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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묵직한 걱정으로 잔잔한 걱정 덮는다

중앙일보 2020.11.15 09:00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67) 

 
산막 야외에는 화톳불 피우는 가마솥이 있는데, 워낙 불을 많이 쬐고 오래되다 보니 밑이 다 부서졌다. 가마솥을 구해보자니 그도 쉽지 않았는데, 마침 정 박사가 새 솥을 어느 두부 만드는 집에서 구해왔다. 밑이 빠진 이전 가마솥은 나무 정리용으로 써야겠다. 이어 도낏자루를 만들어 본다. 도낏자루나 망치 자루 같은 것은 물푸레나무가 제격이다. 나무가 질겨 자루의 안성맞춤이다. 적당한 길이로 잘라내고 나무에 난 작은 가지도 잘라낸다. 공구가 좋으니 서너 개의 자루쯤은 금방이다. 숙원사업을 해결한 오늘, 정 박사 내외에게 감사하고, 어느 두붓집 아주머니께도 감사한 하루다.
 
10월 25일 이건희 회장,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타계. 두 분의 죽음을 생각하며 드는 생각이 있다.  
-죽음에 예외 없다. 누구나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나는 아니지 하는 생각은 정말 아니다.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 會者定離)다. 
-두 사람 모두 나나 우리보다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행복 총량 불변의 법칙. 영경욕천(榮輕辱淺)하고 이중해심(利重害深)이라 영광이 가벼우면 욕됨이 얕, 이로움이 무거우면 해도 깊다. 
-사람은 그 누구나 공과가 있다. 공은 기리고 과는 감춘다. 이것이 망자에 대한 예의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 베풀며 살자. 
-돌아가신 분은 말이 없는데 남은 사람 중 머리 아픈 사람 많겠구나. 어쨌거나 우리나라와 경제에 큰 획을 그으신 분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우리는 꿈이 있기에 위대합니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구절이다. 누구나 자기 미래의 꿈에 계속 또 다른 꿈을 더해나가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현재의 작은 성취에 만족하거나 소소한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몸이 영양가 있고 맛난 음식으로 에너지를 얻는다면 정신은 어떠한가? 희망과 꿈. 그 희망과 꿈을 이루려는 열정으로 타오르고 빛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람이 늘 행복할 수 있나?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도, 저 사람은 무슨 걱정 있을까 하는 사람도, 무거운 고민 몇 개씩은 가슴에 달고 산다. 그것이 사랑이든 성취이든 그렇게 우울병처럼 달고 산다. 그것이 인생일 것이다. 늘 쾌활하고 즐거울 수 없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그때, 그 어렵고 힘든 순간, 나를 데려가 가슴 뛰고 눈 반짝이게 할 그곳. 그것이 꿈이요, 희망이라 믿는다. 누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없다면 어찌할 것인가? 스스로 만들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나. 
 
어느 날 아침 곡우가 말했다. 걱정하는 대신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고. 당신은 늘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아니다가 그녀의 답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최선이라는 말을 참 쉽게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래도 다행이다. 걱정 대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그대 걱정하지 말라. [사진 권대욱]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그대 걱정하지 말라. [사진 권대욱]

 
산막의 만월을 생각한다. 달빛과 구름과 하늘이 아름다웠던 밤. 스쳐 지나간 모든 인연을 돌아보며 별 헤던 동주를 생각하던 밤. 보이지 않던 아름다운 것을 보고, 들리지 않던 귀한 것을 들어야겠다 결심했던 밤. 이 세상 살아있는 모든 것과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겠다 생각한 밤. 그것이 최선 아니겠나 싶다. 우리의 삶에 어찌 근심·걱정이 없을 수 있겠나? 천석꾼은 천 가지 근심, 만석꾼은 만 가지 근심이라 했다. 우리는 누구나 걱정거리를 안고 살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걱정거리의 99%는 걱정해도 소용없거나 걱정할 필요도 없는 일들이니, 잊는다. 처리한다. 무시하다가 가장 유효한 걱정 퇴치법 아닌가 싶다. 
 
잊히지 않는데 어떻게 잊는가? 어떻게 무시하는가? 여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하나는 기쁜 일로 잊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눈 반짝이고 가슴 뛰는 일을 생각하는 순간 그런 걱정은 잊힌다. 그래 이런 일도 있는데 그까짓 걱정이 뭐 대수냐 하는 거다. 두 번째는 더 크고 묵직한 걱정으로 잔걱정을 덮는 것이다. 그래 내가 이까짓 잔걱정에 휘둘릴 수는 없다. 내겐 평생을 걱정할 화두가 있지 아니한가? 소위 종신지우(終身之憂)적 근심으로 일조지환(一朝之患)적 근심을 덮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쁜 일, 그런 화두를 미리 마련해 두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잔근심을 잊을 것이며 무엇으로 걱정거리를 덮겠나? 그러니 생각만 해도 가슴 뛰고 눈 반짝여지는 일, 저 심연에 닻 내린 묵직한 가슴속의 화두 하나 정도는 반드시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누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만들어야 한다.

 
(주)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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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욱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필진

[권대욱의 산막일기] 45년 차 직장인이자 32년 차 사장이니 직업이 사장인 셈이다. 일밖에 모르던 치열한 워커홀릭의 시간을 보내다 '이건 아니지' 싶어 일과 삶의 조화도 추구해 봤지만 결국 일과 삶은 그렇게 확실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애써 구분할 필요도 없음을 깨달았다. 삶 속에 일이 있고 일속에 삶이 있는 무경계의 삶을 지향하며 쓰고 말하고 노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강원도 문막 산골에 산막을 지어 전원생활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 60이 넘어서야 깨닫게 된 귀중한 삶과 행복의 교훈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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