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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공항·한화갑 공항…표의 저주에 갇힌 지방공항 잔혹사

중앙일보 2020.11.18 16:16
국무총리실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17일 김해신공항이 동남권 관문공항을 수행하기에는 미래 확장성 측면에서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내놓은 가운데 가덕신공항이 이대로 착공까지 무난하게 진행될지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김해신공항 계획도. 뉴스1

국무총리실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17일 김해신공항이 동남권 관문공항을 수행하기에는 미래 확장성 측면에서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내놓은 가운데 가덕신공항이 이대로 착공까지 무난하게 진행될지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김해신공항 계획도. 뉴스1

 
‘노태우 공항, 한화갑 공항’
청주 공항과 무안 공항에 붙은 별칭이다. 청주 공항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내걸어 탄생했다. 무안 공항은 김대중 정부 당시 실세로 여겨진 한화갑 전 의원이 주도했다. 
 
이렇듯 주요 지방공항이 정치에 휘둘린 건 동남권 신공항의 문제만이 아니다. 여러 지방공항이 정치적 산물이다. 표심을 의식한 정치인이 지역개발 활성화를 앞세워 탄생시킨 공항이 많다. 이 과정에서 경제성은 뒷전으로 밀렸다. 그 결과 대부분 지방 공항은 적자에 허덕인다. 아예 문을 닫은 공항도 있다.
 

10개 공항 887억 적자…국민 부담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공항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공항공사 소관 14개 공항 중 김포‧김해‧제주 공항을 제외한 11개 공항이 올 1~8월 당기순이익 적자를 봤다. 11개 공항의 적자 규모는 이 기간 572억원에 이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항공 수요가 많이 축소된 영향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관계없이 주요 지방공항의 적자 살림은 만성화 상태다. 지난해의 경우 10개 공항이 모두 887억원의 당기순이익 적자를 봤다. 여수(-144억원), 양양(-142억원), 포항(-129억원), 울산(-125억), 무안(-119억원) 공항의 적자 규모는 100억원을 넘겼다. 한국공항공사의 지분은 정부가 100%(기획재정부 51.7%, 국토교통부 48.3%) 보유하고 있다. 지방공항 적자는 정부의 부담으로 되돌아가고, 결국 세금을 내는 국민이 책임을 지는 구조라는 얘기다. 
연도별 국내공항 당기손익.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연도별 국내공항 당기손익.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수요가 없어 공항 간판을 뗀 곳도 있다. 대표적인 게 예천 공항이다. 1989년 민간 공항이 된 예천 공항은 2004년 문을 닫았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완공 등으로 수요가 확 줄어서다. 울진공항은 아예 민간항공기가 뜨지도 못했다. 2003년 개항을 목표로 일반 공항으로 건설됐으나 수요가 없어 2010년 비행교육 훈련 시설로 전환했다. 
 
이들 공항에 대한 경제 타당성 조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상되는 이용객 수가 부풀려지는 식이어서 조사는 하나 마나였다. 타당성 조사에서 무안공항 이용객 수는 연간 878만명으로 예상됐다. 실제 수치는 턱도 없이 작다. 이 공항 이용객 수가 가장 많았던 해는 2018년인데, 50만명을 겨우 넘었다.
 

“KTX, 고속도로가 국내선 수요 잠식” 

18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열린 '김해공항 확장 백지화 검증위 발표에 대한 입장 및 대응방안 부울경 시민단체 기자회견'에서 가덕도신공항 추진 범시민운동 본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8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열린 '김해공항 확장 백지화 검증위 발표에 대한 입장 및 대응방안 부울경 시민단체 기자회견'에서 가덕도신공항 추진 범시민운동 본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정부는 지방 공항을 되살리기 위한 대책을 몇 차례 내놨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5년 지방공항 공항시설료 감면, 항공‧관광연계 사이버 포털 구축 추진 등의 내용을 담은 ‘지방공항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2017년 12월에는 지방공항 활성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책은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고속철도(KTX),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엮여 있는 상황에서 국내선 수요는 갈수록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항공경영학과 교수는 “지역 공항이 적자에서 벗어나려면 국제노선 개발이 필요한데, 서울·제주 등 일부 지역 외에는 국제노선 수요가 거의 없다”며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공항 적자에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에선 지역 공항 건설 요구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모빌리티(이동을 편리하게 하는 각종 서비스) 산업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공항 건설을 둘러싼 갈등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금은 인공지능(AI)의 발전, 모빌리티 산업의 급속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할 때”라며 “정부와 정치권, 지자체가 당장의 이익에 목매 공항과 같은 토건 자본 건설을 두고 갑론을박하며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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