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경제 30% 엮는 RCEP…일본과 첫 FTA, 인도는 불참

중앙일보 2020.11.16 00:02 종합 4면 지면보기
세계경제의 30%를 아우르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지대가 출범한다.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와 아세안 10개국(베트남·태국·싱가포르·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이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다.

협상 8년만에 결실, 의회 비준 남아
자동차·철강 등 관세 단계적 철폐
수입 열대과일·맥주 가격 싸질 듯
쌀·마늘·양파 등 민감 농산물 제외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화상으로 진행된 RCEP 정상회의에서 RCEP에 서명했다. 문 대통령은 “자유무역의 가치 수호를 행동으로 옮겼고, RCEP가 지역을 넘어 전 세계 다자무역 회복에 기여하기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RCEP로 묶이는 15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19년 기준 26조3000억 달러(약 2경9000조원)다. 전 세계의 30%를 차지한다. 전 세계 무역에서 이들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28.7%, 인구로 따져도 29.9%에 이른다.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2배가 넘는 규모(무역 기준)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다른 경제권 비교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다른 경제권 비교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특히 한국은 지난해 수출액 절반(2690억 달러)을 RCEP 지역에서 올렸다. 이번 RCEP 체결로 신흥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세안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의 ‘신남방정책’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김정회 산업부 통상교섭실장 직무대리는 “RCEP 추진의 가장 큰 목표는 아세안 시장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을 비롯한 RCEP 참여국 정부가 15일 서명을 했지만, 각국 의회 비준 절차가 남았다. 아세안 10개국 중 6개국, 그 외 5개국 중 3개국 이상에서 비준해야 RCEP가 발효된다. 효력은 비준을 마친 국가에 한정된다.

  
기존 1 대 1로 맺은 FTA ‘업그레이드’

 
RCEP는 2012년 협상 시작 이후 8년에 걸친 줄다리기 끝에 탄생한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 수출입 시장 전체를 뒤바꿀 만한 거대 변수는 아니다. RCEP 참여국 대부분과 이미 1대1로 FTA를 맺고 있어서다. 기존 FTA를 ‘업그레이드’했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RCEP 참여국. 가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RCEP 참여국. 가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RCEP 출범으로 아세안 10개국의 상품 품목별 관세 철폐 수준은 현재의 79.1~89.4%에서 91.9~94.5%까지 높아진다. 교역 품목 가운데 91.9~94.5%의 관세를 단계적으로 없앤다는 의미다. 아세안 국가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국내 기업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국가별로 10~40%에 이르는 화물자동차와 승용차, 자동차 엔진, 자동차 부품 등의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해 나가기로 했다. 철강제품(최대 5%), 철강관(20%), 도금강판(10%) 등의 관세도 철폐 대상이다. 일부 국가에서 현재 25~30%에 이르는 냉장고·세탁기·에어컨의 관세도 철폐될 예정이다. 중국·호주·뉴질랜드와의 관세 철폐는 이미 90% 이상인 양자 FTA 수준으로 정해졌다.

 
한국과 일본은 RCEP를 통해 처음으로 FTA를 맺게 됐다. 두 나라 모두 83% 품목의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다만 한국은 ‘소재·부품·장비’ 강국인 일본에 대해 자동차와 기계 등 민감 품목은 양허 대상에서 제외했다.

 
RCEP 출범으로 향후 아세안 등지에서 수입하는 열대과일과 맥주 가격도 싸질 전망이다. 두리안·파파야·구아바·망고 등에 붙는 관세(30~45%)를 10년에 걸쳐 철폐할 예정이다. 맥주에 붙는 관세(30%)도 15~20년에 걸쳐 철폐한다.

 
RCEP 규모 비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RCEP 규모 비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다만 핵심 민감 농산물인 쌀·마늘·양파·고추 등 품목은 양허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협정은 상호적으로 이뤄지는 게 기본”이라며 “한국에 불리한 품목이 빠졌다면 유리한 품목도 빠진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RCEP를 통해 15개국을 아우르는 통일된 원산지 규범이 만들어졌고 증명·신고 절차도 간소화된다. 한류 콘텐트 불법 복제 등의 문제를 해결할 기반도 마련됐다. 저작권·특허·상표·디자인 등 지식재산권 전반에 대한 보호 규범과 침해 시 민형사 절차 등 구제 수단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한계도 있다. 선진국에 비해 제조업 경쟁력이 낮은 개발도상국이 대거 참여하는 만큼 품목별 개방 수위가 선진국 중심의 다른 FTA보다 낮다. 관세 철폐 기간도 10~20년으로 길다. 당장 국내 산업에 영향을 주는 구도는 아니다.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세계무역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15개국이 합의해 서명을 이뤄냈다는 의미가 있지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나 CPTPP와 비교해 자유화나 국제 규범에서 매우 낮은 수준으로 (협정이) 이뤄진 데다 인도가 빠지면서 의미가 퇴색됐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당선으로 CPTPP와 경쟁 구도

 
‘메가 FTA’ RCEP 등장으로 국제무역 지형도는 좀 더 복잡해지게 됐다. 조 바이든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재추진 동력을 얻은 CPTPP와의 경쟁 구도가 불가피해서다. CPTPP의 뿌리는 버락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이 주도했던 TPP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TPP 일방 탈퇴를 결정하면서 일본 주도의 CPTPP로 변형됐다.

 
미국의 CPTPP 참여는 시간문제란 분석이 나온다. 중국 주도의 경제공동체 RCEP가 본격 출범하면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 CPTPP 복귀를 서두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일본이나 베트남 등 다른 RCEP 국가처럼 한국도 CPTPP에 중복으로 참여하며 무역 규범에서 ‘보험’을 하나 더 들어두는 게 맞다”고 말했다.

 
세종=조현숙·하남현·김남준·임성빈 기자 newear@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