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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퇴원 지시에 중병이면 책임지겠냐는 감기 환자

중앙일보 2020.11.16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58)

열이 나고 몸을 잘 못 가누는데 단순 감기라니. "큰 병이 아닌 게 확실하냐? 책임질 수 있는 거냐?" 물었더니, 정곡을 찔렸는지 의사가 흠칫했다. [사진 pixabay]

열이 나고 몸을 잘 못 가누는데 단순 감기라니. "큰 병이 아닌 게 확실하냐? 책임질 수 있는 거냐?" 물었더니, 정곡을 찔렸는지 의사가 흠칫했다. [사진 pixabay]

 
의사는 피검사와 엑스레이에 큰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 왜 열이 나냐고 물었더니 감기 같다고 했다. 몸을 잘 못 가누는데 단순 감기라니. 큰 병이 아닌 게 확실하냐? 책임질 수 있는 거냐? 물었더니, 정곡을 찔렸는지 의사가 흠칫했다. 그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정밀검사인 CT를 찍어봅시다.” 앞뒤가 맞지 않았다. 감기에 비싼 CT 검사가 굳이 필요하냐고 반문하자, 의사는 CT를 찍지 않을 거면 그만 퇴원하라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꾹 눌러 담았던 화가 다시 치솟았다. 지금까지 검사한다고 6시간을 기다리게 해놓고도, 의사는 아내의 정확한 병명조차 대답하지 못했다. 피검사에 엑스레이에 온갖 검사로도 부족해 심지어 CT까지 찍자고 했다. CT가 왜 필요한지 얘기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그들 머릿속은 각종 검사로 돈 벌 궁리만으로 온통 가득 차 있는 게 틀림없다.
 
“당신들 지금까지 환자한테 해준 게 뭐요? 6시간 동안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방치한 주제에, 인제 와서 뭐 그만 가라?”
 
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내를 부축해 집으로 돌아왔다. 명세서에는 20만 원 넘는 병원비가 찍혀 나왔다. 6시간 동안 방치돼 온갖 수모를 겪은 비용이었다. 사람들이 의사를 욕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거 같았다. 나는 밤새 물수건을 갈아주며 아내를 정성으로 돌보았다. 덕분에 동이 틀 때쯤에는 한결 병이 나아졌다. 그대로 응급실에 있었다면 아마 지금도 방치되어 시름시름 앓고만 있었을 터였다.
 
아내에게 먹일 죽을 끓이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병에 걸리는 것도 인간이고 병을 이기는 것도 인간이다. 정성이 빠진 치료로는 누구도 고칠 수 없다. 병원 응급실이 저런 곳인지 알았다면 나는 결코 의사를 찾지 않았을 것이다. 20만 원을 버려가며 내가 얻은 교훈이다. 다시는 응급실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곳은 지옥이다. 흰옷을 입은 하이에나로 가득 찬.
환자에게 정 걱정되면 정밀검사를 더 해보겠냐 물었더니 돈만 밝히는 수전노 취급하기 시작했다. 억울했다. 나는 월급 받는 전공의고 환자가 검사 많이 한다고 내게 떨어지는 수당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사진 pixnio]

환자에게 정 걱정되면 정밀검사를 더 해보겠냐 물었더니 돈만 밝히는 수전노 취급하기 시작했다. 억울했다. 나는 월급 받는 전공의고 환자가 검사 많이 한다고 내게 떨어지는 수당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사진 pixnio]

 
응급실에서 끊어질 듯 팽팽한 긴장감은 꼭 중환자에만 있는 게 아니다. 경환자와 지루한 신경전 또한 적지 않은 긴장감을 가져다준다. 환자와의 실랑이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는 돈도 많이 들고 오래 걸리니 제발 작은 병원으로 가세요.” 흡사 시장통에서나 일어날 거 같은 흥정의 현장이다.
 
나는 응급의학과 의사다. ‘바이탈과’, ‘기피과’라는 낙인을 달고 산다. 중증환자, 응급환자를 맡겠다는 일념으로 이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정작 내 앞에 선 환자는 태반이 경환자다. 가끔은 내가 응급실에서 일하는지 조그만 의원에서 일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숨이 꼴딱 넘어가는 환자를 움켜쥐는데 젊음을 바치겠노라’ 했던 한때의 꿈이 무색할 지경이다.
 
오늘도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환자는 심장마비도 아니고 중증외상도 아니고 감기 환자다. 원래 죽어가는 환자는 말이 없고, 대신 살만한 경증 환자가 시끄러운 법이다. 아니나 다를까 감기 환자는 자꾸 소란을 피웠다. 침대를 배정해달라느니 입원을 시켜달라느니. 돌아가며 시달리는 의료진 모습을 보자니, 괜히 이 모든 게 저 환자를 보내지 못한 내 잘못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까놓고 말해 우리는 감기 환자를 돌아볼 여유 따윈 없었다. 끼니도 아직 해결 못 했으니 그 바쁨이 오죽했으랴. 하지만 환자는 그게 무던히도 억울했던 모양이다. 알음알음 높으신 분에게 청탁을 넣었으니. 교수는 어디선가 전화 한 통을 받더니 책상을 쾅 내리치며 지시했다. 저 환자 꼴도 보기 싫으니 빨리 퇴원시켜 눈에 안 띄게 하라고. 중환자 안 봐도 좋으니 저 감기 환자부터 치우라고.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었다.
 
부리나케 환자에게 달려가 퇴원을 지시했다. 뻔히 예상했던 대로 검사 결과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단순 감기 같으니 집에 가서 푹 쉬면 좋아질 거라고 설명했더니, 보호자는 중병이 아닌 게 확실하냐고, 상태가 나빠지면 책임질 거냐고 물었다.
 
오늘도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환자는 심장마비도 아니고 중증외상도 아니고 감기 환자다. 원래 죽어가는 환자는 말이 없고, 대신 살만한 경증 환자가 시끄러운 법이다. [사진 pixabay]

오늘도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환자는 심장마비도 아니고 중증외상도 아니고 감기 환자다. 원래 죽어가는 환자는 말이 없고, 대신 살만한 경증 환자가 시끄러운 법이다. [사진 pixabay]

 

의사가 무슨 생명보험이라도 되는 건가? 왜 내게 책임을 운운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세상일이 어찌 될지 누가 안다고. 책임이란 단어가 주는 무게를 굳이 떠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얼른 한발 물러섰다. 정 걱정되면 정밀검사를 더 해보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제는 나를 숫제 돈만 밝히는 수전노 취급하기 시작했다. 억울했다. 나는 월급 받는 전공의고 환자가 검사 많이 한다고 내게 떨어지는 수당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때였다. 응급실 문이 열리고 입술이 파래진 환자가 들것에 실려 왔다. 환자가 내 뒤를 지나치는 순간 끊어질 듯 헐떡이는 숨소리가 빠르게 귀속을 파고들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감기 환자를 향해 호기 좋게 내뱉었다. “당신들 죽으면 내가 책임질 테니 인제 그만 퇴원하라고.” 내 이름 적어 가라고 명찰을 들어 보였다. 어차피 감기쯤이야 약도 다 들어갔으니 오늘 밤 자고 나면 한결 좋아질 테지. 아니면?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이 일도 때려치우면 그만이다. 명색이 의사인데 응급실 아니더라도 설마 어디 선들 밥벌이야 못 할쏘냐. 그러니 고민하지 말지어다.
 
그래! 지금 내 발길이 닿아야 할 곳은 저쪽이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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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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