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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 부부싸움 늘자, 아이들도 ‘코로나 블루’ 멍든다

중앙일보 2020.11.19 00:02 종합 14면 지면보기
지난 3월 개학이 미뤄진 초등학생 A군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됐다. 부모도 아이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그리되지 않았다. A군이 학교에 가지 않고 아버지가 재택 근무를 하게 되면서 가사와 양육 부담이 늘어 부부 다툼이 덩달아 늘었다. 부모의 잦은 다툼에 불안감을 느낀 A군은 4월 말 서울생명의전화에 온라인 상담을 요청했다.
 

생명 그 소중함을 위하여(36)
재택근무, 실직에 부부갈등 급증
초등생까지 온라인 상담 신청

노인들 경로당도 못가고 집 갇혀
“자식들은 코로나 핑계로 안 와”
전문가 “취약층 정신건강 돌봐야”

우혜진 서울생명의전화 부장은 “온라인 상담은 10·20대가 많았지만 초등학생까지 상담을 신청해 놀랐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 상담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A군처럼 가정 불화에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었다. 생계난에 직격탄을 맞은 청소년의 하소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서울생명의전화 온라인 상담은 3분기 들어 한 달 150~170건으로 1분기 대비 배 가량 증가했다.
 
소득집단별 자살생각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소득집단별 자살생각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우 부장은 “코로나19 같은 재난이 등장하면 가족 내 예상치 못한 갈등이 생기고, 이런 갈등이 극단적 선택 충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아이들은 상담에서 ‘죽고 싶다’ ‘차라리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같은 말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며 10대 청소년까지 우울증 및 자살 위험군으로 편입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2011년부터 9~24세의 사망 원인 1위가 줄곧 자살인데, 코로나19가 여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
 
저소득층·노인 등의 취약계층은 코로나19에 먼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올해 한국생명의전화·중앙자살예방센터 등에 접수된 상담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40~50대, 고립감을 호소하는 노인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에어컨 부품회사에서 전문 기술자로 일했던 50대 남성 B씨는 최근 권고사직을 당했다. 한때 회사 임원까지 지냈지만 코로나19로 회사 매출이 줄자 등 떠밀리듯 직장을 관뒀다. 생활고가 빠르게 찾아왔다. 과거 주식투자 실패의 빚(6000만원) 상환도 압박했다. B씨는 결국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지만, 다행히 이웃 주민의 신고로 목숨을 건졌다.
 
경제활동 참여상태에 따른 자살생각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경제활동 참여상태에 따른 자살생각 현황.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소득과 직장의 유무 등은 우울증 및 자살 충동에 큰 영향을 준다. 보건복지부의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8년 저소득 가구원의 자살 생각률(연 1회 이상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 비율)은 5.1%로 일반 가구원(1%)의 5배에 달했다. 2018년 경제활동 참여상태에 따른 전체 가구원의 자살 생각률은 비경제활동인구가 3.1%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실업자 2.7%, 취업자 1% 순이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이 전국 성인 1200명을 조사했더니 무직 남성은 직업이 있는 남성보다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약 2.2배 높았다. 또 월 소득이 200만원 미만인 남성은 그 이상보다 자살 충동이 약 6.2배 높았다. 월 소득 200만원 미만인 여성은 자살 충동이 약 6.4배 높았다.
 
윤 교수는 “코로나 사태로 사회적·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늘 텐데, 이런 취약계층에서 우울증과 자살 문제가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인의 고립감도 심각한 문제다. 지방에서 남편과 사는 70대 여성 C씨의 유일한 즐거움은 신앙생활이다. C씨는 동네교회에서 교인을 만나 식사하고 봉사활동 하며 남편과 불화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지만 교회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잇따르자 교회 모임이 전면 금지됐다. 경로당·복지시설도 문을 닫은 기간이 석 달 이상 지속됐다. C씨는 한 대형병원 정신과를 찾아 “자식들은 코로나 핑계로 찾아오지도 않는다. 너무 외로워서 ‘이렇게 살면 뭐하나’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는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8년 연령대별 자살률을 보면 80세 이상(인구 10만 명당 69.8명), 70대(48.9명), 50대(33.4명) 순으로 높다. 60대 자살률은 50대보다 0.5명 정도 적지만 전반적으로 연령대가 높을수록 자살률도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올 1~8월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8566명(통계청 잠정치)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가량 줄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극단적 선택을 연기하는 현상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소위 이듬해 극단적 선택이 느는 ‘지연된 자살’ 현상이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은 “재난 상황 첫 해엔 오히려 극단적 선택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며 “재난 초기 모두가 어려움을 겪을 때는 ‘함께 이 상황을 극복하자’는 공감대가 생겨 버틴다”고 말했다. 백 센터장은 “재난이 장기화하고 달라지지 않으면 취약계층부터 정신적인 절망, 트라우마가 생기기 쉽다”고 말했다.
 
백 센터장은 “2015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일본도 그 해에는 극단적 선택이 줄었지만 2년 후 중·장년층에서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2003년 중국에서 사스(SARS)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땐 노인 자살이 증가했다고 한다. 백 센터장은 “취약계층은 감염병이 터지면 고립감으로 인한 우울·분노에 더 취약해진다”며 “정부가 무엇보다 취약계층에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중앙일보·안실련·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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