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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앞 부끄럽다”지만···중대재해법 말 아낀 이낙연의 고민

중앙일보 2020.11.13 05:00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서 전태일열사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아직도 수많은 전태일이 이 땅에 있고 당시 평화시장 같은 직장환경이 없어졌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뉴스1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서 전태일열사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아직도 수많은 전태일이 이 땅에 있고 당시 평화시장 같은 직장환경이 없어졌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뉴스1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전태일 열사 묘소를 참배했다. 이 대표는 “과연 우리 사회가 50년 동안 노동자들을 위해 얼마나 나아졌는가 (생각하면) 열사님께서 편하시지 않을 것 같다”며 “노동 존중 사회를 실천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늘 지혜가 모자라고 열정이 부족해 부끄럽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은 전태일 열사의 50주기 하루 전날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노동계가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에 대해선 “집중 협의를 하도록 얘기를 해두었다”며 말을 아꼈다. 전날 “(중대재해법의 당론 채택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말한 것보다 한발 물러선 모습이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중대재해법에 대한 방침을 논의한다.
 

처음엔 이낙연·정의당이 ‘쌍끌이’ 

 
중대재해법은 과거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발의했던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모태로 한다. 재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업과 정부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게 골자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6월 이미 법을 발의했고,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중대재해법을 12일 발의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끄는 국민의힘도 이 법에 대한 공감을 표한 상태다.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쟁점별 입장.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쟁점별 입장.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중대재해법이 국회에서 이슈가 되기 시작한 건 지난 9월 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해마다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희생된다. 그런 불행을 이제는 막아야 한다”며 법 제정을 촉구했다. 
 
정의당 역시 이날 심상정 전 대표를 시작으로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입법을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에 돌입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28일 고(故) 김용균 씨의 작업복을 입은 채 문재인 대통령에게 “중대재해법 제정 잊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외친 것 역시 릴레이 시위의 일환이었다.
 
문제는 기업들의 반발이다. 한국경총은 지난달 국회에 보낸 의견서에서 “산안법상의 사업주 처벌형량이 이미 세계 최고인 상황에서 추가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은 과잉처벌”이라며 “기업의 정상적 경영 활동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해 말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으로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에 이미 원청기업의 책임 범위와 처벌 형량이 늘어났다는 점도 기업 입장에선 부담으로 지적된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선 중대재해법 대신 산안법 개정이 대안으로 유력하게 검토됐다고 한다. 당 정책위 핵심관계자는 지난 10일 “중대재해법은 기업활동을 지나치게 제약할 수 있어 산안법을 개정하는 쪽으로 해결하려 한다”며 “5년 이내에 산업재해로 사망사고가 다시 발생한 기업과 사업주를 가중처벌하는 게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중대재해법엔 현장을 감독하는 공무원들에게도 주의 태만의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조항까지 담겨 있어,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부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나서며 與 ‘내부 갈등’ 조짐도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소 주최로 열린 중대재해 방지 및 예방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 등 노동계에서 참석했다. 오종택 기자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소 주최로 열린 중대재해 방지 및 예방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 등 노동계에서 참석했다. 오종택 기자

민주당 내 이런 기류가 흔들린 것은 표면적으론 국민의힘 때문이다.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은 지난 1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의당·민주노총·한국노총 관계자들을 초청해 ‘중대재해 방지 및 예방을 위한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안전사고는 당사자의 생명과 건강은 물론 가정과 동료의 삶까지 영향을 미친다. 산업 안전은 정파 간 대립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중대재해법에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국민의힘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자, 다음날 민주당 의원들도 움직였다. 우원식·박주민 의원 등 ‘민주당 노동존중실천추진단’ 의원들은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 법은 당론이 아니다. 우 의원은 회견 직후 “당론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견에 배석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더 직설적으로 민주당 정책위를 겨냥했다. 그는 “민주당 내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걸 분명 들었다”며 “국회의원은 노동뿐 아니라 경영도 대변해야 하지만, 탐욕을 대변하면 안 된다”고 했다. 
 
민주당 내 이견이 외부로 분출되자, 당 외곽의 압박은 한층 거세지고 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이날 오전 “민주당·국민의힘·정의당 등 3당 대표가 한데 모여 중대재해법을 함께 이야기하고 국민 앞에 약속하자”고 공개 제안하며 민주당을 압박했다. 비슷한 시간, 김기문 중기중앙회장도 이 대표를 만나 “법인과 대표를 함께 처벌하고 최소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해 너무 가혹하다. 사업주를 함께 처벌하겠다는 것은 중소기업에 문을 닫으라는 것과 같다”는 우려를 표했다.  
 
이날 민주당 내부에서도 종일 갑론을박이 계속됐다. 비수도권의 한 의원은 이날 “산업재해는 처벌보다 예방이 중요한데, 당에서 충분한 논의 없이 법이 발의됐다”고 말했고, 수도권의 한 의원은 “정책위가 굳이 현실론을 내세워 시민의 분노를 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당내에선 국내 기업 현실을 고려하자는 현실론과 산업재해를 근절하자는 명분론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며 “결국 최종 결정은 이 대표가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석·박해리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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