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상연의 시시각각] 노무현 집값 실패도 DJ 탓이었나

중앙일보 2020.11.13 01:08 종합 34면 지면보기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는 과거 모습 그대로가 아니란 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 결과다. 과거에 느낀 감정 상태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란다. 예컨대 수면 마취 없이 받는 대장내시경 검사라면 서툰 솜씨로 오래 끄는 의사를 만날수록 더 힘들다고 느껴야 한다. 하지만 ‘총 고통’보다 마지막 고통, 최고 고통이 괴로움을 결정한다는 게 그의 실험 결과다. 고통 총량이 아무리 커도 마지막 고통을 낮추면 누구든 ‘견딜 만했다’고 기억한다는 것이다.
 

현실보다 코드만 살피는 장관들
집권 내내 ‘집값 폭등 박근혜 탓’
개각하면 받아쓰기 내각 바뀔까

각자가 다니던 조직, 혹은 정부에 대한 느낌도 같은 경로를 따른다. 실제로 정치 민주화와 사회 개혁에 공이 큰 김영삼 정부는 임기 말 외환위기로 최악의 정부란 기억을 남겼다. 노무현 정부 역시 비슷한 덫에 걸려 정권을 내줘야 했다. 하지만 김대중·이명박 정부는 막판에 지지율 낙폭을 상대적으로 줄여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정권 내 죽을 쑤다 막바지에 몰린 정부엔 복음 같은 얘기다. 9회 말 역전이 가능하다. 다만 막판 고통을 줄여야 한다. 기억을 바꾸려면.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로 내몰린 국민이 고통받는 건 정부 무능이 원인이지만 꼭 그것만도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뻔뻔함이 상처를 키웠다. 부동산이 우선 그렇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정책 효과는 4년, 5년, 7년 간다’며 ‘집값 폭등은 박근혜 정권 탓’이라고 야당 의원들에게 퍼부었다. 그의 주장대로면 지금 정부는 끝날 때까지 어떤 정책을 써도 집값을 잡을 수 없다. 노무현 정부 때 집값이 오른 건 김대중 정권, 이명박 정부 때 안정된 건 노무현 정권 때문이란 뜻도 된다.
 
잘되면 ‘우리 이니 덕분’, 잘못된 건 죄다 전임자 탓으로 돌리는 게 지금 정권의 상투적 수법이기는 하다. 정치인 출신 청와대 참모 입에선 ‘부동산은 박근혜 탓’이란 억지가 여러 번 나왔다. 그래도 그건, 누구도 안 믿는 걸 태연히 우겨, 3류 소리 듣는 정치인들 문법이다. 국민 3분의 2가 ‘부동산 정책은 잘못’이라고 믿는다. ‘집권 4년 차까지 참 끈질기게 우려먹는다’고들 한다. 그런데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경제부총리마저 "아니고요, 전임자 탓이에요”라니. 좀 그렇다.
 
돌아보면 난장판이 된 게 부동산만도 아니고 내 탓이 아니란 장관이 홍 부총리만도 아니다. 내각이 줄줄이 ‘이명박근혜’를 두들겨 패며 탈원전에 4대강 죽이기로 달려갔고 동맹 균열을 부채질했다. 그 결과 2020년 가을 대한민국은 살얼음판이다.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을 한 20대가 나왔고, 신경안정제 없인 잠을 못 이룬다는 40, 50대 자영업자도 많다. 나랏빚은 치솟고 외교는 사면초가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정부란 평가가 나왔다.
 
곧 개각이 있는 모양이다. 국민 고통을 줄이고 정부에 대한 기억을 바꾸려면 그런 장관들에게 책임을 물으면 된다. 역대 정권에서 개각이란 정책 실패에 대한 문책 성격이 강했다. 사람 교체와 함께 정책을 수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 정부 들어 그런 경우란 없었다. 이번엔 그런 쪽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설사 약간의 ‘깜짝 쇼’를 곁들여도 ‘검찰 탓, 전 정권 탓’ 하며 국민의 염장을 지르는 장관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코드에 의한, 코드를 위한, 코드 불패의 정치다.
 
분열의 정치가 나라를 어떻게 몰고 가는지 보여준 게 이번 미국 대선이다. 민주주의 교과서라 불리던 미국은 지금 평화적 정권 이양의 전통마저 위협받는 위기에 처했다. 지지층만 바라보고 분열의 씨앗을 뿌린 트럼프식 선동 정치의 결과다. 우리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문 대통령은 인재를 널리 찾고 그런 인재가 넘치는 내각이 나라를 통치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받아쓰기 내각에 치를 떨었다. 말 그대로 실천하면 된다. 그러면 과거도 바뀐다. 마지막 기회다. 그래야 한다.
 
최상연 논설위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