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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끌어들이자 싸움 커졌다, 윤희숙 불붙인 52시간 논쟁

중앙일보 2020.11.15 17:34
‘전태일 정신’은 무엇인가. 누가 전태일을 말할 수 있는가. 최근 며칠 정치권에서 벌어진 논쟁의 주제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이 칼자루를 쥐고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방패를 쥐며 진영대결 양상을 보였지만, 15일 같은 당인 장제원 의원도 윤 의원을 비판하며 전선이 복잡해졌다.
지난달 20일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그는 13일 페이스북에 "우리 토양의 특수성은 외면하고 선진국 제도 이식에만 집착하는 것이 약자를 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전태일 이후 50년간 곱씹어온 교훈"이라고 적었다. 이 글은 '전태일 정신'을 둘러싼 논쟁으로 번졌다.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질의하는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그는 13일 페이스북에 "우리 토양의 특수성은 외면하고 선진국 제도 이식에만 집착하는 것이 약자를 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전태일 이후 50년간 곱씹어온 교훈"이라고 적었다. 이 글은 '전태일 정신'을 둘러싼 논쟁으로 번졌다. 연합뉴스

 
논란의 시작은 윤 의원이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지난 13일 올린 페이스북 글이었다. 그는 “52시간 근로제의 중소기업 전면적용을 코로나 극복 이후로 연기하는 게 전태일 정신을 진정으로 잇는 것”이라고 적었다. “1953년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은 주변 선진국의 법을 베껴 1일 8시간 근로를 채택했다. (전태일 열사) 죽음의 책임이 대부분 당시 현실과 철저히 괴리된 법을 만들고 정책을 시행한 사람들에게 있다”면서다.
 

"무지몽매, 분노"…"전태일이 왜 나와?" 비판도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에서 분노 섞인 비판이 쏟아졌다. 초점은 두 갈래였다. 우선은 윤 의원 논리가 억지라는 반론이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황당무계한 주장이며, 무지몽매함의 극치”라며 “전태일 열사가 지옥처럼 벗어나고자 했던 그 세상을 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의원이 노동시간 단축 정책인 52시간 근로제 도입을 반대하면서, 과도한 노동시간 문제를 비판하며 목숨을 던진 전 열사를 언급한 것이 모순이라는 주장이다.
 
김현정 민주당 노동대변인 역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이 어떻게 주 52시간 도입을 연기하라는 걸로 들리는지 분노를 넘어 실소를 금할 수 없다”며 “주 52시간 근로제를 관철하고자 하는 건 우리 노동의 현실이 법에서 규정하는 내용보다 더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논평했다.
13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전태일 열사 5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행사 참석자 일부는 공원에 있는 전 열사 동상에 머리띠를 둘렀다. 전 열사 50주기를 맞아 정치권에서도 주말 동안 추도 발언이 이어졌다. 연합뉴스

13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전태일 열사 5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행사 참석자 일부는 공원에 있는 전 열사 동상에 머리띠를 둘렀다. 전 열사 50주기를 맞아 정치권에서도 주말 동안 추도 발언이 이어졌다. 연합뉴스

 
논리의 타당성을 떠나, 윤 의원이 전태일 열사를 끌어들인 게 두번째 공격 지점이다. 최근 여권과 주로 대립해 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이런 소리 하는 데에 왜 전태일을 파느냐”며 “저러니 저 당은 답이 없는 거다”라고 밝혔고, 다음 날도 “이념에 눈이 뒤집혔다”,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불필요한 싸움을 붙였다”며 맹공을 이어갔다.
 
당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돌아가신 분들을 현재의 정치적 논쟁에 소환해 갑론을박하는 건 그분들의 삶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며 “정치인으로서 옳은 방식이 아니다. 정치적 편 가르기가 될 수밖에 없어 소모적이다”고 했다.
 
반면 야권 관계자는 “윤 의원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논쟁 과정만 보면 ‘네가 뭔데 전태일을 말하냐’며 메신저를 공격하는 듯한 모습도 있다”며 “이는 마치 ‘전태일과 친노동은 진보 진영의 전유물인데, 보수정당이 왜 남의 영역을 침범하느냐’와 같은 항의로 읽힌다”고 말했다.
 

"일자리 없애는 게 전태일 정신? 이념적 허세"

윤 의원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이념적 허세’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민주당을 향해 “코로나로 절벽에 몰린 중소기업에 52시간제를 칼같이 전면 적용해 일자리를 뺏고 길거리로 내모는 게 전태일 정신이냐”며 “운동권 써클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책임을 공유하는 거대 여당이 됐으면 이제 제발 도그마와 허세는 버리라. 일자리 없애는 것을 전태일 정신으로 둔갑시키고 강성 노조 편만 들며 전태일을 모욕하지 말라”고 밝혔다. 노동자 삶의 질 향상이 전태일 정신인데, 52시간제 급격한 도입이 일자리를 줄어들 게 하는 등 오히려 노동자의 삶을 어렵게 한다는 논리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페이스북 캡처

 
보수 논객인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도 윤 의원을 거들었다. 그는 페이스북에 “52시간 이상을 전태일 때처럼 기업이 강요해 노동자에게 시킬 수 있는 때라고 믿는 의식이 화석화된 586의 전형”이라며 "지금 노동자들은 52시간 규제가 안 되는 작은 직장을 찾아 옮기고 있다. 연장 근로를 해야 먹고 살 수 있으니까"라고 적었다. 이어 “보통 시민의 현실에서 괴리된 인간들은 전태일을 팔아먹는 이념 귀족들이며, 여기에 진중권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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