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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세·소득세 등 부담 느는데 증세 아니라고? ‘넓은 세원 낮은 세율’ 원칙 어디로

중앙선데이 2020.11.14 00:32 711호 4면 지면보기

증세 논쟁

555조8000억원. 정부가 지난달 28일 국회에 제출한 2021년 예산안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올해 본예산보다 8.5%인 43조5000억원 늘어났다. 그만큼 돈 쓸 곳이 늘었다는 얘기다. 새로운 먹을거리를 위한 이른바 한국판 뉴딜사업을 시작하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하고 있어 노인을 위한 예산도 대폭 늘렸다.  
 

종부세율, 소득세 최고세율 올라
국민부담률 27.4%로 역대 최고

나랏빚 내 지출, 국가 신용도 추락
세원 확보 안 하면 채무 급증 위험

부유층 꼼수 증세는 지속성 없어
학계 “보편적 증세 공론화 필요”

저출산 문제, 청년 실업 문제 등을 위해 쓸 돈도 증액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역 경제가 침체하고, 사회안전망에 대한 요구가 늘어난 만큼 예산 투입을 통해 활력을 되찾는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민간 부문에서 활발한 투자와 소비가 제약되기 때문에 재정 정책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를 살리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겠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문제는 돈이다. 내년도 예산안의 관리재정수지(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것)는 72조8000억원 적자다. 쉽게 말해 미래 세대에서 72조원을 빌려와 우선 쓰겠다는 얘기다. 그런데 9월 말 현재 국가채무는 800조3000억원으로 이미 역대 최고치다. 코로나19로 쪼그라든 경제를 위해 돈을 푼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100조원 넘게 늘었다.
  
공시가격 90%까지 올리면 세금 증가
 
정부는 아직 주요 선진국에 비해 빚이 적은 편이어서 더 빚을 내도 된다고 하지만, 이에 동의하는 경제학자는 많지 않다. 한국경제학회가 지난달 7일 국내 경제학자 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5%는 ‘국가채무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이하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조사에서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의 채무비율 자체가 높다고 보긴 어렵지만 세원 확보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채무비율의 증가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게 문제”라고 밝혔다. 최근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증세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근본 이유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사실 문재인 정부 들어 증세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이미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적지 않은 증세를 했거나 할 계획이다. 대표적인 게 부동산이다. 정부는 최근 주택 등 부동산 공시가격을 시세의 90%까지 끌어 올리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집값이 오르지 않아도 세금이 대폭 늘어나게 된다. 예컨대 서울 강남구 래미안대치팰리스 아파트 전용면적 114㎡형은 올해 재산세가 1776만원이었는데, 공시가격이 90%로 오르면 6004만원으로 확 뛴다. 특히 고가 1주택자는 물론 중저가 1주택 소유자도 재산세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정부는 앞서 2%였던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세율을 지난해 3.2%로 인상했다. 내년엔 6%까지 올릴 계획이다. 1주택자의 종부세율도 같은 기간 2.0%→2.7%→3.0%로 상승했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2016년 38%에서 2017년 40%, 2018년 42%로 인상했는데 내년엔 45%로 올리기로 했다.  
 
세금만 오른 게 아니다. 세금처럼 반드시 내야 하는 준조세(準組稅)도 문재인 정부 들어 가파르게 뛰고 있다. 건강보험료는 해마다 오르고 있는데, 2017년 건강보험 혜택을 확대한 이른바 문재인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시행 이후엔 상승 폭이 더 커졌다. 상승 폭은 2018년 2.04%, 지난해 3.49%, 올해 3.2%다. 내년엔 2.89% 오른다.
 
지난해 국민 한 사람이 낸 세금·준조세는 평균 1014만1000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000만원을 돌파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국민부담액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국민부담률은 지난해 27.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민부담률은 2016년 24.7%에서 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25.4%, 2018년 26.8%로 급등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그만큼 국민의 조세 부담이 늘었다는 의미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기업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22%였던 법인세 최고세율을 25%로 끌어 올렸다. 최근엔 개인유사법인 유보소득 과세를 추진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고소득자, 부자한테 세금을 더 걷어 저소득자나 부자가 아닌 사람에게 나눠 주면서 증세가 아니라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며 “국민 편가르기이자 꼼수 증세”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고소득자 등을 겨냥한 이른바 부자 증세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계층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무엇보다 지속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안정적인 재정 확보 방안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보편적 증세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장은 “돈 쓸 곳은 많은데 나라에 돈이 없는 상황이므로 지금부터라도 증세를 할지 말지, 한다면 어떤 식으로 할 건지, 안 한다면 언제까지 안 할 건지에 대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국민소득 대비 세금 비율)은 OECD 평균에 한 참 못 미치는 만큼 증세 여력은 충분하다고 본다”며 “소득세 면세자 비중을 낮추는 것을 포함해 증세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20%로 OECD 국가 평균보다 5%포인트 낮다. 전체 세수 내 소득세 비중 역시 우리나라는 4.9%로 OECD 국가 평균 8.3%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1일 ‘2020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향후 경기 회복 때 국가채무 증가 속도를 강력히 제어할 방안을 사전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증세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경제전망 브리핑에서 구체적인 재정 확보 방안을 묻는 질문에 “일단 지출 구조조정과 세수 기반의 광범위한 확충이 필요하겠지만, 아무래도 그걸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론 증세 방안도 같이 논의했으면 한다”고 답했다.
  
2045년께 국가채무비율 99.6% 전망
 
국가 부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올 들어 9월까지 통합재정수지는 80조5000억원 적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3조9000억원이 늘었고, 국가채무비율은 43.5%까지 치솟았다. 이런 식이라면 2045년께 채무비율이 99.6%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한국경제연구원)까지 나온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국가채무비율이 1%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국가신용등급은 0.03단계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대로 국가채무비율이 상승한다면 2045년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은 2단계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증세’라는 말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선거에서 표가 떨어질 것으로 우려한 때문이다. 심지어 증세를 하고도 증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공시가격 인상과 관련해 “증세로 보는 건 논리적 비약”(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라고 주장하고,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이나 유보소득 과세에 대해 “증세가 아니다”(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라고 한다.  
 
그러다 12일에야 “(공시가격 인상은) 결과적으로 증세”(진영 행정안전부 장관)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증세와는 선을 긋는다. 홍 부총리는 최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증세 논의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이용호 무소속 의원의 질의에 “우리 재정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양호한 수준”이라며 증세가 필요치 않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코로나19로 경제가 좋지 않은 만큼 증세 논의는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증세는 물론 이를 논의하는 것 자체만으로 경기가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성현 교수는 “코로나19로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인 것은 맞지만 증세를 논의한다면 최소 2년 후 정도를 내다보고 진행해야 하므로 지금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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