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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칼럼니스트의 눈] 대통령 길 열어준 바이든의 청년정치

중앙일보 2020.11.17 00:28 종합 22면 지면보기

청년정치

백악관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오른쪽·재임 1977~1981)과 찍은 사진. ‘내 친구 조 바이든의 행운을 기원하며’라는 카터 대통령의 자필이 보인다. [위키피디아]

백악관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오른쪽·재임 1977~1981)과 찍은 사진. ‘내 친구 조 바이든의 행운을 기원하며’라는 카터 대통령의 자필이 보인다. [위키피디아]

조 바이든이 쇼핑몰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는 쇼핑카트를 끌고 가던 한 중년 여인에게 다가가 말한다. “제 이름은 조 바이든입니다. 저는 미국 상원의 민주당 후보입니다. 저를 믿으십니까?” 중년 여인은 바이든을 외계인 바라보듯 하며 말한다. “뭐라고요? 내가 왜 당신을 믿어야 하죠?”
 

결과 따지지 말고 생각 말하라
외할아버지 교훈 따른 바이든
정직?신념의 정치인으로 키워
상원 넘어 대통령까지 올랐다

1972년 바이든이 처음으로 상원의원에 도전했을 때 만든 선거 캠페인 광고의 한 장면이다. 이 라디오 광고에는 앞서의 여성처럼 바이든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수 등장한다. 광고는 바이든의 말로 끝난다.
 
“이것이 오늘 미국의 문제들입니다. 저를 뽑으면 제가 그것들에 어떤 입장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저를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이든 캠프의 선거 기획자는 당초 이 광고를 반대했다. 후보를 믿지 못한다는 목소리만으로 채운 선거 광고를 누가 찬성하겠나. 하지만 바이든은 밀어붙였고, 바이든은 만 29세의 나이로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로 어린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바이든의 그런 결정은 외할아버지의 교훈이었다. 바이든은 자신이 정치를 시작할 때 외할아버지가 이렇게 조언했다고 말했다.
 
“네가 진짜 생각하는 바를 말해, 조이. 결과가 어찌 되든.” (자서전 『조 바이든: 지켜야 할 약속』)
 
그것은 시류에 따라, 그리고 유불리에 따라 자신의 말을 종잇장 뒤집듯 바꾸는 거짓 정치를 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신념을 가지고 소신을 굽히지 않는 진정한 정치인이 되라는 얘기였다.
 
이에 따라 바이든은 출마 발표 연설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유권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는 정상배가 아니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정직하게 말해줄 정치가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 정치인만이 유권자들을 오도하지 않고 바른길로 이끄는 참된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런 생각이 바로 ‘청년 정치’의 출발점이다. 이런 확고한 신념으로 정치에 입문했기에 50년이 넘는 정치 역정을 걸을 수 있었고, 끝내 미국 대통령이란 자리에 오를 기회가 주어졌다. 사적 영역에서 부와 명성을 얻은 뒤 정치권력을 자신의 성공에 대한 보상 정도로 여기며 정치에 입문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바이든은 일찌감치 정치에 뜻을 품었다. 27세에 변호사로서 사회에 발을 디딘 바이든은 졸업 직후 델라웨어주에서 가장 큰 로펌에 취업했다. 거기서 그는 산재를 당한 용접공이 제소한 회사를 대리했는데, 원고는 장애인이 되는 영구 손상을 입었지만 아무 보상을 받지 못했다.
 
충격을 받은 바이든은 로펌을 그만두고 국선 변호인이 됐다. 하지만 국선변호인 수입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별수 없이 다시 로펌에 들어간 뒤 그는 민주당의 한 개혁 포럼에 참여한다.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변호사 일 이상의 무엇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그곳에서 그는 뉴캐슬 카운티 의회 출마 제안을 받는다.
 
당시 그는 정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우리로 따지면 군의원쯤 해당하는 카운티 의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카운티 의회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뉴캐슬 카운티는 공화당원이 60%에 달하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그는 출마를 결심한다. 1970년 11월 선거에서 민주당은 델라웨어주에서 완패했지만, 바이든은 2000표 차이로 카운티 의원에 당선됐다. 외할아버지의 교훈을 지킨 바이든을 유권자들이 알아본 것이었다.
 
카운티 의회 경력이 고작 1년인 29세의 정치 신인은 이듬해 열릴 상원 선거에 출마를 제안받는다. 그의 출마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그를 인정해서가 아니었다. 현직 공화당 상원의원인 보그스가 1946년 이후 델러웨어주에서 패배한 적이 없는 막강한 상대였기 때문에 누구도 출마할 엄두를 내지 못한 까닭이었다. 바이든은 등을 떼밀리다시피 해 상원에 출마한 것이다.
 
사실상 패전 처리용이었던 바이든은 그러나 3000표 차로 보그스를 이기는 이변을 일으킨다. 그것은 이미 말한 대로 그가 외할아버지의 교훈을 실천한 덕분이었다. 바이든이 어려운 선거운동을 할 때 기계기술자노조위원장이 워싱턴으로 그를 불렀다. 위원장 사무실 탁자 위에 5000달러짜리 수표를 올려놓고 노조위원장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가정을 하나 해볼까. 당신은 상원의원이고 록히드 긴급구제안이 다음 회기에 재상정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투표할 건가?” 바이든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특정 사안에 내가 어떻게 투표하기를 바라는 게 있다면 그 수표는 다시 집어넣으시오.” 그리고는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바이든은 그와 비슷한 제안을 숱하게 받았지만,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는 것은 모두 거부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바이든의 후원자가 됐다. 그의 원칙과 신념이 그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바이든의 확고한 신념이 반대자들의 기부를 끌어내는 촌극도 빚어졌다. 바이든이 국도를 우회해 고속도로를 확장하는 것을 막는 법안을 도입한 데 분노하던 건설업자들이 바이든 캠프에 후원금을 냈다. 캠프 측이 이유를 묻자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가 뉴캐슬 카운티를 떠나게 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거요.”
 
정치에 관심이 있는 젊은이라면 새겨들을 만한 대목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라.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그것이 정치(행위)의 첫걸음인 것이다. 
 
바이든도 겪었던 청년정치의 벽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인 류호정(28) 정의당 의원은 초기 우려와는 달리 취임 6개월 만에 ‘여의도 스타’로 떠올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 거부와 기업 간부의 국회 부정출입 폭로, 비정규직 노동자 차림으로 국정감사, 국회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1인 시위 등 존재감을 확고히 드러냈다.
 
하지만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국회 본회의장에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을 때였다. “예의가 없다” “국회 복장이 따로 있나” 하는 지엽적 논란으로 난리가 났다. 나이 어린 여성 의원의 불가피한(?) 통과의례였다.
 
이런 논란은 미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당 초선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사진)는 2018년 중간선거에서 당선될 때 29세로 역대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이었다.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가정 출신에 웨이트리스와 바텐더라는 직업으로 주목을 끌었다. 그가 얼마 전 잡지 베니티페어 표지모델로 나왔을 때 공화당과 보수 진영에서 그가 입은 옷에 시비를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공격하는 동안 수천 달러짜리 옷을 입었다”는 거였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이에 “내가 빌린 옷이 아주 잘 어울려서 공화당원들이 매우 화가 나 있다”며 “화보 촬영을 해봤는지 모르지만 이 옷들을 집에 가져갈 수는 없다”고 재치 넘치는 반격을 했다.
 
요즘도 그러니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상원의원 선서 자격인 30세를 겨우 채워 입성한 70년대는 오죽 했겠나. 그가 상원의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가 속한 외교위원회에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출석해 외교전략을 설명하는 자리가 있었다. 바이든은 여기에서 브리핑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바이든이 바깥문을 들어설 때 무장한 경관이 그의 어깨를 잡고 얼굴을 벽에 밀어붙였다. “이 녀석아,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들어오는 거야?” 바이든의 앳된 얼굴이 상원의원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바이든이  겨우 신분증을 꺼내 보이자 경관은 굽실거리며 사과했다.
 
이어 위원회 사무실로 들어서자 이번에 키신저가 말했다. “위원장님, 직원들은 출입이 안 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만….” 보좌관이 “바이든, 델라웨어”라고 급히 쓴 쪽지를 보여주자 키신저는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비-덴 의원님.” 이름조차 몰랐던 것이다. 바이든은 유머로 갚았다. “괜찮습니다. 덜레스 장관님.”
 
정도는 분명 덜해졌지만 여전히 나이와 격식을 따지는 이런 관행이, 주눅 들지 않고 활력 넘치는 젊은 정치가 더욱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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