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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교수 '삼성피해자 사례 무단인용' 소송 패소

중앙일보 2020.11.17 17:21
서울중앙지법. 뉴스1

서울중앙지법. 뉴스1

 
모 유명 교수가 저서에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사례를 무단으로 인용했다가 당사자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심에 이어 패소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1부(이성철 부장판사)는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A씨(36)가 김모 교수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김 교수 등에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한 원심을 유지하고 김 교수 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A씨와 김 교수 모두 상고하지 않아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A씨는 2003년부터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2년간 근무한 뒤 2008년 희소병인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3년 뒤 직업병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고, 2017년 최종 승소했다. A씨는 소송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 활동이나 언론 인터뷰를 하며 ‘이소정’이라는 가명을 썼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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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된 김 교수의 책은 2017년 출간됐다. 김 교수는 A씨의 소송 과정에서 A씨의 다발성 경화증에 직업적 요인이 크다는 내용의 소견서를 써준 뒤, 저서에 이를 언급하며 ‘다발성경화증에 걸렸던 이소정씨’라는 표현을 썼다.
 
책 내용을 지난해 뒤늦게 확인한 A씨는 김 교수 측에 해당 표현을 삭제·수정해달라고 요청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2019년 4월 김 교수 등을 상대로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과 3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김 교수 측은 법정에서 “‘이소정’은 A씨의 익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가명으로, 독자들은 이를 통해 A씨를 특정하기 어렵다”며 “책에 나온 건 A씨 스스로가 언론과 SNS에 유포한 내용의 일부고, 김 교수는 자기 체험을 기록한 것뿐이다. 또 A씨의 사례는 공익적 목적을 위해 쓰였다”고 주장했다.
 
손해배상 소송 1심은 “9년 가까이 ‘이소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사회적 활동을 한 이상 가명도 원고를 식별하는 표지로서 성명권 보호의 대상이 된다”면서 “원고의 가명과 개인정보가 담긴 사례를 책에 적시하면서 원고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은 원고의 인격권·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및 성명권을 침해한 위법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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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재판부도 “성명권의 보호대상인 성명은 반드시 실명 또는 본명에 국한되지 않고, 성명본인을 지칭하거나 특정하는 명칭이면 모두 포함될 수 있다”며 “원고는 9년 가까이 ‘이소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사회적 활동을 한 이상, 사회 통념상 ‘이소정’이라는 가명도 원고를 식별하거나 특정하는 표지로서 성명권의 보호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들은 원고로부터 어떠한 동의를 받지 않고 이 사건 도서에 원고의 사례를 언급하고 비실명화 조치 없이 원고의 가명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이 사건 표현을 게재했다”며 “표현 내용을 보면 특정인의 질병 등 내밀하고 사적 영역과 관련된 사항으로 일반인의 감수성을 기준으로 해 그 개인의 입장에 섰을 때 공개되기를 바라지 않을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 사건 도서에서 해당 표현을 게재함에 있어 원고의 가명 그대로 인용해야만 하는 필연성을 찾기 어렵고, 원고 스스로 자신의 질병 문제를 공론화한 적이 있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타인이 발간한 도서에 무단으로 게재돼 외부에 공개되는 것은 그와 별개의 행위”라며 “도서의 내용과 발간 목적이 공공의 이해와 직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가 피고들의 불법행위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다”면서도 “원고에 관해 적시된 내용과 분량, 피고들이 사건 도서를 출판한 경위와 판매 부수, 가처분 사건 소송 과정에서 화해를 통해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한 개정판을 출판한 점 등을 고려해 위자료 액수를 500만원으로 정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A씨가 김 교수 등을 상대로 낸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은 1심에서 기각됐다가 지난해 10월 2심에서 양측이 법원 조정안을 받아들이며 책에서 A씨의 사례를 수정하고 책을 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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