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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백신의 두 얼굴

중앙선데이 2020.11.14 00:26 711호 31면 지면보기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세계 각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독감이 유행하기 쉬운 겨울이 닥치지 않았는데도, 벌써 3차 대유행 우려가 크다. 미국에서는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각) 코로나19 확진자가 역대 하루 최대치인 20만 명이 넘었다. 유럽도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일주일간 세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의 54%, 사망자의 47%가 유럽에서 나왔다. 국내에서도 하루 확진자가 연일 세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이 불가피하다.
 

질병 예방·퇴치에 큰 역할 담당
권력·자본에 휘둘린 흑역사도

이런 절망 속에서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이 희망으로 떠올랐다.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90%가 넘는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11일 나오면서다. 일반 독감 백신 효과(40~60%)의 두 배 수준이고, 홍역 백신(97%)에 맞먹는 효능이다. 가격도 독감 백신보다 낮게 책정하겠다는 얘기도 나왔다. 세계가 환호했다. 화이자의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이 보유한 회사 주식을 대거 팔며 찬물을 끼얹기도 했지만 말이다.
 
코로나19 종식 기대감에 세계가 들썩이고 있지만 고민거리도 여전하다.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도 안전할지 미지수다. 특히 이 백신은 특성상 영하 70도 이하에서 보관해야 한다. 연구실의 전문 냉동고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 기온이 높고 보건 인프라가 열악한 곳에서는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 물론 화이자·바이오엔테크가 애초 의도한 결과는 아니다. 이들이 만든 백신의 특성이 그래서일 뿐이다.
 
다만 『두 얼굴의 백신』의 저자인 스튜어트 블룸에 따르면 백신은 역사적으로 선한 얼굴만 가진 게 아니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보건 인프라가 열악하고 질병이 발생할 확률도 높지만 백신을 구입할 여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부국이나 선진국에서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백신을 만들 기술과 경제력이 있지만 자신들이 필요하지 않다면 대개 개발하지 않았다. 열대지방 국가에서는 기생충병이 질병과 사망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지만, 이와 관련된 백신은 거의 없는 식이다.
 
냉전시대 백신은 체제 선전의 도구이기도 했다. 시대가 달라졌다지만 지금도 경쟁 양상은 비슷하다. 제약 업계에 따르면 현재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 관련 임상시험은 97건 진행 중이다(임상 3상은 11개). 미국·중국·러시아·영국·독일 등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접종도 시작했다지만 서방 진영에서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백신 개발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까닭에 ‘돈’도 주요 변수로 작용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9년 자문위원회의 조언에 따라 인플루엔자 대유행을 선포했다. 유럽 등지에서 백신 주문이 이어졌고 대량 생산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백신이 전달될 무렵 환자 수가 줄어들고 있었고, WHO는 2010년 여름 인플루엔자 유행이 종료됐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WHO에 대유행 선언 여부를 조언한 전문가 대부분이 제약회사의 지원을 받는 컨설턴트였다고 한다. 벤처캐피털 등의 투자를 받게 마련인 첨단 생명공학 기업이 늘면서 비슷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 필요 이상의 ‘공포’를 조장하기도 한다.
 
코로나19 백신은 다를까. 지구촌 전체가 패닉에 빠져 있어 인류애를 들먹이지 않아도 당장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진 않을 듯하다. 보는 눈도 워낙 많지 않나. 다만 백신 접종 순서의 차별은 불가피할 터다. 공급보다 수요가 워낙 많아서다. 글쎄, 억울하다면 백신 개발 고지를 먼저 점령하면 된다. 아니면 좀 늦더라도 더 안전하고 효능이 뛰어난 백신을 만들어야 한다.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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