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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의 시선] 누구를 위한 분양가 상한제인가

중앙일보 2020.11.16 00:19 종합 30면 지면보기
주정완 경제에디터

주정완 경제에디터

여기 희한한 ‘복권’이 있다. 일반적인 복권과 달리 참가자들의 당첨 기회는 전혀 평등하지 않다. 혼자 사는 사람은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는 게 낫다. 결혼한 부부라도 자녀가 없으면 헛된 희망을 갖지 않는 게 좋다. 가족 수에 따라 당첨 가능성이 좌우되는 특이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적어도 4인 가족은 돼야 희미한 희망이라도 가져볼 수 있다. 만일 본인을 포함한 가족 수가 일곱 명이라면 축하한다. 만점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가족이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과천·하남 분양에 청약자 70만 명
당첨자 최대 10억 차익 ‘승자독식’
청년 세대 1~2인 가구 ‘희망 고문’
“좋은 의도, 나쁜 결과” 실패 반복

흔히 ‘로또 분양’으로 부르는 아파트 분양시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달 초 청약을 받은 경기도 과천 지식정보타운의 아파트 단지 세 곳에는 57만 명이 몰렸다. 비슷한 시기 경기도 하남시 감일지구 아파트 단지에서도 14만 명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양쪽을 합치면 70만 명이 넘는다. 중복 청약자를 포함한 수치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엄청난 인파다. 청약 열풍을 넘어 광풍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온라인으로 신청을 받았기에 망정이지 오프라인 접수였다면 큰 난리가 날 뻔했다.
 
‘바늘구멍’을 뚫은 극소수에겐 많게는 10억원의 시세차익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대다수 탈락자에겐 ‘국물’도 없다. 전형적인 승자독식의 게임이다. 합격을 위한 최저 점수(청약가점)는 69점이었다. 무주택 기간과 청약통장 가입 기간을 최대(15년 이상)로 채웠더라도 가족 수가 네 명 이상이어야 가능한 점수다. 대학 수학능력시험처럼 열심히 공부하면 내년에 다시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니다. 높은 청약 커트라인을 통과하려면 무조건 가족 수가 많아야 한다. 없는 가족을 어디서 갑자기 데려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말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것”인지 묻고 싶다.
 
원래부터 아파트 청약이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지금 같은 광풍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울 강남 한복판이라고 할 수 있는 서초구 방배동에선 36점짜리 당첨자가 나왔다. 1~2인 가구라도 착실히 준비한다면 충분히 희망을 가져볼 수 있었다. 서울 강북권에선 10점대(광진구 화양동)의 분양 단지도 있었다.
 
그런데 현 정부의 ‘헛발질’이 나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꺼내 든 분양가 상한제였다. 분양가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게 정부가 틀어쥐는 ‘극약 처방’이었다. 그 결과가 현재와 같은 로또 분양이다. 얼핏 분양가가 싸지면 좋을 것처럼 보인다. 정말 이렇게 생각했다면 수요와 공급의 기본 원리도 모르는 것이다. 분양가가 싸질수록 청약 경쟁은 치열해지고 극소수 당첨자가 가져가는 시세차익은 많아진다. 반면 새 아파트 공급은 줄고 기회의 문이 좁아지면서 대다수 탈락자의 상실감은 커진다.
 
사실 노무현 정부 때도 분양가 문제는 고민거리였다. 그때는 그래도 정책 당국자들이 상식을 갖고 있었다. 당시 김진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그랬다. 그는 2003년 10월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분양가 규제는 정부 내에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주택공급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고 과거 경험으로 봤을 때 여러 부작용이 있어 이번 종합대책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민간 아파트에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한 것은 노무현 정부 임기 막판인 2007년 9월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학습효과’ 때문인가. 현 정부는 사회적 논란이 큰 부동산 규제를 도입할 때마다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해 8월 분양가 상한제의 입법예고에서 시행령 개정까지는 두 달여 밖에 걸리지 않았다. 입법예고 기간에는 분양가 상한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하지만 정부는 제대로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분양가 상한제의 도입 후 1년이 지났다. 분양가를 통제하는 이유가 부동산 시장의 안정이었다면 명백히 실패한 정책이다. 분양가 상한제와 관계없이 집값과 전셋값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오죽하면 여당 소속 이재명 경기지사가 분양가 상한제의 비판에 앞장을 섰을까. 이 지사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분양을 받으면 입주하는 순간 수억 원을 벌게 되는 등 분양 광풍이 일게 된다. 분양가 상한제는 처음에는 좋은 의도였으나 지금은 나쁜 제도”라고 꼬집었다.
 
잘못된 길을 갔다면 돌아 나올 줄도 알아야 한다. 분양가만 싸지면 뭐하겠나. 그 값으로는 분양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극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에게만 막대한 시세차익을 몰아줄 이유가 없다. 차라리 분양가가 다소 오르더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게 낫다.
 
주정완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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