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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이 장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중앙일보 2020.11.20 00:37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형석 영화평론가

김형석 영화평론가

이종필 감독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엔 숨겨진 캐릭터가 하나 있다. 금붕어다. 캐릭터이자 메타포인 이 생명체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통하며 의미를 전한다. 이후 ‘람보’라는 이름을 얻는 이 금붕어의 삶은 기구하다. 원래 오 상무(백현진)의 사무실에 있었던 람보는 자영(고아성)의 손길이 없었다면 변기에 버려질 운명이었다. 자영은 람보를 구출해 하천에 풀어주려 하는데, 이때 죽은 물고기들이 둥둥 떠내려온다. 바로 페놀 유출의 현장이다. 이후 자영에서 보람(박혜수)의 손으로 넘어가고 봉 부장(김종수)에 의해 이름을 얻게 된 람보는 다시 오 상무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버리려 할 땐 언제고 금붕어를 애지중지하는 오 상무. 하지만 자영과 보람과 유나(이솜)는 꾀를 내어 람보를 다시 찾아온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금붕어는 힘겹게 살아가는 당대의 여성 노동자들, 즉 자영과 보람과 유나의 분신 같은 존재다. 그들의 싸움은 람보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며, 이것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다. 거대 조직의 부품으로 살다가, 페놀 때문에 생명을 잃고 둥둥 떠다니는 물고기처럼 될 수도 있는 현실. 여기서 세 여성 노동자는 연대의 힘을 통해 금붕어를 지켜내고, 그렇게 자신들을 지켜낸다. 영화의 엔딩 시퀀스. 좁은 어항이 아니라 큰 수족관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한 마리가 아닌 세 마리의 금붕어가 보인다. 그들에게 좋은 집이 생겨 다행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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