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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듀 피해 12명 법정서 일일히 호명…알고보니 이재용 훈계한 그 판사

중앙일보 2020.11.18 15:59
정준영 고법 부장판사의 모습. [중앙포토]

정준영 고법 부장판사의 모습. [중앙포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훈계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겐 질책을 했던 판사가 이번엔 프로듀스101 조작 피해자들을 위한 구제에 나섰다. 
 

서울고법 정준영 재판장, 이례적 '100원 배상' 판결도

서울고법 형사1부의 정준영(53) 재판장은 18일 프로듀스101 시청자 투표 조작 혐의로 기소된 CJ ENM의 전 총괄PD 김모씨와 프로듀스 메인PD 안모씨 등의 항소심에서 이들에게 실형(징역 1년 8월·징역 2년)을 선고하며 피해자 12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처음 공개된 피해자 실명, CJ도 압박 

프로듀스101 피해자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건 처음이다. 법정에 있던 방청객과 기자는 물론, 연예계에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정 재판장은 법정에서 당시 연습생이었던 이들을 일일히 호명하며 "000연습생은 투표조작의 결과로 탈락했다"는 문장을 반복해 말했다.
 
프로듀스 조작 피해자로 밝혀진 이가은씨의 모습. [일간스포츠]

프로듀스 조작 피해자로 밝혀진 이가은씨의 모습. [일간스포츠]

정 재판장은 "피해연습생이 누구인지 밝혀져야 피해보상이 가능하다""피해연습생의 억울한 탈락이 밝혀지는 것이 진정한 피해보상의 출발"이라고도 했다. 지난해 12월 대국민 사과와 함께 피해자 보상을 약속했던 CJ ENM을 압박한 것이다. 이어 안 PD의 범행으로 문자투표 비용 100원을 손해봤다는 손해배상 청구도 받아들였다. 정 재판장은 "소송 비용이 손해배상액보다 훨씬 크지만 시청자를 속인 사기를 인정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재용, 김학의 재판 맡아 화제  

정 재판장이 재판 진행과 판결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 정 재판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을 맡고 있다. 지난달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재판을 맡아 1심의 무죄를 뒤집고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지난해 10월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정 재판장은 당시 51세였던 이 부회장에게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51세 이건희 삼성그룹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자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극복했다"며 "2019년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경영 훈계를 한 것이다. 이후 삼성에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요구했고, 이에 반대하는 특검과 재판이 열릴 때마다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지난달 김 전 차관 재판에서도 정 재판장은 한국 스폰서 검사의 역사를 언급하며 "2020년 지금 우리나라 검찰에 검사와 스폰서의 관계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1심과 같이 무죄 판결을 기대했던 김 전 차관은 실형이 선고되자 "물 좀 먹을 수 있겠느냐"며 당황해했고, 그의 아내는 오열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정 재판장은 사회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건이 오면 그냥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는 사람"이라 말했다. 그 사건이 담은 의미를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정 재판장은 올해 초엔 치매를 앓던 중 아내를 살해한 노인에게 직접 그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가 1심의 실형을 뒤집고 집행유예를 선고하기도 했다.
 
정준영 재판장은 올해 초 고양시의 한 병원에서 아내를 살해한 치매노인 A씨에게 대한 선고 공판을 열었다. 사진은 당시 A씨에게 선고를 하던 정 재판장의 모습. (오른쪽 끝 흰머리) [법원 기자단 제공]

정준영 재판장은 올해 초 고양시의 한 병원에서 아내를 살해한 치매노인 A씨에게 대한 선고 공판을 열었다. 사진은 당시 A씨에게 선고를 하던 정 재판장의 모습. (오른쪽 끝 흰머리) [법원 기자단 제공]

"예측 어렵다" "모든 판결에 최선" 

정 재판장의 판결 스타일을 두고 전·현직 판사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한 현직 판사는 "모든 재판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판사 출신 변호사는 "정준영 재판부의 판결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변호인들이 상당히 꺼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재판장의 판결이 실제로 대법원에서 뒤집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는 지난 6월 골프채로 아내를 때려 사망케 한 유승현 전 김포시의장에게 1심에서 인정된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8년을 감형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는 판단에 여성계에선 강력하게 항의한 판결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달 김 전 의장의 상해치사죄를 확정하며 정 재판장 재판부의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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