의 1(갹출)하되, 음주와 금주 테이블을 구분해 테이블 별로 계산해 서로 부담이 안 되게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재 코로나19로 모임을 최소화하고, 산행 중 마스크를 착용한다.등린이의 ‘레깅스’ 패션도 눈에 띈다. 레깅스는 이들뿐만 아니라 헬린이, 클린이, 폴린이(폴댄스) 등도 애용한다.

'산린이' 또는 '등린이'로 자신을 부르는 2030이 2019년 3월 북한산 백운대에 올랐다. 이들 모두 2030 등린이의 트레이드마크인 레깅스 차림이었다. 현재 이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개인 또는 소모임으로 산에 오르고 있다. 김홍준 기자

'산린이' 또는 '등린이'로 자신을 부르는 2030이 2019년 3월 북한산 백운대에 올랐다. 이들 모두 2030 등린이의 트레이드마크인 레깅스 차림이었다. 현재 이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개인 또는 소모임으로 산에 오르고 있다. 김홍준 기자

달리는 린이인 '런린이'들. 경기도 고양 화정에서 뛰고 있는 최진슬씨는 보디프로필을 찍은 '헬린이'이기도 하다(왼쪽). 오른쪽 위는 경기도 고양 일산의 러닝크루 '러니스(Runis)'가 호수공원에서 뛰는 모습. 그 아래 사진은 이보경(앞에서 두 번째)씨 등 YRC(여의도 러닝크루)가 달리는 모습. [사진=최진슬·이보경]

달리는 린이인 '런린이'들. 경기도 고양 화정에서 뛰고 있는 최진슬씨는 보디프로필을 찍은 '헬린이'이기도 하다(왼쪽). 오른쪽 위는 경기도 고양 일산의 러닝크루 '러니스(Runis)'가 호수공원에서 뛰는 모습. 그 아래 사진은 이보경(앞에서 두 번째)씨 등 YRC(여의도 러닝크루)가 달리는 모습. [사진=최진슬·이보경]

 
런린이도 레깅스족이다. 이보경(29)씨도 레깅스를 입고 뛴다. 그녀는 “자신을 런린이라고 하는 이유는 입문자의 마음으로 편하게 즐기자는 것”이라며 “인스타로 러닝 모습을 올려 응원을 받고 동기 부여도 받는다”고 했다. 최진슬(28)씨는 “취업을 준비하던 힘든 시기에 고민을 잊고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러닝을 시작했다”고 했다. 최씨는 “오늘(지난 19일) 러닝은 비 때문에 취소됐다”고 아쉬워했다.
 
이 ‘린이’들은 서로 장벽이 없다. 헬린이가 등린이로, 런린이로, 자린이로 변신하기도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의 첫 머리를 따다보니 ‘린이’는 의외로 많다. 바린이(모터사이클)라는 김나영씨는 할리데이비슨 스트리트750을 몬다. 그녀는 “정해진 목적지 없이 질주할 때 몸속에 잠자고 있던 세포들이 살아나는 듯하다”고 얘기했다. 부캐너125를 타는 조은아(25)씨는 “해방감 속 같은 바린이를 만나는 인연이 소중하다”고 했다. 김혜진(야마하 R3)씨도 같은 말을 했다.
모터사이클 또는 바이크를 타는 2030 '바린이'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410.withthrottle(인스타그램 아이디)과 김나영·김혜진(둘 중 왼쪽)·조은아씨. [사진=410.withthrottle·김나영·김혜진·조은아]

모터사이클 또는 바이크를 타는 2030 '바린이'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410.withthrottle(인스타그램 아이디)과 김나영·김혜진(둘 중 왼쪽)·조은아씨. [사진=410.withthrottle·김나영·김혜진·조은아]

 
이훈 교수는 “2030 ‘린이’는 취미 수준에서 벗어나 어느 시점에 프로화될 수도 있다”며 “이들은 기성세대와 다르다기보다 여가를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즐기며, 다양한 린이를 만들어 분화·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재미로 가볍게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린이’를 표방하는데, 여가를 개인 단위로 즐기면서도 연대하고픈 뜻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린이'는 오늘의 흐름이다. 흐름은 새 길을 만든다. '린이'의 새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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