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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용산공원에 돔구장을 짓는다면

중앙일보 2020.11.19 00:35 종합 25면 지면보기
정제원 스포츠본부장

정제원 스포츠본부장

“용산공원에 야구장을 지으면 어떨까?”
 

서울 한복판에 복합경기장 ‘발상’
100년 앞을 내다보고 결정해야
네이밍 권리 팔면 재원 마련 가능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동료 A가 점심식사를 하던 중 불쑥 내뱉은 한마디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그런데 A는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다.
 
“왜 안된다고만 생각하지. 뉴욕이나 도쿄를 봐. 야구장은 모두 도심 한복판에 있다고. 누가 야구만 하쟀나. 이번 기회에 돔구장을 만들어서 복합 공연장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다고 봐.”
 
옆에 앉은 다른 동료들도 괜찮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프로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큰 거부감은 없는 듯했다. 그제서야 나도 용산공원에 돔구장을 짓자는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됐다.
 
용산이 어떤 땅인가. 서울의 한복판인데도 용산은 지난 130여년간 우리 땅이 아니었다. 1882년 청나라 군대가 임오군란을 진압한 뒤 이곳에 눌러앉았고, 일본군이 러·일전쟁을 앞두고 주둔한 곳도 바로 여기였다. 그리고 6·25가 끝나자 미군이 이 땅을 물려받아 최근까지 사용했다는 건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귀하디귀한 이 금싸라기 땅에 돔구장을 짓자고? 아파트 지을 땅이 모자라서 태릉 골프장도 부수자는 판인데 용산공원에 돔구장을 짓자는 발상이 가당키나 한가. 용산공원에 콘크리트 인공 구조물을 건설해선 안 된다는 게 많은 사람의 생각이다. 서울의 마지막 허파로 남은 이곳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소중하게 보전해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다.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숲이 우거진 사이로 새가 날아다니고, 개울이 흐르는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개발은 최소화하고, 자연을 살리는 쪽으로 큰 가닥을 잡았다.
 
서소문 포럼 11/19

서소문 포럼 11/19

큰 그림은 맞다. 숲이 우거진 공원에 콘크리트 빌딩을 세우는 건 절대 반대다. 그런데 돔구장 하나 짓는다고 용산공원이 망가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공원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측면에선 이보다 좋은 아이디어가 없다. 용산공원의 전체 면적은 303만㎡(약 100만평)다. 돔구장 하나 짓는 데는 6만㎡ 정도면 충분하다. 전체 면적의 50분의 1, 즉 2%만 내주면 돔구장을 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하필 돔구장인가. 야구장이라면 잠실구장도 있고, 돔이라면 고척스카이돔도 있지 않은가. 잠실구장은 현재 LG와 두산, 2개 구단이 나눠쓰고 있다. 용산공원에 돔구장을 짓는다면 더는 야구장을 나눠쓰지 않아도 된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뉴욕 양키스는 양키스타디움, 뉴욕 메츠는 시티필드를 홈구장으로 쓴다. 우리도 강남엔 잠실구장, 강북엔 용산구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유일한 돔구장인 고척스카이돔은 교통 측면에서 큰 약점을 갖고 있다. 상습 정체 구역에 남아있던 빈 땅에 돔구장을 욱여넣은 탓에 접근성 측면에선 낙제점이다. 주차장도 협소해서 승용차를 몰고 가기가 어렵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한창이다. 엊그제 전철 1호선을 타고 고척돔을 찾았더니 열차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도대체 누가 여기에 돔구장을 짓자고 결정한 거야.” 그도 그럴 것이 고척돔을 지나는 전철 노선은 단 1개뿐이다. 일본의 도쿄돔을 지나는 전철과 지하철 노선은 마루노우치선 등 총 6개나 된다.
 
용산에 돔구장을 지으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용산공원 주변엔 서빙고역과 신용산역·이촌역·삼각지역·숙대입구역·녹사평역 등 모두 6개의 지하철역이 있다. 동서남북 할 것 없이 접근성이 뛰어나다. 4~11월엔 야구장으로 쓰고, 나머지 기간엔 공연장으로 활용하는 거다. 최소한 100년 앞을 내다보고 5년 이상 면밀한 계획을 세워서 스포츠와 예술을 아우르는 복합 문화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남자와 여자, 노인과 어린이가 함께 찾는 시민의 명소가 탄생하게 된다.
 
‘지금 당장 용산공원에 야구장을 허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고, 공원의 효율적 이용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야구장을 지을 돈이 필요하다면 구장 명을 파는 방법도 있다. 뉴욕 메츠의 홈구장 이름은 시티필드(CITI Field)다. 시티그룹에 네이밍 권리를 판 것이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은 쿠어스 필드다. 맥주회사가 건설비용 일부를 댔다. 용산구장 이름도 기업에 팔면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아모레 퍼시픽돔’이나 ‘LG돔’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이 정도면 용산 돔구장, 검토할 만하지 않은가. 야구장을 영어로 표기하면 ‘볼파크(ball park)’다. 야구장이 곧 공원이라는 뜻이다.
 
정제원 스포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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