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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박물관 30년 김종규 관장 “책으로 얻은 지식은 영원…디지털에 비할 수 없다”

중앙일보 2020.11.18 14:30
 
1990년 출범한 삼성출판박물관이 개관 30주년을 맞았다. 30주년 특별전이 개막한 17일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 겸 삼성출판사 전 회장이 전시 포스터 앞에서 활짝 웃음짓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90년 출범한 삼성출판박물관이 개관 30주년을 맞았다. 30주년 특별전이 개막한 17일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 겸 삼성출판사 전 회장이 전시 포스터 앞에서 활짝 웃음짓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구기동에 위치한 삼성출판박물관의 개관 30주년 특별전 ‘책으로 걸어온 길’은 건물 입구부터 시작되는 분위기다. 층계 벽면을 가득 메운 신문 스크랩 액자와 기념사진, 연보 등이 국내 유일 출판박물관으로 1990년 개관해 한국 출판문화의 산 증인으로 기여해온 역사를 일러준다.

삼성출판사 전집 잇단 성공, 고서 수집 몰두
10만여 점 소장, 첫 출판박물관 90년 열어
30주년 특별전 이인직 『은세계』등 선봬
"대중문화 강국 뿌리도 출판·인쇄문화"

 
5층 전시장에 이르자 이어령 당시 문화부 장관 등이 붓글씨로 남긴 개관 방명록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17일 특별전 개막일에 만난 김종규(81) 삼성출판박물관장 겸 삼성출판사 전 회장은 “설립 준비를 하던 차에 초대 문화부 장관에 취임한 이어령 선생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려면 2000년대까지 박물관 1000개는 돼야 하고 출판박물관은 필수’라고 재촉해 그해 부랴부랴 열었다”면서 웃음 띤 얼굴로 돌아봤다. 당시 당산동 사옥에 이 장관이 기념식수한 닥나무는 구기동에 옮겨와서도 무럭무럭 자라 건물 높이로 치솟았다.
 
‘책으로 걸어온 길’은 출판박물관 30년 뿐 아니라 김 관장의 일생을 요약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박물관을 설립하려면 안목과 사명감 뿐 아니라 재력이 받쳐줘야 하는데, 형님(김봉규·89)이 세운 삼성출판사가 전집으로 잘 나갔다. 나는 사장으로 일하면서 받는 월급에 여윳돈만 있으면 책 사는 데 썼다.” 
1990년 6월 29일 국내 최초의 출판박물관으로 출범한 삼성출판박물관의 개관식 모습. 왼쪽부터 김종규 관장, 소설가 김동리, 김봉규 삼성출판사 회장, 이어령 문화부 장관, 정한모 전 문화공보부 장관, 시인 구상(직책은 당시 기준). [사진 삼성출판박물관]

1990년 6월 29일 국내 최초의 출판박물관으로 출범한 삼성출판박물관의 개관식 모습. 왼쪽부터 김종규 관장, 소설가 김동리, 김봉규 삼성출판사 회장, 이어령 문화부 장관, 정한모 전 문화공보부 장관, 시인 구상(직책은 당시 기준). [사진 삼성출판박물관]

1995년 5월 3일 삼성출판박물관의 '광복전후 50년 자료 특별기획전' 개막식 모습. (왼쪽부터 이홍구 국무총리, 강원용 목사, 주돈식 문화체육부 장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신영균 배우, 김종규 관장(직책은 당시 기준). [사진 삼성출판박물관]

1995년 5월 3일 삼성출판박물관의 '광복전후 50년 자료 특별기획전' 개막식 모습. (왼쪽부터 이홍구 국무총리, 강원용 목사, 주돈식 문화체육부 장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신영균 배우, 김종규 관장(직책은 당시 기준). [사진 삼성출판박물관]

 
1960~70년대 한국은 경제성장과 함께 아파트 등 서양식 주택이 보급되고 고등교육이 늘면서 전집류 장서가 붐을 이뤘다. 정음사‧을유문화사 등에 비해 후발주자였던 삼성출판사는 일본어 중역이 아닌 외국어 원역에 승부를 걸었다. 팽창하는 ‘지식 수요’를 간파한 투자가 적중해 100권짜리 『세계문학전집』, 36권짜리  『세계사상전집』 등이 잇따라 성공했다. 내로라하는 한국 지식인 중에 삼성출판사 전집을 “대학 공부하듯 읽었다”는 이가 적지 않다. “80년대엔 60권짜리 『한국문학전집』을 해외 교민들에도 많이 팔았다. 정착하고 자식 키울 때 되니까 한국을 되새기고 싶었는지 눈물을 글썽거리며 사더라.”
 
이날 언론사 기자에게 처음 공개한다는 건물 3층 수장고는 “어림잡아 10만점”이라는 그의 말대로 각종 전적‧도록‧병풍‧액자 등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소장품 중 『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월인석보』 등 국보·보물이 9점에 이른다. 13세기 전에 금속활자 인쇄가 실시됐음을 입증하는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보물 758-1호)는 외국 출판관계자에게 “우리가 금속활자 종주국으로서 출판‧인쇄 문화가 1300년이 넘는다”고 자랑하는 증거품이기도 하다. “개관 이래 26차례 기획전을 했는데, 모두 박물관 소장품으로 했다. 아직 분류하고 끄집어내야 할 ‘보물’이 많다.”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이 17일 박물관 수장고에서 미소 짓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이 17일 박물관 수장고에서 미소 짓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번 특별전은 그간 박물관이 연 전시들을 집대성하고 요약하는 성격도 띤다. ‘교과서 특별기획전’ ‘한국 신문학 특별기획전’ ‘한국 여성문화자료 특별기획전’ ‘저자 서명본전’ 우리 책의 표지화와 삽화’ ‘금서(禁書) 특별전’ 등 당대 출판문화의 이정표를 제시했던 전시의 핵심만 추렸다. 이인직의 『은세계』(1908),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 등의 초판본이 실물로 선보인다. 배우 최불암‧김혜자, 전 문화재청창 유홍준 등의 친필 서명본도 별도 코너로 꾸며서 책을 둘러싼 문화를 되새기게 했다.
 
고서·출판에 대한 관심은 여덟살 터울의 형이 전남 목포에서 서점을 한 데서 비롯됐다. 형이 창립한 삼성출판사에서 부산지사장을 맡은 1964년부터 10년간 본격적으로 수집했다. “6·25 때 피란 오면서 가보 챙겨온 사람들이 많았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그랬듯이 귀한 물건 살 때마다 부르는 값에 더 얹어주니 고서적상들이 내게 줄을 섰다. 요즘도 책 욕심이 끊이질 않으니 죽을 때까지 사들일 것 같다”며 웃었다.
 
삼성출판박물관 개관 30주년 전시에 선보이는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 [사진 삼성출판박물관]

삼성출판박물관 개관 30주년 전시에 선보이는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 [사진 삼성출판박물관]

삼성출판박물관 개관 30주년 전시에 선보이는 이인직의 『은세계』(1908). [사진 삼성출판박물관]

삼성출판박물관 개관 30주년 전시에 선보이는 이인직의 『은세계』(1908). [사진 삼성출판박물관]

그는 “구십 인생에서 30년은 공부ㆍ준비하고, 30년은 생업에 바치고, 30년은 사회에 기여하며 살아야 한다”는 지론으로 살아왔다. 쉰살에 설립한 출판박물관은 본격적인 사회 기여의 첫걸음이었다. 1999년부터 8년간 한국박물관협회 회장(3·4대)을 연임했다. 현재는 회원 기관 1000개를 훌쩍 넘긴 협회의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2004년 서울에서 아시아 최초로 열린 세계박물관대회(ICOM) 공동조직위원장, 2005년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추진위원장을 역임했고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을 맡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지식문화계의 소문난 마당발이자 큰어른으로서 “월급 안 받고 돈 쓰는 자리, 봉사하는 자리”를 마다치 않는 것은 우리 문화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내가 해온 일이 다 문화유산 보전과 선양으로 연결됩니다. 우리 경제가 어느날 갑자기 성장해 강국이 된 게 아니듯, 수천년 문화적 저력이 있어 현재 대중문화도 가능하고 그 뿌리에 출판이 있습니다.”
1972년 10월 삼성출판사에서 펴낸 '문학사상' 창간호. [사진 삼성출판박물관]

1972년 10월 삼성출판사에서 펴낸 '문학사상' 창간호. [사진 삼성출판박물관]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이 17일 박물관 개관 30주년 특별전을 둘러 보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이 17일 박물관 개관 30주년 특별전을 둘러 보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독서문화가 예전 같지 않다는 시각에도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여전히 100만부씩 팔리는 책이 나온다”면서 “전달수단이 다소 바뀌었다 해도 문화 씨앗으로서의 독서의 중요성은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창의성은 지적 호기심과 풍부한 상상력에서 나오는데 디지털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할 순 있어도 상상력은 감퇴시켜요. 책이 가진 물성이 기억을 돕거든요. 앞으로도 출판은 영원하고 출판박물관은 문화씨앗의 보고이자 창고로서 역할할 겁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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