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은 한진칼 ‘경영관리’ 착수…직원들 “결국 구조조정 올 것”

중앙일보 2020.11.18 00:04 경제 1면 지면보기
지난 16일 김포국제공항 계류장에서 대한항공 여객기 앞으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이동하고 있다. 두 항공사는 취항 중인 국제선 노선 중 48개가 겹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시스]

지난 16일 김포국제공항 계류장에서 대한항공 여객기 앞으로 아시아나항공 여객기가 이동하고 있다. 두 항공사는 취항 중인 국제선 노선 중 48개가 겹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시스]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이 시작됐다. 단일 국적 항공사 출범이 본격화하면서 인력 구조조정을 우려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내부 직원의 동요도 거세지고 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인수절차 시작
산은, 사외이사 3명·감사 지명키로
합의사항 어기면 위약금 5000억

양사 국제노선 115개 중 48개 중복
“직원 70% 휴직중인데 어떻게 될지”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은 17일 아시아나항공 주 채권단인 KDB산업은행과 투자합의서를 체결했다. 합의서는 산은이 한진칼을 사실상 경영관리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업은행이 한진칼의 경영을 감시·통제하고, 이를 어길 경우 한진칼은 5000억원의 위약금과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특히 합의서에 명시된 의무 조항은 ▶산은이 지명하는 한진칼 사외이사 3인과 감사위원회 위원을 선임 ▶윤리경영위원회 설치와 운영 책임 ▶경영평가위원회에 대한 협조와 대한항공 경영 감독 ▶인수합병 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통합관리 방안 계획 수립과 이행 ▶대한항공 주식에 대한 담보 제공과 처분 제한 등이다. 결국 산은이 한진칼 경영에 깊숙이 개입한다는 의미여서 향후 한진칼 경영 부실시 산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보유한 한진칼 주식(보통주 6.54%, 우선주 0.53%)을 산은에 담보로 제공하는 내용도 합의서에 포함됐다. 익명을 요청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조 회장의 주식 전체를 담보로 제공하는 것은 주요 확약 조건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안전장치 차원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름다운 사람들’ 34년만에 역사 속으로
 
대한항공은 내년 초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자회사로 운영한 뒤 1~2년 내 흡수 통합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이르면 2022년부터 아시아나항공의 이름은 창립 3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인수 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두 항공사는 극도로 뒤숭숭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국제선 여객노선 현황

국제선 여객노선 현황

관련기사

양사 직원들은 특히 대규모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산은 모두 공개적으론 인위적인 구조조정에 선을 긋고 있지만, 통합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노선과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양사의 국제선 여객 노선은 총 115개다. 이 가운데 대한항공만 들어가는 노선이 53개, 아시아나만 취항한 노선이 14개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48개(42%) 노선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같이 취항하고 있어 조정이 불가피하다.
 
강성진 KB증권 애널리스트는 “민간기업인 만큼 구조조정 여부는 주주와 직원의 이해가 다를 수 있다”며 “고용 충격을 막겠다는 국가적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인력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의사결정을 한 것은 앞으로 지켜봐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 초상집, 대한항공도 뒤숭숭  
 
인수 대상인 아시아나항공은 초상집 분위기다. 익명을 요청한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산은이 한진가에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란 확약을 받았다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두 항공사 모두 직원 70%가량이 휴직 중”이라며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 조건에 따른 고용 유지 의무가 끝나는 내년 4월이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의 한 승무원은 “(노선·인력 중복 가능성이 있는) 동종 업계의 인수만은 제발 피했으면 좋겠다는 게 직원들의 바람이었다”며 “이제 하루라도 빨리 이직 자리를 알아봐야 한다는 얘기가 사내에 퍼지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대한항공 최대 노조 “인수 공감” vs 조종사·아시아나 노조 “반대”

또 다른 직원은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한다고 할 때만 해도 아시아나 이름은 유지되는 안이 논의됐다”면서 “이름마저 사라지는 회사 구성원의 심정이 어떻겠냐”고 하소연했다.
 
인수 주체인 대한항공도 마냥 잔칫집 분위기는 아니다. 임직원 사이에선 “아시아나항공의 구조조정은 아시아나에서 해결해야 할 일인데, 인수 때문에 대한항공까지 피해를 볼 수는 없다” 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대한항공의 직원 수(1만8000여 명)는 아시아나항공(9000여 명)의 두 배인데 중복된 장거리 노선이 통폐합되고, 포화 상태인 국내선과 단거리 노선 조정이 있으면 대한항공 인력도 구조조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운항 승무원이나 정비사 등은 아시아나항공과 비교해 ‘클래스가 다르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면서 “인수 결정으로 아시아나항공과 같은 레벨이 될 것이고, 이에 따른 희생은 대한항공 직원이 더 클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고 말했다.
 
양대 항공사 합병에 따른 ‘노노(勞勞) 갈등’ 문제도 수면 위로 부상했다.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과 사무직 직원 등이 속한 대한항공 노동조합이 17일 한진그룹의 아시아나 인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문을 내면서다. 대한항공 노조는 조종사를 제외한 모든 직종 근무자 1만 1679명(8월 기준)으로 구성된 대한항공 최대 노조다. 이 노조는 “이번 결정이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운송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존재 가치를 확고히 하기 위한 결정이었음을 공감한다”며 “이번 인수는 항공업 노동자의 고용유지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와 양 회사 경영진은 고용 불안에 떨고 있는 노동자의 고용안정 약속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또 3자연합에 대해 “노동자의 최우선 과제는 채권자와 주주 권익 보호가 아닌 고용안정”이라며 “이를 해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를 비롯해 대한항공 직원연대지부,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 열린조종사노조(아시아나), 아시아나 노조 등 나머지 5개 노조는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반대하면서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요구했다. 이들은 “양사 노동자의 의견이 배제됐다”며 “경영실패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리고 국민 혈세로 해결하려는 정경 야합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