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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 曰] ‘정치의 명상화’ 가능할까

중앙선데이 2020.11.14 00:28 711호 30면 지면보기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미국 대선 때 CNN을 비롯한 미언론들은 조 바이든 후보를 ‘힐러-인-치프(Healer-in-Chief)’로 소개했다. ‘최고 치유자’로 번역된다. 미국 대통령은 ‘최고 군통수권자(Commander-in-Chief)’로 지칭되는데, 통수권을 뜻하는 ‘커맨더’ 자리에 치유자를 뜻하는 ‘힐러’를 대신 넣어 만든 말이다. 2020년 미국에 필요한 리더는 ‘스트롱맨’이 아니라 ‘힐러’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최고 치유자’는 대통령 아닌 ‘나 자신’
개인의 자각 중시 치유, 민주주의 닮아

제국의 리더를 뽑는 지상 최대의 정치판에 ‘치유’라는 명상 용어가 키워드로 등장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새로 들어서는 정부가 통합을 내세우는 것은 동서고금에 흔한 일이지만, 치유라는 표현까지 쓰는 것은 이례적인 것 같다. 정치권은 대개 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세계로 여겨진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의 정당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기도 한다. 그에 비하면 명상은 권력의 위선 그 자체를 성찰하려고 한다. 권모술수의 정치와 위선을 성찰하는 명상이 함께 공존할 수 있을까? 바이든 당선인의 임기가 시작되면 이 점을 주목해 보고 싶다. 삶과 정치에서 진실이 사라져가는 듯한 시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정치와 명상을 공존할 수 있게 한다면 바이든은 21세기 인류의 새로운 이상을 구현한 역사적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게 쉬웠다면 수많은 권력의 위선은 없었을 것이다. 바이든 당선인이 내세운 통합과 치유도 한낱 정치적 레토릭으로 끝날 것인가. 그 역시 ‘말로만 치유’에 그칠 개연성을 배제하지 못할 것이다. 바이든뿐 아니라 그 누가 권력을 잡아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대개 권력의 속성과 타락은 거의 예외 없이 유사한 궤적을 그려왔다. 대중의 속성은 잘 속는 데 있다.
 
권력을 잡고 나서도 권력 잡기 전의 초심을 기억하는 권력자는 별로 없다. 멀리 가서 확인할 것까지 없을 것 같다. 이 땅에서 3~4년 전 촛불과 함께 등장한 정부가 내세운 깃발도 일종의 치유였다. 지금 우리 국민의 갈라진 마음은 얼마나 통합되고 치유되었는가?
 
치유와 치료는 비슷하게 쓰이기도 하는데 엄밀히 보면 좀 차이가 있다. 예컨대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다고 하지 치유 받는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명상 분야에서는 치료와 치유를 대개 구분해서 사용한다. 치료가 주로 육체의 질병과 관련된다면, 치유는 마음의 병과 관련된다. 만성질환의 경우 육체적 치료와 마음의 치유를 병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래된 고질병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것은 면역력을 키워 큰 병을 막는 예방책으로도 좋다고 한다.
 
무엇보다 치유에선 나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 수동적 환자로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내 몸과 마음의 의사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적극적 의미가 치유에 담겨 있다. 이러한 치유의 뜻을 살리려면 밖으로 향해 있는 눈을 내 안으로 돌려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일이 중요하다. 대통령이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통합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통령 본인과 정부 구성원 먼저 자신들의 언행을 되돌아봐야 한다. 통합과 치유는 별개의 과정이 아니다.
 
바이든이 상처받고 분열된 미국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치유를 내세운 화려한 정치적 언변은 잊혀지고 우리는 4년 후 또다시 권력자의 초라한 뒷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국민이 권력의 솜사탕에 속지 않는 길은 자각에 있다. ‘최고 치유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나 자신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개인의 자각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치유는 민주주의를 닮았다. 각자가 최고 치유자임을 자각하고 자신의 면역력을 키워갈 때 ‘정치의 명상화’도 가능할 것 같다.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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