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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병·구선왕도고·세아리밥·잡누르미…먹어봤나요

중앙일보 2020.11.19 00:02 종합 18면 지면보기
한국의 맛 연구회 회원들이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정원 편집위원장, 이춘자 고문, 이미자 편집위원장, 이근형 회장. 장진영 기자

한국의 맛 연구회 회원들이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정원 편집위원장, 이춘자 고문, 이미자 편집위원장, 이근형 회장. 장진영 기자

‘한국의 맛 연구회’가 30년 활동과 전통음식 조리법 286선을 정리한 책 『한국의 맛 연구회 삼십년 이야기-걸어온 길, 되찾은 맛 1989~2019』을 냈다.
 

서른 살 맞는 ‘한국의 맛 연구회’
조리법 286가지 정리한 책 출간
반가음식 대가 강인희 선생 제자들
“전통 상차림 사라져가 안타까워”

‘한국의 맛 연구회’는 각 대학교수, 명인들이 전통음식을 계승·보전하고 우리 음식의 정체성을 찾고자 만든 비영리연구단체다. 1989년 우리 맛 연구가인 강인희 선생에게 배움을 청하며 시작한 모임이 2001년 강 선생 별세 후에도 이어졌다. 이곳을 거친 회원은 약 350명. 그동안 『한국의 상차림』 『한국의 전통음료』 『한국의 나물』 『발효음식』 『제사와 차례』 등 30여권의 책을 냈다.
 
약과 반죽보다 조금 질게 반죽한 뒤 소를 넣어 만두처럼 만든 ‘만두과’.

약과 반죽보다 조금 질게 반죽한 뒤 소를 넣어 만두처럼 만든 ‘만두과’.

강인희 선생은 흥선대원군의 형 흥인군 이최응의 종부 김정규 여사, 조선왕조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의 올케 조면순 여사에게 궁중음식과 반가음식을 전수받았다. 동아대·명지대 교수를 지낸 그가 87년 출간한 『한국의 맛』은 한국 음식 전공자의 필독서로 꼽힌다.
 
멥쌀에 여러 약재를 섞어 만든 떡 ‘구선왕도고’.

멥쌀에 여러 약재를 섞어 만든 떡 ‘구선왕도고’.

이춘자 편집고문은 “어육장·석탄병·구선왕도고·만두과 등 음식은 강 선생이 고문헌을 기초로 재현한 음식들”이라며 “사라질 뻔한 우리 음식을 찾아내고 후대에 전수한 공로가 크다”고 했다. 어육장은 메주를 기본으로 한 장으로 소고기·닭·꿩·숭어·도미·전복·홍합·대하 등이 들어간다. 석탄병은 멥쌀가루에 말린 감가루와 잣가루를 섞어 찐 떡이다. 『동의보감』에도 기록된 구선왕도고는 몸속을 조화시키는 게 마치 왕의 도를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9가지 약재로 만든 떡이다. 만두과는 반죽을 얇게 펴서 안에 소를 넣고 만두모양으로 만든 과자다. 전정원 편집위원장은 “진달래 화전은 보통 작은 반죽 위에 진달래꽃을 하나씩 올리지만, 선생은 반죽을 넓게 펴서 진달래와 쑥을 흩뿌리고 종지로 동그랗게 찍은 다음 프라이팬에 부쳤는데 마치 진달래밭 같았다. 먹는 맛, 보는 맛이 특별했다”고 했다.
 
멥쌀가루에 감·잣 가루를 섞어 찐 ‘석탄병’.

멥쌀가루에 감·잣 가루를 섞어 찐 ‘석탄병’.

이미자 편집위원장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연구회 모임 참가자들은 경력 20년 이상의 전문가들이었지만 강 선생은 그들에게 무조건 파·마늘 손질부터 하게 했다”며 “기본기의 중요함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돌이켰다. 이근형 연구회장은 “소중한 우리 음식의 기본 조리법 286개를 정리했는데, 책을 읽고 꼭 음식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며 “다만 젊은 세대가 상반·세아리밥·잡누르미·지레김치 등 우리가 잊고 산 전통 음식을 하나씩 찾아가는 재미를 발견하면 좋겠다”고 했다. 상반은 쌀과 팥을 1:1 비율로 섞어 지은 밥, 세아리밥은 세 가지 곡식으로 지은 밥이다. 잡누르미는 소고기·전복·해삼·표고버섯·통도라지·당근·오이 등을 나란히 꿴 꼬치 요리다. 지레김치는 김장 김치가 익기 전 조금 담가 먹는 김치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을 뜻하는 ‘지레’가 이름에 붙은 이유다.
 
쌀 반죽에 진달래·쑥을 흩뿌린 다음 종지로 찍어내 부친 ‘진달래화전’.

쌀 반죽에 진달래·쑥을 흩뿌린 다음 종지로 찍어내 부친 ‘진달래화전’.

한국의 맛 연구회는 요즘도 요리 강연을 열고 후대에 남길 자료를 정리한다. 미래 세대를 위한 식문화 캠페인도 벌인다. 최근 연구회가 고민하는 주제는 ‘전통 상차림’이다.
 
이춘자 편집고문은 “요즘 한식당에선 서양식 코스요리를 본 딴 상차림을 한다”며 “왜 고기 따로, 생선 따로 맛보게 하고 그 집의 기본 솜씨를 알 수 있는 밥, 김치, 젓갈은 코스 맨 마지막에 내놔 남기게 하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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