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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외부서 채워진 임원...요즘 기업 송년회도 못잡는다

중앙일보 2020.11.16 05:00
 5대 그룹 임원인 김성호(53ㆍ가명) 상무는 오는 12월 송년회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가 속한 그룹은 이달 말쯤 임원 인사를 낼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집에 갈지’, ‘한 해 더 버틸지’ 하루하루가 가시밭길이다. 그가 몸담은 부서에는 임원 승진 대상인 고참 부장급 직원이 2명이나 있다. 예년 같으면 그들의 승진을 위해 열심히 뛰었을 터였다. 하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실적이 크게 악화하면서 후배들을 위해 뛰는 ‘사내 정치’ 활동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어설프게 남을 위해 뛰다가 ‘설레발’로 찍히면 김 상무 본인의 자리까지 위험해질 터였다. 김 상무는 15일 “일단 이달 말 임원 인사 결과를 보고 나서 송년회 일정을 잡든지 말든지 해야 할 것 같다”며 “그룹 내 임원 총수를 줄인다는 소문이 있어서 새로 임원이 되는 숫자도 줄어들 뿐 아니라, 기존 임원도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라며 한숨지었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대기업 빌딩들. [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대기업 빌딩들. [연합뉴스]

인사 빨라지고, 대표 젊어졌다 

[기업딥톡 43회] 코로나19 긴장감 높아진 연말

코로나19의 여파로 주요 기업 실적이 악화하면서 인사철을 앞두고 임원들이 떨고 있다. 임원 승진을 앞둔 고참 부장급 직원은 물론, 그 밑의 과·차장급 직원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많은 기업이 임원 숫자를 줄이는 것은 물론, 공격적으로 외부 인재를 영입해 2021년을 위한 전열을 빠르게 다듬고 있어서다.  
 
최근 임원 인사를 낸 GS그룹의 경우 창사 이래 최초로 부사장 2명과 전무 1명을 외부로부터 수혈했다. GS그룹이 부사장급을 외부에서 영입한 건 창사 이래 처음이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인사에서 이마트 부문의 임원 수를 10명가량 줄였다. 실적 악화로 고전 중인 롯데쇼핑도 임원 수를 줄일 전망이다. 
 
물론 예외인 기업도 있다. 코로나19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좋은 실적을 낸 삼성전자 관계자는 “인사 시기는 예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로썬 과거와 비슷한 스케줄로 임원 인사 준비를 위한 밑 작업을 시작하는 단계”라고 전했다.  
  
나이 많은 임원은 좌불안석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임원은 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최근 인사를 내고 51세인 김승환 현 그룹 인사조직실장(전무)을 대표이사로 승진 내정했다. 전임 대표이사보다 14세나 젊다. 온ㆍ오프 유통경쟁력 강화를 위해 뛰고 있는 롯데쇼핑 역시 과거보다 젊어진 임원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한 예로 롯데 유통BU는 지난달 데이터 거버넌스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고 TF 장으로 롯데정보통신의 윤영선(46) 상무를 임명했다. 롯데쇼핑의 경우 기존엔 상무 직급 임원은 대체로 50대 초·중반, 상무보는 50대 전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직원들 "송년회는 언감생심"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출근 중인 직장인들. [연합뉴스]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출근 중인 직장인들. [연합뉴스]

임원들이 불안에 떨면서 일반 직원들 역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송년회도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SK그룹의 한 부장급 직원은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될 경우 동선이 상당 부분 공개되는 등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저녁 술자리를 했다가 ‘개념 없는’ 직원으로 찍히느니 송년회를 하지 않거나, 아주 친한 일부만 단출하게 모이는 쪽으로 간소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실제 임원급이 대거 코로나19에 감염된 한 금융기업의 경우 직원들에게 골프ㆍ술자리 금지령을 내렸다. 주한외국기업연합회(KOFA)가 회원사를 대상으로 회사 송년회를 할지를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50%가 “송년회를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인사관리 패러다임 달라졌다" 

코로나19로 인한 실적 악화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빨라진 임원 인사, 임원의 외부 영입 등이 크게 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인력자원(HR) 관리가 필요하단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구인ㆍ구직 플랫폼인 사람인이 기업 309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75.1%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응을 위한 HR 관리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익명을 원한 5대 그룹의 인사담당 임원은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한 HR 방식의 변화라는 게 결국 외부 환경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애자일(Agileㆍ민첩한)’ 조직을 구축하자는 얘기인데, 이는 결국 기존과 같은 대규모 고용 수준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임원 수 다이어트와 젊은 인재의 공격적 영입은 당분간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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