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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기증 막혀 냉동난자 택했다" 비혼모 꿈꾸던 이들의 좌절

중앙일보 2020.11.17 16:48
방송인 사유리씨는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출산했다. [사유리씨 인스타그램]

방송인 사유리씨는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출산했다. [사유리씨 인스타그램]

“우리 병원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는 시술하지 않아요.”

17일 한 난임 전문병원에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시험관 시술을 받을 수 있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방송인 사유리(41·후지타 사유리) 씨가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출산하면서 ‘자발적 미혼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선 비혼은 물론 미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할 수 있는 합법적인 통로는 없다. 여성계에서는 이에따라 “국내에서도 자발적 비혼모 및 난자·정자 공여규제 완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난임 부부’만 시술받을 수 있어”

대한산부인과학회 보조생식술 윤리지침.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산부인과학회 보조생식술 윤리지침. 대한산부인과학회

 
우리나라에서 ‘자발적 비혼모’가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정자를 기증받는 행위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생명윤리법(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23조 3항은 난자 또는 정자의 금전적 거래만을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모자보건법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난임 부부’만 인공수정 등 보조생식술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 해당 법 제2조 11항은 사실혼 혹은 법률혼 관계에 있는 부부 중, 1년 동안 자연상태에서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를 난임 부부로 정의한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서 만든 ‘보조생식술 윤리지침’ 역시 “정자 공여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명시했다. 즉, 배우자가 없는 사람은 정자를 기증받더라도 관련 시술을 합법적으로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난자 냉동은 매년 증가 추세”

난임센터 37난자은행의 모습. [중앙포토]

난임센터 37난자은행의 모습. [중앙포토]

 
국내에선 비혼·만혼이 늘면서 출산 대신 난자 냉동을 택하는 여성은 늘고 있다. 사유리 씨도 방송을 통해 자신의 난자를 냉동한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 차병원엔 난자 동결을 택한 여성이 2014년 42명에서 2018년 635명으로 약 15배 증가했다. 
 
지난해 난자를 냉동한 직장인 김진선(31) 씨는 “냉동해둔 난자로 혼자라도 아이를 낳고 싶지만, 관련 복지 제도도 없고 사회적 시선도 무서워 엄두를 못냈다"며 “최근 사유리 씨가 자발적 미혼모를 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러웠다”고 말했다. 현재 영국, 스웨덴, 미국 일부 주에선 배우자 없는 여성도 정자을 기증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비혼 출산 요구 많으면 법도 바뀌어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관련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박남철 부산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이사장)는 “일본은 일부 대형병원에서 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비혼여성에게 정자를 기증하고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도 시대가 변하면서 가족의 형태가 바뀌고 있는 만큼 덴마크 같은 선진국처럼 국가가 유통을 관리하는 정자 은행 도입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2005년 ‘황우석 사태’ 이후 생명윤리법이 강화돼 정자·난자 매매가 아예 금지되면서 오히려 불법적인 거래를 유도하는 브로커들이 생겼다”며 “악용되는 사례가 없도록 난임 부부와 자발적 비혼모를 위한 정자·난자 공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윤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것처럼 법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만약 사유리씨처럼 비혼 상태에서 출산을 원하는 여성들이 많다면 다양한 사회적 논의 및 요구를 통해 법도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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