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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오거스타의 비키니 왁스 그린

중앙일보 2020.11.18 00:03 경제 7면 지면보기
우즈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샷 궤적을 지켜보고 있다. 그는 마스터스 최종라운드 파 3인 12번 홀에서 7오버파 10타를 쳤다. [AFP=연합뉴스]

우즈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샷 궤적을 지켜보고 있다. 그는 마스터스 최종라운드 파 3인 12번 홀에서 7오버파 10타를 쳤다. [AFP=연합뉴스]

골프에서 유명한 설화(舌禍) 사건 중 하나는 마스터스를 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의 그린에서 나왔다. 1994년 일이다. 미국 CBS 방송의 해설자인 개리 맥코드는 마스터스 코스 해설 중 “그린이 비키니 왁스한 것처럼 아주 미끄럽다”고 비유했다. 그는 또 “17번 홀 그린을 넘기면 파세이브가 몹시 어렵다. 그대로 뒀다가는 (전사자가 많이 생겨) 그린 옆에 시신 운반용 가방이 쌓일 것 같다”고 표현했다.

너무 빨라 방송 해설자가 붙인 별명
우즈 지난해 천당 올해 지옥 오가
행운·불운이라는 게 간발의 차이

 
선수 출신인 맥코드는 말을 재미있게 한다. 가끔은 선을 넘어 근엄한 오거스타 내셔널의 신경을 건드릴 때도 있지만, 그의 유머를 사람들이 좋아했기 때문에 CBS가 보호해줬다. 그러나 94년 발언은 거물 선수인 톰 왓슨이 “맥코드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방송사에 항의편지를 썼다. 결국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맥코드는 26년이 흐르도록 용서받지 못했고, 마스터스에도 가지 못했다.

 
타이거 우즈(미국)가 16일 열린 마스터스 4라운드 파 3인 12번 홀에서 10타를 쳤다. 그 정도의 대형사고까지는 안 될 수도 있었다. 갑자기 바뀐 바람 방향 때문에 티샷이 물에 빠졌다. 그건 그렇다 쳐도, 세 번째 샷은 그린에 올라 핀 방향으로 갔다. 그러나 백스핀을 먹으면서 개울에 빠졌다. 이후 실수가 이어졌다.

 
우즈는 “골프는 정말 외로운 스포츠다. 야구에서는 투수가 흔들리면 코치가 마운드까지 올라와서 데려간다. 다른 스포츠는 남의 도움을 받는데, 골프는 혼자 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즈는 정말로 누군가 대신 샷 해주길 바랐을 거다. 그만큼 괴로운 거다. 그 시작은 빠른 그린이었다.

 
미국의 명문 프라이빗 클럽은 그린 속도를 코스의 명예로 생각한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1등을 추구한다. 대회 때 오거스타의 그린은 여덟 방향에서 깎는다. 면도를 여러 방향으로 여덟 번 한다고 생각해 보라. ‘비키니 왁스’ 발언이 적절하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던 셈이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TV에 보이는 것보다 실제 그린 경사가 심하다. 최경주는 “폭스바겐 지붕 위에서 퍼트하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그린이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면 우즈의 세 번째 샷은 그린에 멈춰 섰을 거다. 나머지 실수도 빠른 그린, 또는 그에 대한 공포 때문에 생긴 거다.

 
26년 전 맥코드를 끌어내린 톰 왓슨과 우즈는 공통점이 있다. 스탠퍼드 대학을 다녔고, 이름 약자가 TW다. 우즈는 맥코드가 사라진 1995년부터 마스터스에 출전했다. 비키니 왁스 그린에서 5번 우승했다. 맥코드는 마스터스를 뺀 CBS의 다른 골프 방송에서는 계속 일을 했다. 지난해 말 재계약 불가를 통보받았다.

 
아멘코너 한가운데에 있는 12번 홀은 인디언 무덤을 파헤친 자리여서 대형 사고가 많이 터진다는 속설이 있다. 지난해 우즈는 경쟁자인 프란체스코 몰리나리, 브룩스 켑카 등이 이 홀에서 공을 물에 빠뜨린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다. 올해 우즈는 그 홀에서 프로 데뷔 후 자신의 한 홀 최악의 스코어를 냈다. 행운과 불운은, 바람 한 점 또는 그린 속도 약간의 차이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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