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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떠난 지 3년… 이제야 노래할 수 있게 됐다”

중앙일보 2020.11.18 14:10
9년 만에 정규 2집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를 발매한 가수 조동희. [사진 김용호 작가]

9년 만에 정규 2집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를 발매한 가수 조동희. [사진 김용호 작가]

“우리가 가진 슬픔이란 감정은 아름다움에서 오는 것 같아요.”
2017년 8월 암으로 세상을 떠난 ‘포크계의 대부’ 조동진의 장례식장 한쪽 벽에서는 생전 그의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왔다. 그로부터 두 달 전 스물여섯살 터울의 오빠가 만든 하나음악의 후신인 푸른곰팡이 대표 자리를 맡게 된 조동희(47)는 그해 초 써둔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라는 글귀를 떠올렸다. “20여년 전 오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구나 싶더라고요. 오빠가 하나음악을 설립했을 때가 그 당시 저랑 같은 나이였는데 제겐 너무 버거웠거든요. 이렇게 힘들 땐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다 안고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작업의 첫 성과물이 나왔다. 지난 11일 발매한 정규 2집이다. 2011년 1집 ‘비둘기’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정규 앨범이다.

가수 조동희 9년 만에 정규 2집 발표
암으로 세상 떠난 오빠에게 바치는 노래
조동익·장필순도 함께 활발한 활동 펼쳐
“이 앨범이 마지막이어도 후회없이 해보자
주어진 운명 받아들이고 홀로서기한 기분”

 
최근 서울 누상동 작업실에서 만난 조동희는 “3년이란 시간이 지나니 이제야 한 발짝 이별에서 떨어져서 노래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추모공연 등을 진행했던 그는 지난해 푸른곰팡이를 봉인하고 자신의 레이블 최소우주를 새롭게 꾸렸다. “그동안 슬픔을 달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이 많았어요. 동진 오빠가 떠나고 나서 동익이 오빠도 아팠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제 좀 추스르고 음악으로 다시 얘기할 수 있는 때가 된 것 같아요.” 1984년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함께 어떤날로 데뷔한 조동익(60)은 지난 5월 26년 만의 정규 앨범 ‘푸른 베개’를 선보였고, 이들의 음악적 동반자인 장필순(55)도 지난 3월 리메이크 앨범 ‘수니 리워크’에 이어 이달 초 싱글 ‘소랑’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쪽에서 태어난 계집 싫었지만 인정”

조동희는 ’작사학교에서 만난 김용호 작가님이 앨범 재킷을 찍어주셨다“며 ’디자이너 김나리가 스타일링을 맡고, 미디어예술그룹 프로젝트파니가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영국 기자 출신 작가 다니엘 튜더가 가사 영문 번역을 하는 등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앨범“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용호 작가]

조동희는 ’작사학교에서 만난 김용호 작가님이 앨범 재킷을 찍어주셨다“며 ’디자이너 김나리가 스타일링을 맡고, 미디어예술그룹 프로젝트파니가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영국 기자 출신 작가 다니엘 튜더가 가사 영문 번역을 하는 등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앨범“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용호 작가]

이번 앨범 프로듀싱도 조동익이 맡았다. 어떤날 노래 중 조동희가 가장 좋아했던 ‘초생달’(1989)을 리메이크하고, 장필순과 함께 ‘슬픔은 아름다움의 그림자’ 어쿠스틱 버전을 부르는 등 총 11곡을 채워 넣었다. “동익 오빠랑 본격적으로 같이 작업한 건 처음인데 너무 즐거웠어요. 매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작업했어요. 제가 쓴 가사를 보내면 오빠가 곡을 붙이기도 하고, 제가 만든 멜로디를 수정해주기도 하면서. 사람 일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오늘이 마지막이어도, 이 앨범이 마지막이 되더라도 후회 없이 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죠. 제가 ‘사슴꿈’을 꾼 이야기를 하면서 동화책을 읽다 깜빡 잠들었을 때 꾼 꿈 같았다고 하니까 오빠가 이번 앨범은 모호·몽환·청순으로 가자고 하더라고요. ‘모몽청’을 잊지 말라면서.”
 
덕분에 조동진을 향한 헌시도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꽃잎이 훨훨 떠나는 걸 봤지만 달빛은 혼자 빛나지 못해요”라며 그의 부재를 인정하고 “내 마음에 그대의 웃음을 담아요 난 이미 행복한 사람이니까”라고 승화하는 식이다. 동녁 동(東)에 계집 희(姬)를 쓰는 그가 좋아하지 않던 이름을 노래한 ‘동쪽여자’도 그 일환이다. 영화 ‘황진이’(1957) 등을 만든 조긍하(1919~1981) 감독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조동희는 “동쪽에서 태어나 동쪽 계집이라니 참 심플하죠. 아마 남은 이름도 별로 없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제 인생, 운명, 환경 등 모든 걸 받아들였다는 뜻이에요. 그동안 제가 선택했다기보다는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부정하진 않았지만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이거든요. 그래서 이 앨범으로 저를 한번 씻어낸 기분이에요.”
 

“상처 토대로 노래 만드는 모습 보며 치유”

2017년 9월 열린 조동진 추모공연. [사진 푸른곰팡이]

2017년 9월 열린 조동진 추모공연. [사진 푸른곰팡이]

지난해 6월 시작한 작사학교 ‘작사의 시대’도 상처가 아무는 데 도움이 됐다.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1997) 등 연약하지만 강한 가사를 쓰는 작사가로 정평이 난 그는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가르치기가 어려워서 소규모 수업을 만들었는데 저마다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치유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중에 치매 병동 같은 데서 봉사활동도 해보고 싶어요. 깜빡깜빡하는 기억을 붙잡아서 노래로 만들면 그 가족들에게도 추억이 되지 않을까요.” 김정민 1집 수록곡 ‘지난날 그대로’(1993)를 시작으로 100여곡을 쓴 그는 “20대 때는 고액 알바하며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댄스곡, 심지어는 힙합 가사도 썼는데 이제는 조금 힘들 것 같다”고 덧붙였다.
 
‘완벽하진 않지만 완전한 하나의 우주’를 꿈꾸며 최소우주를 시작한 그는 스카 밴드 사우스 카니발, 클래식 기타리스트 드니 성호, 신인 뮤지션 한상우 등을 영입해 프로듀서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하나음악은 포크, 푸른곰팡이는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이 주축을 이뤘는데 최소우주는 장르도 다양하고 독립적인 친구들이에요. 혼자 할 수 있지만 서로 돕는 작가주의라고 해야 할까.” 그는 작사가로 데뷔한 지 18년 만에 1집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조동진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해라. 끝까지 하면 너의 길이 생긴다”는 말 덕분에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며 자신도 그런 동반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오빠들만 못하다, 오빠들처럼 해 보라는 말을 일평생 듣고 살았는데 이번 앨범에서 비로소 독립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조동희는 큰 나무 아래서 시들지 않고 작은 나무를 심었다’는 평을 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이제 같이 햇볕을 쬐고 있는 기분이에요.”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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